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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24. 2024

빠른 교체를 경계한다.

 얼마 전 화장실 손잡이를 바꿨다. 10년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새로 달았던 문고리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도금이 벗겨져 너덜너덜해진 탓이다. 그럼에도, 게으름 때문이지 미련 때문인지 오랜 시간 손잡이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번에야말로 문고리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날로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매일 손잡이의 까칠한 감촉과 손에 묻어 나오는 초록색 가루를 꺼림칙하게 여기면서도 계속 미적거리던 나였다. 왠지 모를 미련으로 헌 손잡이를 그저 모르는 척했던 지난 시절의 망설임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 빠른 변심이었다.


  사람들이 바뀌고 채워지는 빈자리는 어렴풋한 헛헛함이 같이 하지만, 물건들이 바뀌고 채워지는 빈자리는 늘 설렘이 감돈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바꾼 손잡이가 좋기만 했다. 하얀 욕실 문짝에 은색으로 번쩍이는 새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뿌듯함이 밀려왔다. 예전에는 헌 문고리를 만질 때면 미세한 초록색 녹 자국들이 손가락 사이 사이에 묻어 있는 것 같아 꼭 세면대로 달려가 위생 강박증이 있는 사람처럼 손을 박박 씻어댔다. 하지만 이 손잡이는 전혀 그럴 염려가 없었다. 욕실 조명에 따라 빛을 달리하는 매끈거리는 질감이 ‘나는 완벽하오’라는 듯 뽐내고 있었다.


  이쯤 되면 적절한 시기에 제법 괜찮은 욕실 손잡이를 찾아낸 나를 자랑스러워해야만 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새 손잡이에 정을 붙이면 붙일수록 내 마음은 이상하게 오락가락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루는 좋았다가, 하루는 분리수거통에 들어가 이미 예전에 작별 인사를 마친 옛 손잡이를 생각하며 새로 교체한 문고리의 흠을 자꾸만 찾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빠르게 교체되는 물건들을 보면 그저 좋다가도 한 편으로는 서글픈 씁쓸함을 머금는 안 좋은 버릇이 생겼다.


  예전에는 오래 쓴 물건이 낡아지면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것을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리 새 물건이라도 계속 쓰다 보면 낡아지고, 고치다 안되면 새로운 물건으로 바꾸는 일이 진리인 양 말이다. 올해로 결혼 생활 21년째인 우리 집엔 혼수품으로 가져왔던 물건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미 수명을 다한 물건들은 몇 번의 이사와 잦은 고장 등등의 이유로 새로운 물건으로 쉽게 교체되었다. 제일 처음에는 장롱이, TV가, 소파, 냉장고, 에어컨 등…. 이제 우리 집에는 삐걱거리는 부엌 식탁과 김치통 속에 넣기만 하면 시큼털털한 묵은지만 만들어 내는 김치냉장고만이 마지막 교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오래된 물건은 손때가 묻어 익숙하다는 점 빼고는 새로운 제품보다 좋은 점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은 새로운 상품으로 바꾸면 바꿀수록 이득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제품들은 편리하고 효율적인 기능들을 가득 장착했고 가장 중요한 전기세를 아낄 수 있는 장점까지 있었다. 그렇게 고심 끝에 바꾼 전자 제품들이 우리 집에 끝까지 자리 잡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아무리 반짝거리는 새 상품이라도 쉽사리 무너뜨렸다. 그렇게 각기 다른 시간 속에서 큰돈을 들여 바꾼 새 제품들은 조금씩 낡은 세월의 때를 묻히면서 또 다른 교체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돈이 돌고 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낡은 물건은 버려지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야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다. 소비자로서도 고장 난 물건들을 고치기 위해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여유가 있다면 바꾸는 것이 차라리 낫다. 요즘은 10년이 넘은 전자 제품을 고치래야 고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 제조회사가 제품 소비기한을 소비자들의 예상보다 훨씬 짧게 잡은 탓에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구매자들이 고장 난 제품을 수리하고 싶어도 부품이 없어서 고칠 수 없다. 핸드폰도, 노트북도 예전에 비해 기계 수명이 너무 짧아졌다. 그러니 소비자는 아무리 잘 쓰는 전자기계라도 시중에 바꿀 수 있는 부품이 없으면 꼼짝없이 바꿔야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집 안에 있던 전자 제품들은 모두 거의 비슷한 사연을 안고 우리 집을, 내 곁을 떠나갔다. 5년, 10년, 15년을 넘게 손때가 묻은 제품들을 계속 쓰고 싶어도 “시중에는 더 이상 이 제품을 고칠 부품이 없습니다.”라는 AS 직원의 한마디에 결국 새로운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궁상맞게 삐걱거리는 옛 전자 제품들을 끌어안고 미련을 떨기보다 새롭게 제품을 생산하고, 신제품 구매만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반짝이는 새로움이 강점으로, 더 큰 매력으로 비치는 세상이다. 빠르게 바뀌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한낱 노동자 중 한 명으로 살고 있는 나는 그런 잦은 교체가 무섭다. 빠르게 대체되는 상황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무뎌질수록 불안하고, 쉽게 버리는 익숙함이 사람들 마음속으로 점점 깊게 파고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매년 새해 학교들과 새로운 계약을 앞둘 때면 이런 불안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내년에도 잘리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새롭지 않다고 잘리면 어떡하지? 아직 일할 수 있는데….’ 항상 한 해의 첫 달은 일자리에 대한 공포와 걱정과 맞서야 하는 긴장되는 시간이다.


  이런저런 걱정들은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 더 묵직한 무게를 더한다. 그럴수록 운동하고 체력을 키우며 악을 물고 버티고 있다. 매일 공부하고, 책을 읽고, 교육을 들으며 새로운 지식을 머릿속에 가득 채운다.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으면 꼭 하루치의 불안들을 무심결에 끄적이는 글 속에 잔뜩 녹여낸다. ‘익숙함과 이별 시간'을 항상 상상하고 지만, 아직까지는 마음속에 늘어나는 두려움의 조각들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매번 바뀌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나를 투영한다. 그런 불안감 때문에 익숙한 물건들을 잘 못 버리는지도 모르겠다. 매 순간 빠른 교체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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