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은 그럴 것이라고 기대했던 상황이 예상과 달라지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공감을 보내거나 아니면 혹평하거나 둘 중 하나 말이다. 최근 2024년 9월 13일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2’는 이러한 반응의 저울 위에 오른 듯싶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배우들의 액션이 통쾌하다는 반응과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평가로 설왕설래다. 영화 평론으로 유명한 이동진은 ‘베테랑 2’에 대해 ‘당혹스런 오프닝과 엔딩을 위한 엔딩 그리고 그 사이의 종종 갸웃거려지는 장면들’이라는 한 줄 평을 남겼다. 그만큼 이 영화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이 떠들썩하다. ‘베테랑 2’는 지난 2015년 관객 수 1,341만 명을 동원한 <베테랑>의 속편으로, 9년 만에 개봉한 기대작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도박판을 소탕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는 부유한 아줌마 복장의 ‘봉윤주’(장윤주 분)와 차 안에서 잠복하고 있는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의 모습을 교대로 비추며 시작된다. 주인공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은 여전히 가족들을 잘 못 챙겨 마누라에게 혼나고 밤낮없이 범죄들과 싸우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성범죄를 저지른 한 교수의 추락사가 이전에 발생했던 살인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전국이 떠들썩해진다. 이 일을 저지른 연쇄살인범은 ‘사법기관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악인’을 대신 처벌하는 ‘해치’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치른다. 그는 곧 다음 살인 대상을 지목하고 그 일에 관한 예고편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전국의 유튜버들을 비롯한 국민은 해치의 이런 행동에 열광하고 높은 관심을 보낸다. 한 유튜버는 국민의 이런 관심을 더욱 집중시키기 위해 가짜 해치를 섭외하는 자작극을 벌인다. 가짜 해치를 잡는 과정에서 서도철은 정의감 넘치는 막내 형사 '박선우' (정해인)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그를 강력범죄수사대에 합류시킨다. 이후 사건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데….
사람들이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관점과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대부분 관객은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며 배우들의 호쾌한 액션과 동시에 ‘악인을 처단하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 하지만 ‘베테랑 2’는 관객들의 그런 눈높이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전작 ‘베테랑 1’의 조태오(유아인 분)와 같은 악당을 완벽하게 벌주는 통쾌한 결말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무척 찝찝한 마음에 휩싸였을 가능성이 크다. 뭐랄까, 류승완 감독의 이번 ‘베테랑 2’는 ‘선과 악의 뚜렷한 구조’, 그리고 ‘악의 처단’이라는 액션물의 일반적인 서사구조를 따르기보다는 ‘사적 제재의 타당성’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온당한 벌을 받지 않은 악인을 본인만의 정의(定義)로 처리하고 있는 ‘해치의 모습을 통해 ‘자, 공권력이 해결하지 못하는 심판, 개인이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라고 자꾸만 묻고 있다. 게다가 영화 속에는 현실을 그대로 투영한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등장한다. 형사가 범인을 잡으려고 질주하는 순간 시민들은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유튜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연쇄살인마 ‘해치’를 이용해 자극적인 방송을 만든다. 선과 악의 구별조차 여론에 맡기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마음마저 든다.
‘돈이 많고 빽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 속 불만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 속 연쇄살인범 해치의 범죄를 마냥 욕하면서 바라볼 수 없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당위성마저 부여할지도 모른다. 결국 영화 속 해치의 범행은 우리의 주인공 서도철에 의해 해결되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그 역시도 현실 법을 따르는 정의로운 형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그동안 열심히 체포했던 악인들이 쉽게 풀려나는 모습에 분노하며 몰래 ‘범인을 죽여야 한다’는 둥 법과는 상관없이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는 감정에 취해 ‘그냥 해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악인을 죽이는 해치가 본인의 행동을 정당하게 여기며 서도철에게 들이대는 변명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은 해치의 정체성이다. 감독은 그에게 아무런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 인물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했던 악인들을 여론에 밝혀진 그들의 범행 그대로 죽인다. 해치가 범행을 위해 참고하는 기준은 오로지 미디어들에서 떠돌고 있는 여론이다. 그에게 범행 대상자가 정말 악인인지. 아니면 ‘마녀사냥’에 희생된 피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인을 저지를 뿐이다. 관객들은 이 장면들을 보며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사회에 풀려난 악인들을 대신 처벌하는 대리적으로 통쾌함과 설령 악인이라도 법이 아닌 범죄로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관한 질문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결국 영화의 끝부분에서 서도철이 말하는 "사람 죽이는데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어?"와 "살인은 살인이야."라는 대사로 사회악을 처단한다는 해치의 정당성은 무시된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서도철 역시 선과 악이 불분명한 부조리한 현실 앞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그동안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의 혼란은 클 수밖에 없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 2’에서 소셜미디어의 여론 재판과 사적 제재에 대한 열광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고 나중에 진실이 드러나도 우리는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손쉽게 방어하고 다른 분노 거리를 찾아서 편리하게 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반성적 시선을 담고 싶었다”고 한겨레 신문(2024.09.19., 김은형 기자)과의 인터뷰에서 속내를 밝혔다.
‘베테랑 2’는 무엇을 영화에서 기대하느냐에 따라 관객들의 반응과 평가가 바뀔 듯싶다. 류 감독의 발언처럼, 사회현실과 정의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라면 이 작품은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현실과 영화 속 내용을 비교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본인을 발견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극 중에서 연쇄살인범 해치가 그만의 서사를 가지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해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되는 인물이지만, 결코 좋아할 수도 그렇다고 너무 미워할 수도 없는 악인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기억과 판단의 과정이 미디어에 좌우되는 요즘이다. 이 영화는 시시때때로 여론에 따라 미움과 선호가 교차하는 우리 사회를 위한 경종이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찝찝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영화 ‘베테랑 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