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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Jan 07. 2020

1-② 결핵이 발견돼야만 했다

2018. 4. 10(화) 경희의료원/입원 이틀째
1인실에서 4인실로


동생에게 폐결핵이 의심된다는 의료진의 소견에 안도감이 놓였다. 폐결핵은 폐에 결핵균이 침입해 생기는 전염병으로 1차 치료만 잘 받으면 90% 완쾌될 정도로 예후는 좋은 편이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동생과 1인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내려오실 생각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동생의 간호를 맡기고 정상 출근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또다시 경희의료원으로 뛰어갔다. 엄마는 전화로 내게 "무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동생은 당초 점심에 퇴원할 예정이었다.

의료진의 결핵 확진 판정만을 받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의료진은 전날부터 동생을 1인실에 가둬놓고 각종 결핵검사를 진행했다. 소변검사, 도말검사(현미경으로 가래의 균을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좀처럼 결핵균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추가 검사를 진행됐고, 이로 인해 퇴원은 늦어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경희의료원 호흡기내과 병동은 비상이 걸렸다. 무조건 결핵균이 걸려 나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알리 없는 우리 가족은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후 피검사 등 각종 검사를 진행했지만, 결핵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결핵균은 반드시, 무조건 발견돼야만 했다.


동생은 1인실에서 4인실로 이동했다. 의학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 채 "1인실 비싼데, 아이고 드디어 4인실에 자리가 나서 다행이네"라고 말했다.


1인실에서 4인실로의 이동은 일단 전염성 있는 폐결핵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동생의 폐에는 흉부 엑스레이상 무언가 발견됐다. 그 무언가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가족은 동생과 함께 멀뚱멀뚱 4인실로 옮겨오게 됐다.


흉부 엑스레이 [사진=네이버]


때마침 그토록 보고 싶던 경희의료원 호흡기내과 주치의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치의도 우리에게 할 말이 많았나 보다. 우리를 보더니 나와 엄마를 병실 밖 복도로 불러낸다.


사회부 기자 시절, 경찰에게 "오늘 무슨 사건 있나요?"라고 물을 때, 0.01초 그 짧은 순간에 경찰의 눈동자와 표정, 손짓, 분위기 등 그 모든 것들을 포착해야만 한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반드시 구분해야만 한다. 그래야 물을 먹지 않는다. 물을 먹는다는 건, 다른 언론사에서 사건 기사가 나오는데 나는 사건을 파악하지 못해 기사화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언론계 은어다. 선배들에게 수차례 혼나면서 배운 이 같은 '순간포착 능력'이 이날만큼은 나의 '생존본능'과 결탁해 최고 능력치에 도달했다.


나는 주치의 모든 것을 '스캔'한다. 40대 중반의 비교적 젊은 남자 교수, 잘생기고 상냥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면도는 깔끔하게 이뤄졌으며 넥타이를 맨 세미 정장 차림에 하얀 가운을 입어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임을 느꼈다. 안정감과 신뢰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표정 한편에 불안한 기운이 묻어 나왔다.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나의 동물적인 감각과 생존본능 주치의의 불길한 감정을 포착한다. '분명 무언가 있다..'내 온몸이 떨린다. 그리고 주치의에게 질문을 '내던졌다'.


나/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의사/1차 병원에서 흉부 엑스레이 결과 폐에 이상이 발견돼서 이곳으로 왔는데, 환자가 젊기 때문에 폐암은 애초에 배제하고 당연히 결핵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핵검사에서 계속해서 결핵균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좀 더 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나/무슨 검사를 한다는 겁니까?

의사/폐암이 의심됩니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없으므로 조금만 더 지켜봅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지금 내 앞에 펼쳐졌다. 무슨 이토록 황당무계한 소리란 말인가? 우리 가족은 암 가족력이 없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담배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고, 오히려 담배냄새를 극도로 싫어한다. 폐암은 담배를 피우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 아닌가.


2주 전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 꿈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주변 사람이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인터넷 해몽 글이 뇌리에 맴돈다. 머리가 멍해진다. 이게 다 꿈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젊은 20대가 암 의심을 받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나는 실제로 내 뺨을 힘차게 때렸다. 아팠다. 현실이었다. 벗어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지 않은가. 아직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고, 의심 단계에 불과하다. 결핵검사가 잘못됐을 수도 있지 않은가. 옆에 있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슬 표정으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말한다. "괜찮을 거야. 아직 확진 판정받은 게 아니잖아."


나와 엄마는 다시 동생이 있는 4인실 병실로 들어섰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 환자들을 살폈다. 모두 다 60대 중반 이상의 노인들뿐이었다. 이들 환자와 보호자들은 복도 밖에서 주치의 얘기를 듣고 들어오는 나와 엄마의 표정을 살핀다. 이들은 우리를 연민의 감정으로 쳐다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젊은 환자가 이곳으로 왔지?'라는 호기심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이곳 4인실이 어디인지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암병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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