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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pr 01. 2024

<미국 작가 앤 라모트가 건네는 말>

<쓰기의 감각>

‘미국의 수많은 작가 지망생이 손꼽는 인생 책’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내용이 담겨야 할까? 출판사가 선전하는 앤 라모트의 책 『쓰기의 감각』의 광고를 읽고 난 첫 느낌이다. ‘에이 또 비슷한 글쓰기 책이겠지’ 싶다가도 ‘출간 후 25년간 한결같이 아마존 글쓰기 분야 베스트셀러’라는 문구에 마음이 자꾸만 흔들린다. 또다시 출판편집인들의 영리한 술수에 빠져 ‘글쓰기 책’을 산 ‘호갱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걱정이 살짝 들지만, 이내 ‘삶의 감각을 깨우는 글쓰기 수업’이라는 책 표지 문구에 현혹된다. 맞다. 나는 ‘글쓰기 작법서’를 좋아하는 호구였다. 매번 아침마다 ‘일하기 싫다’라는 푸념을 반복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속성으로 천재적인 글쓰기 방법을 터득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빨리 본업 탈출을 꿈꾸는 이가 바로 나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웅진지식하우스, 2018)은 구겐하임 문학상 수상자이자 미국에서 ‘대중의 작가’로 불리며 널리 사랑받는 작가의 글쓰기 기억이 듬뿍 담긴 책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진행한 글쓰기 수업에서의 사연들을 토대로  “글쓰기와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들려준다. 본인이 터득한 글쓰기에 관한 경험은 물론이고 작가로 살아간다는 삶의 고통스러운 실체, 그리고 글 쓰는 삶의 가치를 유쾌하면서도 매우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 책은 ‘1.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는 방법’, ‘2. 쓰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 ‘3. 계속 써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들’, ‘4.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5. 마지막 수업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5가지 목차로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다듬는 방법’은 꽤 실용적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이라면 맛깔난 대화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다양한 주제의 소설을 써온 앤 라모트는 소설에서 좋은 대화를 쓰기 위해서는 이미 쓴 문장을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난 후 그 대화가 실제 바깥사람들이 말했을 때 어떤 모양새일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읽기 위해서는 소설 속 캐릭터들이 각자의 개성을 지닐 수 있도록 대사를 만들어야 한다. 특별한 대화 만들기 방법의 하나가 바로 ‘주인공을 철천지원수와 ‘엘리베이터’ 같은 제한된 공간에 밀어 넣어 어떤 대화를 나눌지 상상해 보기‘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사람의 감정이 극도의 경지까지 밀려오고 성격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반응과 말들이 오가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소설의 대화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상황마다 “그 목소리를 제대로 포착”(p.128)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3장 쓰는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이상하게도 글을 쓰다 보면 본인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하고 ‘쉽게’ 좌절감에 빠진다. 앤 라모트는 매번 그런 열등감을 느끼며 자학의 땅굴에 빠지기보다는 다른 방식의 해결을 권유한다. 그중에서 클라이브 제임스의 시의 일화는 재미있다. 그녀는 그의 <나의 경쟁자의 책이 헐값에 팔렸다>를 언급하며 “그래서 나는 기쁘다”라고 시작하는 시의 첫 구절이 “그 어떤 말보다 도움이 되었다”(p.208)라고 말한다. 때로는 아무리 사심 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라도 ‘괜히 미운’ 경쟁자의 글쓰기 성공을 아무런 ‘질투’ 없이 온전하게 기뻐하고 축하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차라리 그런 질투의 감정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글을 써 보라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모든 일을 덜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보다 천천히 움직”이고, “좀 더 자주 바깥에 나가”(p.211) 다 보면 마음속의 우울감을 없앨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앤 라모트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잘 쓰지 못할까 봐 두렵다는 이유”로 글 쓸 시도를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녀는 “주눅 들어서는 결코 자신감 있게 글을 쓸 수 없”고 ‘글을 잘 쓸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야말로 ‘글쓰기의 원천’이라고 굳건하게 말한다. 솔직히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지만, “글쓰기는 식은 죽 먹기지”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혹 주변에 그런 인물들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람들은 어쩌면 매일 글쓰기를 시도하며 남모를 자신감을 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표현처럼, ‘자신감’은 “머릿속이 텅 비어 있을 때도 온갖 이미지와 아이디어와 향기를 폭포수처럼 퍼부어” (p.263) 주는 글쓰기의 비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다 완독 한들 ‘베스트셀러 작가’가 당장 될 수 없다. 무협 소설처럼 우연한 기연을 얻은 ‘지질한’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절대 신공의 고수가 되는 사연은 현실에서만큼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다른 작가의 글쓰기 책보다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앤 라모트는 글 쓰는 감정들과 경험을 세상의 어느 작가보다 솔직하면서도 소탈하게 전해준다. 어떨 때는 작가의 ‘징징거림’이 귓속에 메아리치고, 어느 순간에는 작가의 진지한 면모 때문에 깜짝 놀란다.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은 그녀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동네 언니’처럼 편하게 여기며 글을 쓰는 고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것이다. 앤 라모트의 글은 거리감을 느끼는 독자들의 마음을 한없이 가깝게 허무는 매력이 있다.


 세상에는 글쓰기만큼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활동도 없고, 계속 지속하기 어려운 일도 없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다면 금방 처리해야 할 의무와 본업에 뒤처지기 십상이다. 또, 일단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 끊임없는 열등감에 시달리게 된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많은지!  지금 가고 있는 글쓰기의 길이 황금빛 돈이 쌓이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길이 될지, 아니면 그저 늘그막에 본인의 삶만을 기록할 수 있는 ‘쓰는 인간’이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책은 다른 작법서들처럼 “이렇게 쓰기만 하면 무조건 작가가 된다”라는 허황한 꿈을 안겨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은 글쓰기에 대한 크림처럼 부드러운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책이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닥치고 일단 써 봐라.’라고 전하는 유쾌한 언니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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