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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04. 2024

숫자놀음보다는 서로 대화를 먼저...

 우리 사회는 참 숫자에 민감한 국가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내건 2,000명 의대 증원이라는 숫자로 몇 주째 전공의들이 파업하며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느닷없이 ‘1’과 관련된 사건이 터졌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유례없이 미세먼지가 없는 깨끗한 공기의 질을 맞이한 날, MBC 기상 정보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움직이는 파란색 ‘1’을 크게 띄우며 공기의 질이 ‘1’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항상 흐릿한 미세먼지로 뒤덮은 대한민국 하늘이기에, 처음으로 대기의 질이 ‘1’로 기록되었으니 MBC 측에서는 놀라운 뉴스거리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힘 한동훈 비상 위원장을 비롯한 선거 유세자들은 이런 숫자의 표시가 선거 앞둔 민주당을 돕기 위한 선거의 일환이라고 딴지를 걸고 나섰다.


 현재 민주당을 대표하는 색은 파란색이요, 큰 문제가 없다면 투표 순서에서 1을 받게 된다. 그에 비해 여당인 국민의 힘은 빨간색을 쓰면서 숫자 2를 제공받는다. 비상 위원장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상황에서 유독 ‘정부의 흉’을 보는 방송사 MBC가 ‘1’을 크게 띄운 행위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빨간색 ‘2’를 크게 띄우며 날씨 보도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있을 텐데, 왜 유독 ‘1’만 보도하냐는 것이었다.


 ‘1’이 적힌 일기예보에 관한 보도 다음 날 2024년 2월 29일, 저녁 뉴스에서 MBC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상청에서 자료를 제공받아 그날 날씨 정보만을 정확하게 보도했을 뿐이라고 전했다. 그런 방송국의 해명과는 별도로 한동훈 위원장의 말을 듣고 나니 기상 정보에서의 ‘1’이 눈에 띄게 들어왔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별생각 없이 들었던 영상 1도, 영하 1도의 글자였다. 하지만 유독 선거에 민감하며 사소한 숫자, 문구에도 신경을 쓰는 여당 지도자의 말을 들으니, MBC에 영하의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꾸라고 건의해야 하나 생각마저 들었다.


 영하 1도를 파란색 배경의 ‘-1’로 표기하고 영상 30도를 빨간색 배경의 ‘30’으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 뇌리에 박혀 있는 암묵적인 약속이다. 미세 먼지양이 ‘1’인 유례없이 청명한 날을 많이 한 날, MBC 측은 빨간 당 색을 지닌 여당을 위해 빨간색 배경의 ‘2-1=1’로 표기해야 했을까? 이렇게 표현했다면 여당은 또다시 ‘1’의 숫자가 많이 쓰였다면 화를 내지 않았을까? 숫자 때문에 이래저래 피곤한 나날이다.


  4월 선거까지 한 달이 남았다. 여당과 야당이 선거에 목숨을 걸며 치열한 혈투를 벌이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다’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이번 선거처럼 재미없는 투표도 없다. 여당도 야당도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 거대 투표수로 적절하게 국민의 소리를 잘 들어주기만을 바랐던 야당은 여당을 비롯한 정부의 입틀막 공격에 맥을 못 추는 모양새다. 또 여당을 비롯한 정부는 국민이 처해 있는 상황, 쪼그라드는 연구비, 치솟는 물가를 어떻게든 해결해 주길 바라는데 입만 열면 입을 틀어막고 내쫓는다. 이런 정당들 속에서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할까? 차라리 가상 속의 홍길동이라도 등장해서 활빈당을 만든다면 그에게 표를 던지겠다.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다 보기 싫은 세상이다.


 이런 행태를 가리켜 경희대 연구교수 김만권은 2024년 1월 28일 <경향신문>‘재난을 대하는 권력의 예의’라는 칼럼에서 미국 컬럼비아대 존 머터 교수의 <재난 불평등>(2020)을 인용하며 “권력자들은 가식적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선거 시기를 제외하면 시민의 삶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그의 말에 백분 동의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는 지도층의 모습에서는 ‘시민의 삶’에 대한 관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단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이라는 선언에 앞서 전공의들이 환자들을 떠난 지 여러 주일째다. 대다수 국민이 불안한 마음으로 그 사태를 바라보는 가운데 의사들이 저버린 병원에서는 불쌍한 희생자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강제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일방적인 소통이 국민의 반발을 받을 법도 하다. 워낙 안 좋은 소리만 나오면 입부터 틀어막기 좋아하는 ‘악명 높은’ 정부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 전공의들은 정부의 입틀막 공격에 당한 희생자들이다. 그럼에도 파업에 나선 의사들이 국민의 일방적인 욕을 들어 먹는 이유는 그들만 바라보고 있는 환자들을 못 본 체 떠났기 때문이다.


 ‘1’에 예민한 여당 대표도, ‘2000’에 민감한 의사 집단도 모두가 답답할 따름이다. 서로 양보 없는 답답한 대치만이 가득하다. 본인만의 아집에 갇혀 있을 때는 어떤 목소리도 듣지 못한다. 만물이 시작되는 3월의 봄이다. 더 이상의 침 튀기는 싸움 말고, 숫자놀음보다는 대화로, 이제부터는 지금의 상황을 염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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