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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마이 Jun 22. 2024

그럴싸한 결과물이 아닌 Impact 만들기.

대학생활 고민을 풀어주는 서비스 만들기

<2편 보러가기>

2편: 아무도 안 써본 제품 가격 정하기



프라이싱(Pricing)수업의 인연

개강 첫주차가 됐을 때 즈음, 교내에서 만난 절친 덕룡은 이번 학기에 안 들으면 평생 후회할만한 수업이 있다고 말했다. 자기 학과 수업 중에 제품의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알려주는 '프라이싱 수업' 존재한다면서 '정말 재밌을 것 같고, 같이 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수강신청 기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더욱이 18학점을 꽉꽉채워 초과학기를 다니는 나는...나는....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정말 궁금했던 분야였다. 매번 가격을 정할 때마다 '원가의 3배 정도 해서 팔면 됩니다' 라던가, '그냥 무료로 하죠'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흠칫했던 나는, 가격 설정에 대한 수업이 있다는 말을 듣기만 해도 설렜다. 그렇게 며칠 뛰는 심장을 붙잡고 고민하다가 결국 교수님께 청강이 가능할지 여쭤봤고, 교수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나는 한 학기에 21학점을 듣는 초과학기생이 되었다) 수업을 담당하셨던 김계숙 교수님께서는 월마트, 존슨앤존슨, 이마트를 거쳐오신 프라이싱 전문가셨다. 그리고 정말 프라이싱 분야에 대한, 그리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넘치셨다. 수업을 듣고 나면 정말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고싶은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실제로, 수업 중간, 기말고사 과제로서 '창업 계획'을 해오라는 주문까지 주셨다. 자칫하면 흐릿해질 한 학기였는데,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있어 마음이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이 글은 수업을 통해 약 3개월동안 김계숙 교수님을 통해 배운 프라이싱에 대한 내용,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작은 경험들의 조각들, 그리고 대학 생활 중 느꼈던 고통들이 하나로 묶인 프로젝트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여정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 알겠지만, 나는 학교의 수업, 그리고 학과가 주는 가치들을 사랑한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평생 용기내서 배우지 못할 지식' 들이 있으며, '나중에 일하다가,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죽는 것이 싫어서' 추가학기까지 다니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그건 HCI와 UX라는 분야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다루는 학과를 찾아다녔다. 교내에서는 '공업디자인'학과에서 이러한 부분을 많이 다루길래 관련 수업들을 부전공으로 배웠다. 학교 안과 밖에서 머리가 깨지면서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다보니 통계라는 분야가 더 궁금해졌다. 어떤 것들은 졸업하고 밖에서 일하며 몸으로 배운 뒤, 아는척 할 수도 있었지만, 통계는 아니었다. 졸업 후 일을 시작한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선형대수'책을 펴고, '미적분' 문제들을 찬찬히 풀어보고선, 컴퓨터를 켜고 파이썬으로 데이터를 전처리하고, 분석하고 나서, 상관분석, 회귀분석 나아가 머신러닝, 딥러닝까지 건드리는 날이 올까? 설령 열정이 넘치는 내가 그렇게 배울 수 있다고 쳐도, 지금보다 수십배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할 일이었다. 이에 교외에서 함부로 배우기 힘든 경영, 통계 지식들을 학교 안에서 맛보고 가기 위해 통계학과 커리큘럼과 가장 유사한 과를 찾았고, 결국 'AI빅데이터융합경영학과'를 2번째 부전공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총체적으로는 회계, 경제, 경영, 통계를 개론 수준에서 훑어 배우는 시간이 되겠으나, 이렇게 투자할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가 목표가 아니라, 그 분야를 안 배워서 두려워하고 피하는 모습을 없애기 위한 시간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아가 대학 교육에 쏟아부은 시간은 절대 매몰비용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글은 차후 다른 글로 써내릴 예정이다.)


사실 내 사례는 그리 유별난 편은 아니다. 요즘 졸업한 친구 중에 전공을 몇 개씩 가지고 졸업하거나, 입학한 과랑 졸업한 과가 다른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다니는 학교는 더더욱이 복수전공, 부전공, 전과를 (의지와 노력, 그리고 용기만 있다면) 굉장히 쉽게 할 수 있도록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나 또한 이런 이점을 활용해 부전공, 전과를 신나게 경험했다. (덕분에 추가 학기를 하게 된 것도 덤이다.) 이렇게 신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점을 들으면 주변 친구들은 '이것저것 배우고 나가면 좋겠네'라고 얘기하고 그냥 열심히 학교를 다녔겠거니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매우 고통스럽고 아프다. 전공과 관련된 고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무겁기 때문이다. 한 학기 등록금을 약 400만원이라고 생각하면, 고민 하나에 2-3년에 해당하는, 약 3000만원 어치의 결정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학교 전공과 관련된 고민은 '청춘 고민 3종 세트'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럼 '청춘 고민 3종세트'는 어떤 구성품으로 이루어져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방황하는 청춘 3종세트

첫번째 구성품은 '졸업하고 뭐 하지'이다. 앞으로 일하고 싶은 분야, 일의 종류, 직무, 기업일수도 있고 창업, 석박사 같은 다른 고민일 수도 있고, 연애, 결혼, 여행, 이민, 가족같은 개인적인 고민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은 비단 한국 대학생뿐만 아니라 이건 전세계 대학생들이 지난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던진 캐캐묵은 물음으로서 대학생의 신분을 벗어났을 때의 '자유'를 (혹은 내던져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다.

    두번째 구성품은 '이 분야는 미래 전망이 좋을까'이다. 기술 발전, 경제, 지리, 환경 등 요인이 무엇이든간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을 예측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교 교육에 대한 고민은 '공부'라는 본질에서 멀어지고 슬금슬금 '취업', '돈', '미래'같은 단어들로 변신한다. 그러나 이 고민을 해봐야 사실 동전던지기와 다를 바 없는 결론을 내며, 나아가 트렌드를 잘 봤다고 해도 그 유행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청춘 고민 3종 세트'의 가장 큰 주춧돌을 차지하는 마지막 구성품이 있으니, 그건 바로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잘하지?'이다. 적성과 흥미를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이 질문은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20대를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민하는 주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학생이란 것이 본래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매해 약 천만원의 돈을 내고 이러한 적성과 흥미를 갈고 닦으라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나를 총체적으로 이해해야하는 이 실존적인 질문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가'는, 가끔 묵직하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정리하자면. '졸업하고 뭐하지'라는 벙벙한 질문, '이 분야는 미래 전망이 좋을까'하는 위태로운 질문,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잘하지?'하는 실존적인 질문 세 개가 모여, '방황하는 청춘 3종 세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 자체로 모여도 위태롭기만 하다. ©joonmai

'방황하는 청춘 3종 세트'... 여기까지 사실 남 얘기처럼 썼지만, 전부 내 얘기다. (글을 쓰면서도 울화통이 터진다) 작성자 본인은, 1학년 당시 다니던 전공에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껴, 다른 과로 전과를 신청했으나 한 번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다음해에 두 번째 시도만에 합격했다. 그리고 바뀐 과에서 새로운 내용을 배우다보니까 더 넓은 분야의 것들을 배워보고 싶어 인접 분야의 부전공까지 듣고 있다. 이젠 한 학기만 지나면 드디어 졸업생이 된다. 

    이렇게 학교를 다녔다보니 거쳐간 학과만 해도 벌써 4개다. 정말 말그대로 '방황하는 청춘 3종 세트'를 몸으로 겪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끊임없이 느꼈던 가장 큰 불편은 바로 '정보 격차'였다. '~학과를 다니는 친구들은 어떤 걸 재밌다고 느끼고 있지?' 혹은 '~학과에 어떤 부분이 아쉽다고 느끼지?'같은 넓은 범위의 궁금증부터 시작해 '~과목을 듣고 싶은데 먼저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나?',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은 어떻지?'같은 자잘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알 길이 없었다. 그 과에 다니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해도 그 친구가 모든 수업을 다 들은 사람도 아닐테니... 참 어려웠다. 마음같아서는 해당 학과 복도에 서서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하나씩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순 없었기에 에브리타임부터 시작해 구글, 유튜브, 네이버 블로그, 하물며 다른 대학 학과 게시물까지 닥치는대로 뒤져보면서 정보를 얻고나서야 부전공, 복수전공, 전과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무려 2-3년의 교육을 결정할, 약 3천만원 규모의 결정을 꽤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굵직한 수업은 이미 다 들었고 졸업을 앞둔 지금은, 내가 공부했던 학과와 관련된 정보를 물어보면 내가 아는 한 대답해줄 수 있는 내용이 산더미다. 그리고 실제로 누가 물어봤을 때 꽤 큰 도움을 준 경험도 점점 쌓이게 되었다. 



그럼, 나같은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학과 관련 정보를 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사실 같은 대학교를 다녀도 친구 관계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넓어지진 않는다. 본인 학과에 있던 친구들과 약 4년 동고동락하는 게 대단히 일반적이다. 그나마 다른 과 친구들과 교류할 일이 있는 곳은 동아리나 교양 팀플 정도겠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서로 잘 친해져 정보를 잘 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만일 상황이 정말 이렇다면, 타 학과나 타 단과대학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친구들을 매칭해주고 서로 정보를 1:1로 만나서 나눌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생각 프로세스를 발표용으로 도식화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그럼,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일의 순서를 만들어본다면 크게 6단계로 나눠질 것이다.


1. 우선 주변에 있는 학과 친구들 중, 부/복수전공이나 전과 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모아 인재 풀을 세팅한다.

2. 인재풀에서 원하는 재학생을 골라 대화 할 수 있는 신청 폼을 제공한다.

3. 접수된 정보를 해당 학과생 (멘토)와 질문자(멘티)에게 공유한다.

4. 같은 대학, 같은 시간대를 지내는 대학생인 장점을 활용해, 공간시간대를 맞춘다.

5. ~학과 재학생과 멘토링을 진행한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이걸 창업 프로젝트로 키워보고싶었다. (앞서 말했듯, 프라이싱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는 점도 한 몫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UX리서치에 관심이 많은 나와 덕룡은 본격적으로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교에 있는 친구들에게 무작위로 설문을 돌려서, '학과 고민이 많으신가요?'라던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시나요?'라고 7점 척도로 그 수요를 검증할 수 있는 탐색적인 조사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싶었다. 학과별로, 단과대학별로 그룹을 나누고, 그 강도가 강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사해보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중간고사 발표에 녹여내면 그럭저럭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았다! 둘은 노트북을 켜고 이런 저런 생각을 굴렸으나, 이미 시간은 조금 흘러 중간고사 기간이 되어버렸고, 각자 시험을 위해 중간고사를 공부하느라 어느새 약 2주 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중간고사가 끝나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설문 조사를 통해 수요를 확인하고(못해도 최소한 30명 이상의 표본을 모아야하는 노력이 필요), 서비스 형태의 웹이나 앱을 만들고(개발자를 구해 협업하던가, 직접 노코드 툴로 만들어야함), 서비스의 오류를 고치고(GPT, 개발자와 함께 씨름을 함), 정책의 구멍을 메꾸고(고객일 분들에게 된통 욕을 먹음)... 이 모든 단계를 거치면, 이 아이디어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도 잘 모르면서 허송세월 반년은 지나있을 것 같았다. 이 방법은 impact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그냥 그럴싸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릿속이 단순 명료해졌다. '최종적으로 제공할 가치를 제공한 다음에, 그 가치가 어떤 화폐적 가치로 환산이 가능할지 조사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럴싸한 웹이나 앱 형태로 이런 저런 설명을 하면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지금 문제를 풀기 위해 너무 느린 방법이었다. 그럴싸한 결과물이 남겠지만, 문제를 푸는 과정은 아니었다. 따라서 내가 당장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주고 (멘토링을 해주고) 나서, 이게 얼마나 유용했는지, 얼마를 낼지 물어보는게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판단했다. 이 방법이 옳을 것이라 생각이 들자마자, 즉시 덕룡에게 연락해, 이렇게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덕룡의 수락을 들은 뒤, 둘은 즉시 멘트를 작성해 에브리타임을 통해 멘티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실제 모집에 사용한 이미지


실제 멘토링 결과 및 기타 리서치 결과는, 2편 <아무도 안 써본 제품 가격 정하기> 편에서 계속됩니다. 


<2편 보러가기>

2편: 아무도 안 써본 제품 가격 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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