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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06. 2020

1-① 길몽찾기

2018.03.24(토) 수원 와이프 자취방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뚝 떨어진다.'


31년 내 인생에서 그토록 생생한 꿈을 꾼 적 없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나를 감싼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주말 아침, 나는 그렇게 잠에서 깼다. 나는 평소 해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무의식 속에 나타난 환상을 풀이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봤다.


사과나무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혼란에 빠졌다. 불길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기분 나쁜 꿈을 해결하기 위해 핸드폰을 켜고 검색했다. "에이 설마...무슨..."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꿈'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이별을 하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꿈입니다.


화가 났다. 뭐 이런 그지 같은 해몽이 다 있나... 나의 화려한 주말, 이렇게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검색엔진 홈페이지에 접속해 똑같이 검색했다.

살구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는 꿈
동업자나 애인, 친구 등 가까운 사람과 헤어지거나 집안에 우환이나 걱정 근심거리가 생기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나는 다른 해몽이 나올 때까지 '정보의 바다'를 떠돌아다녔다. 어떻게든 다른 해몽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우환에서 피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1시간, 또 1시간.. 하지만 모두 다 허사였다. 하나같이 내 꿈이 흉몽이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즈음 와이프가 눈을 떴다. 나는 와이프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와이프도 걱정됐는지 나와 함께 '길몽찾기'에 나섰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를 안아주며 위로한다. "별 일 아닐 거야".. 나는 '그래, 뭐 별일이야 있겠어?'하고 스스로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평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도 찜찜해 부모님께 대뜸 전화를 걸었다.


나/엄마 별일 없지?

엄마/아들, 왜 갑자기. 당연히 별일 없지.

나/어디 아픈 곳도 없는 거지? 아빠도 마찬가지고?

엄마/당연하지.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나/아니야 별일 아니야. 주말 잘 보내.


이제는 마지막, 내 남동생이 남았다. 동생은 회계사 시험에 올인한 상태다. 경기 수원 있는 부모님 집에서 2년 넘게 공부에 매진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부모님의 성화(?)에 시달린 나머지 동생은 지난해(2017년) 초부터 서울 안암 K대학교 주변 하숙집을 구하고 학교 도서관과 하숙집만 오갔다. 핸드폰도 하숙집에 두고 다니고 주변 인간관계도 단절하며 공부에만 매진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봤자 받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는 전화하려다가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이만하면 됐다.


"뭐, 별일 없겠지"





2018.4.9(월) 서울 상수역


오랜만에 회사 기자 동기들을 만났다. 기자들은 자신의 회사 대신 담당하는 출입처로 출근한다. 정치부 기자라면 청와대나 국회, 도청 기자실에, 사회부 기자는 경찰서, 파출소에, 산업부 기자는 주요 기업 기자실 등으로 출근한다. 통상 점심에는 홍보팀 등 취재원과 만나 얘기를 나눈다. 이 때문에 동기라 하더라도 출근지가 다르기에 얼굴 보기가 힘들다.


우리 회사는 월요일마다 회사에서 부서 회의를 한다. 월요일인 이날, 동기들과 점심 약속을 회사 근처 식당으로 잡았다. 근처 커피숍에서 미처 못다 한 수다를 마무리한다. 오후 1시 30분이 넘어갈 즈음 마치 합의라도 한 듯 각자 노트북을 펼치고 기사 작성에 나선다.


산업부 기자인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사 마감에 시달리며 창작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윙~~~윙"

아빠였다. '이 시간에 뭐지?'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서로 일하는 시간 전화를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아빠/뭐하냐?

나/일하지

아빠/동생이 지금 경희의료원에 있대

나/아니 왜?!

아빠/폐에 물이 찼다는데. 병원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이것저것 검사는 해야 한다고 그러네. 서울에 있는 네가 일 끝나면 가볼래? 엄마 아빠는 일 때문에 못 올라갈 것 같아서.

나/폐에 물이 차? 알겠어. 회의가 5시에 있어서 6시쯤 병원으로 갈게



'폐에 물이 찬다는 병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심각한 건가?' 전화를 끊었다. 불안했다. 불길했다. 무서웠다. '병원에서 별일 아니래..'라는 아빠의 말을 끊임없이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번져버린 나의 불안한 마음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최근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일을 접고 노트북으로 검색에 나섰다. 폐에 물이 찼다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찾고 증상과 예후 등을 알아야 했다.


'폐에 물이 차면 어떻게 치료하나요?'

폐에 물이 차는 이유는 주로 폐렴이나 폐의 염증이 물이 차는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근경색, 심장판막증, 고혈압증 등의 심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먹을 때, 잘 때, 운동할 때 모두 제시간을 놓치고 있습니다.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 폐질환이 찾아옵니다.


'음...큰 일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정상적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 이후 병원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이 내 마음은 1분도 안 돼 뒤집혔다. 계속해서 뒤숭숭한 꿈이 떠오르면 서다. 나는 데스크(취재기자의 기사를 편집하고 송고하는 팀장급 기자)에게 보고하고 즉각 경희의료원으로 향했다. '에이 아닐 거야. 무슨, 별일이야 있겠어?' 1분 1초, 내 마음은 타들어간다. 빨리 병원에 가서 동생의 얼굴을 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경희의료원에 도착해 동생이 입원해있는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1인실이다. 병실 손잡이 옆에 설치된 알코올을 손에 묻힌 뒤,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경희의료원 [사진=경희의료원 홈페이지]


문이 열리자마자 침상 위에 앉아 있던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동생을 순간 나는 모든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아, 다행이다. 별일 아니구나..' 환자복을 입고 있던 동생은 나를 보더니 휘둥그래 놀라며 "뭐하러 왔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생은 웃으며 "별 거 아니래. 근데, 이것저것 검사를 받아봐야 하나 봐"


동생은 무뚝뚝한 성격이다. 평소 용돈을 주면 '뭐하러 주냐', 연락하면 '뭐하러 연락하냐'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했다. 자기 병문안에 형이 달려온 것에 대해 자기도 민망했는지 계속해서 "곧 퇴원할 건데, 하러 힘들게 찾아오느냐"는 핀잔늘어놓는다. 나도 응수한다. "뭐 이런 걸 가지고 입원을 해서 나를 여기까지 불러들이냐?"

그렇게 나는 꺼져가던 불안한 감정을 끝까지 숨기고 동생과 농담 따먹기하며 동생에게 이곳으로 오게 된 경위를 물었다.


"한 달 전부터 기침이 계속됐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었는데 낫지 않았. 동네 병원에서 폐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에 작은 이상한 것이 발견됐고 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길래 이곳으로 왔"


대화 도중 간호사가 병실로 오더니, "보호자분, 이곳에서는 마스크를 꼭 착용해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병명이 뭐고, 어떻게 진료를 할 계획이냐고. 그 간호사는 전염성이 있는 '결핵'이 의심돼 피, 소변 검사를 진행 중이고 병실을 격리시킨 거라고 했다. 나 역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검사가 조금 걸릴 듯하여 오늘 밤에는 병원에서 자야 할 것 같다고 간호사가 말한다. '아니 무슨 이런 걸로 병원에서 1박까지 하나...' 속으로 생각했다. 나의 속마음을 간파라도 한 듯, 간호사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병실에서 나간다.


폐결핵

후진국형 질병으로 불리며 과로,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결핵균이 우리 몸안에 침투하면 결핵이 발생하는데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에게는 결핵 증상이 나타난다.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우리 몸으로 침투하기가 쉬운 폐에 결핵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잠복결핵이 활동성 결핵으로 바뀔 경우, 기침, 가래, 열,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다. 별 증상 없다가 정기검진 시 엑스레이에서 이상이 발견돼 폐결핵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도 모르게 결핵을 앓았다가 자연 치유되는 경우가 흔하다. 1차 약제만 잘 복용하면 90% 이상 완치 가능하다.



나/아니... 무슨 젊은 놈이 결핵이여..

동생/아오 내가 뭘 아나

나/마스크 이거 꼭 해야 하냐

동생/그래도 해야지. 근데 속옷이랑 양말, 세면용품 하나도 안 가져왔는데.. 공부할 책도 없고..

나/내가 하숙집에 가서 가져다줄게. 저녁 먹고 있어



K대 정문 앞에 있는 동생 하숙집과 경희의료원은 멀지 않다. 버스로 15분 거리다. 동생 하숙집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었다. 온갖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책상 위에는 코를 풀고 난 휴지들이 널려 있었다. 게다가 좁은 방에 자전거까지 들어와 있었다. '아니.... 와... 무슨 집을 이렇게... 어떻게 이렇게 사냐.....'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폭풍 잔소리를 늘여놓는다.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동생이 가져오라고 부탁했던 물품들을 챙겨 나는 재빠르게 다시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저녁도 먹지 못다.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했다. 나는 수원에 있는 와이프 자취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동생에게 "잘 자고, 얼른 나아 잘 퇴원해라..."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집으로 갔다.


이후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은 나의 마지막 화려한 휴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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