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마이 Dec 19. 2024

배우는데 쓴 시간들은 절대 매몰비용이 될 수없다.


대학교 5학년의 고백

마치 다이소에서 물건 고르듯, 듣고 싶은 수업을 마음대로 골라 들었던 대학 생활을 했던 나였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기면,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학교 밖을 쏘다니기도 했고, 그렇지 못할 땐 학교 안에서 수업을 찾아 들었다. 그렇게 들은 어떤 수업은 정말 수 백권의 책을 능가하는 생각의 전환을 주었다. 어떤 수업은 그냥 책으로 읽었으면 이틀만에 이해할 법했는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생각보다 벽은 높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식의 벽을 두들기려 노력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박찬욱 감독을 잠시 인용할 필요가 있다.

박찬욱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청룡영화상 감독상의 대리 수상을 맡은 적이 있다. 그 때 박찬욱 감독은 <설국열차> 대리 수상 소감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영화 대사를 인용한다. 실제 대사는 이러하다.

워낙 18년째 꽁꽁 얼어붙은 채로 있다보니까,
이게 이제 무슨 벽처럼 생각하게 됐는데
사실은 좆도 문이란 말이지.

사실 대학 수업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엄청난 지식 얻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수업을 통해 두려웠던 것들을 직면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두려울 것이 줄었다. 다르게 얘기하면, 대학 수업은 겁을 없애는 작업이었다. '벽'을 '문'으로 바꾸는 순간, 겁은 없어져왔다.


    입시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선택한 대학은, 내 기준에서는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만 갈 수 있고, 나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벽이라고 생각하고 멀리만 보면서 매일 좌절하고 겁냈다. 특히 고3 때 대학에 다 떨어져버린 나는 몸둘바를 모르고 땅굴 속으로 푹 꺼졌었다. 재수학원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독려 덕분에 어찌저찌 나름 뼈를 깎는 노력을 했고, 나는 간신히 학교에 들어갔다. 돌이켜보니 한 해에 60만 명이 넘는 그저그런 벽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일단 대학교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졌다. 

    '아 이제 큰 벽을 넘었으니 모든게 해결됐다' 고 잠시 안도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학교가 아니라 학과를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배우고 싶은건 시각디자인이었는데, 나는 손으로 섬세한 공예품을 만드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아뿔사, 이제 다른 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두려운 벽으로 변했다. 1학년을 열심히 아둥바둥 다녔다. 수업은 재밌었지만 가슴이 뛰진 않았다. 그렇게 2학년이 됐고, 그 쯤되자 다른 학과의 수업들은 단단한 벽처럼 보였다. 심지어 마지막 발악으로, 학과에 대한 절망감을 능동적으로 풀어보고자 전과를 신청했다. 꽤 간절했지만 시원하게 전과 시도를 말아먹었다. 눈 앞에 있는 벽이 더 커졌다. 답답한 마음에 인턴을 하면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렸고, 부딪혔다. 그렇게 다시 학교에 돌아오자 학과를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다른 학과를 바라보는 나의 두려움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한 채 벽을 한 번 더 두들기자는 마음으로 전과를 신청했고, 붙었다. 그렇게 다른 학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이런 경험이 몇번 쌓이고 나서, 내가 벽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나열하기 시작했다. 학교라는 벽을 넘으니 학과라는 벽이 있었다. 학과라는 벽을 넘으니 이제 된건가? 나는 내 주변에 정말 벽이 없는지 다시 생각했다. 디자인 너머의 마케팅, 영업, 개발 같은 분야가 나에겐 벽이었다. 그 벽들을 어루만지면서 벽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벽처럼 보이지만, 훌쩍 넘으면 뭐가 보일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세게 때렸다. 그래서 부전공, 복수전공이라는 패를 더 공격적 사용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학교 수업들을 막 듣기 시작했다. 인턴십을 지원할 때도 더 거침없어졌다. 떨어지면 그만. 붙으면 대박.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한 2년 정도를 그렇게 벽과 문의 경계를 계속 허물어가면서 달렸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간사한 마음이이었다. 언젠가부턴 낮은 벽들을 찾아다녔다. 벽이 너무 높게 느껴지면, 원래 하던대로 열 수 있는 문을 찾아서 수월하게 열고 으스댔다. 그리고 내가 연 문을 여전히 벽으로 느끼는 친구들을 내려다보며, 부끄럽게도, 자만했던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이런 나의 거만한 생각때문에, 다른 벽들이 더 높고 단단해져서 더 이상 문처럼 보이지도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쉬운 문을 척척 열고 다니면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다가 시간이 흘러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 직전, 내가 지금껏 쉽게 열었던 문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두려워서, 어려워서 잔머리를 굴리며 요리조리 피했던 모든 것들이 막다른 길에 끝에 서서 높은 성벽이 되어 나를 가두리치고선 말했다.


'쉬운 길 걷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그게 너의 세상이야'. 


 아, 나는 거대한 사각형의 미로 안에서 길을 찾기만 했지, 미로를 이루고 있는 큰 벽이 있다는 것을 또 잊고 있었다. 나의 세상이 엄청나게 작아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에 안주하고 그냥 쉬운 문들을 여는 삶을 살까? 아니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게 맞을까? 그 갈림길에서 나는 우두커니 서서 내 머릿속의 계산기를 돌렸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 내 졸업장에는 디자인에 대한 어떤 증명서로 남고 끝날 것 같았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간다면... 미로 밖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시도가 될 것 같았다. 그 쯤 생각해보자 이미 쓴 시간들이 아까웠고, 앞으로 쓸 시간들이 두려웠으며, 이게 어떤 가치가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을 좀 보냈다. 그리고 사방 팔방 돌아다니며 답을 찾았다. 결국 나는 과감히 지금껏 배운 것들에 대한 증명서를 받고 편한 길을 걷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대신 마지막으로 벽을 문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졸업 직전 나는 부전공을 또 바꿨고, 몇 개의 통계 관련 수업을 더 듣고 이제 졸업을 앞뒀다. 



대학교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말하건데, 그냥 수 천만원의 돈을 내고 세상에 대한 겁을 없애는 공간인 것 같다. 물론 어느 곳이서든 다른 분야에 대한 겁을 없애는 작업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은 이런 작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아하!'하는 순간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몇 년에 걸쳐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아하! 하는 한 순간의 쾌락은 한계효용의 법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고 말했던 박웅현 CDO의 말씀을 인용해본다. 한계효용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쾌락이 1 증가할 때마다, 거기서부터 느끼는 즐거움이 점점 감소해, 어느 순간에는 무뎌진다는 의미이다. 제아무리 맛있는 짜장면도 그 자리에 앉아서 두 그릇을 끝까지 다 먹으라고 하면, 첫 입에 느꼈던 쾌락을 못 이긴다. 한 그릇만 다 먹어도 배불러 죽겠는데 두 번째 그릇까지 떠 먹으면 그 맛있던 짜장면도 이젠 음식물 쓰레기처럼 느껴진다. 박웅현 CDO는 이런 면에서, '아하'하는 쾌락은 이러한 한계효용의 법칙에 적용받지 않고 무한히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종합해본다. 공부는 '아하!'하는 순간의 쾌락을 좇는 과정이지, 높은 성적을 좇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험지에 본인 머릿속에 있는 걸 잔뜩 쏟아내고 나면 정량적인 평가 결과가 출력된다. 그 숫자는 내 머릿속에서 쏟아낸 정보량을 수치화한 것이지, 내 머릿속에서 외친 '아하'와는 거리가 멀다. 누군가는 그 숫자가 마음에 들어 꾸준히 공부를 한다고 했다. 누구는 그 숫자가 겁에 질려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보자. 좋은 성적을 받으면 세상에 대한 겁이 없어질까? 좋은 성적을 받으면 머릿속에 정말 지식이 잔뜩 쌓일까? 아니라고 본다. '아하!'하는 순간이 많을 수록 무서웠던 분야가 재미있는 분야로 변하고, 더 이상 겁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그 분야로 저벅저벅 들어가게 해주는 좋은 힘이 된다.

     이쯤 되자, 박웅현 CDO의 문장을 다시 살펴본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과정은 무한한 쾌락을 준다는 당신의 말을 '나를 위해 공부해라' 라고 의역하고 싶다. 나를 중심으로 공부한다면 그 영원한 쾌락 혹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세상에 대한 겁을 없애준다.


그렇게 공부가 재밌었으면 대학원을 가지.

    교수님들과의 면담을 나눴던 내용이기도 하고, 스스로 고민하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유연하고, 순수하게 수업을 들으며 '아하'를 외치기에는 학부 수업이 적격이었다. 사실 졸업하고 대학원에 바로 갔다면 나는 아마 취업에서부터 도망치듯 가는 모양새였을 것 같은데, 그것은 내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벽을 문으로 바꾸는 더 뼈아픈 과정을 겪고 나가고 싶었다. 

    대학원이 아니라면  취직을 한 다음에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아하'하는 깨달음을 찾는 것도 방법이었다. 그러나 대학생의 신분은 살면서 단 한번만 주어지고,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 학부에서 배우고 나갈껄 하는 후회는 절대 복구할 수 없다. 지금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싶었다. 

    내가 두드리기로 결정한 새로운 벽은 통계기 때문에 학교를 더 다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도, 책에서도, 온라인 강의에서도 배울 수 있었지만, 내 마음속 두려움을 풀기 위해선 학부에서 배워야만 했다. 언젠가 통계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온라인 강의로 매주 수업들을 꾸준히 듣고 과제를 풀며 수강을 끝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개인적인 어떤 불안이 있었다. '나는 이걸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데', 라는 어떤 문장이 내 스스로 능력에 대한 불신을 만들어냈다. 그 불안은 몇 년간 내 마음 속에 있었고, 그 불안은 커리어를 정할 때부터 어떤 역량을 펼칠때도 내 발목을 잡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학부에서 그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1년을 더 써서 기초적인 수학 수업부터 고급 분석 기법 수업까지 들었다. 나는 이제 통계라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크게 주눅들거나 '나는 모르는 내용이야'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세히 이해하려고 귀를 쫑긋 세운다. 많은 것을 이루려면 이룰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고, 돈을 벌려면 돈을 벌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학부를 1년 더 다녔고 이제 통계가 무섭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쏟아부은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배운 시간은 절대 매몰비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개념들을 미리 설명하고 간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할 때, 기회비용을 지불한다. 기회비용이란 무언갈 선택함으로서 포기하게 되는 옵션이다. 예를 들어 짜장면, 짬뽕 중에 뭘 먹을지 한참 고민하다가 '오늘은 매운게 땡기니 짬뽕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짬뽕을 시켰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매운 짬뽕을 먹기 위해 우리는 짜장면을 포기했다. 달리 얘기하면 우린 짜장면이라는 기회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그리고 매몰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불해서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매운 짬뽕을 먹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자리에 앉아 두 입 정도 먹었더니, 너무 맵고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짬뽕에 이미 입을 댔기 때문에 환불을 받을 순 없다. 그러나 짬뽕 한 그릇 값으로 쓴 돈이 아까워서 눈물을 흘리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매운 짬뽕을 끝까지 먹었다고 쳐보자. 맛있게 먹은게 맞는가? 거의 고문을 받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게 바로 매몰비용의 오류이다.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지만 이미 나간 돈이 아까워서 그걸 계속 회수하려고 힘쓰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말한다. 그리고 매몰비용은 절대 의사결정할 때 고려하면 안 되는 비용이다. 매몰비용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하면, 쓰린 속을 안고 변기에 앉아 '어제 그 짬뽕을 굳이 다 먹지 않았어야 했는데' 라는 순간이 오고 만다.

    졸업을 앞두고 통계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전에 배웠던 분야 하나에 대한 부전공을 포기해야했다. 원래 내 부전공은 공업디자인이었다. 수업들을 꽤 많이 들었었고, 수업 1개 정도만 들으면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통계 관련 부전공으로 졸업하려면, 공업디자인 부전공을 포기해야 했다. 이 쯤에서 졸업증명서라는 맥락에서 떨어져서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느꼈던 '아하'하는 순간을, '나'를 중심으로 한 공부를 생각해봤다. 그 증명서는 크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그 UI 혹은 제품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더 이상 겁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큼 통계 분야로 부전공을 바꾸고 이전에 배웠던 부전공 증명서를 포기했다. 

    여기서 매몰비용의 오류를 저질렀다면 이렇게 선택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배운게 아까운데 그냥 졸업하고 통계는 나중에 배우지 뭐' 하고 그 해에 조용히 졸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바로 매몰비용의 오류이다. 지금까지 수업을 듣고 쌓아온 학점들이 아까워서 배우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건 큰 오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큼 통계를 선택했다.


배우는 데 쓴 시간은 매몰비용이 될 수 없다.

아까 설명한 정의에 따르면 매몰비용은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다. 공업디자인학과 수업들은 정말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 맞는가? '아하'하는 순간의 학습들이 내 몸에 남아있는데, 그 졸업증명서에 한 줄을 포기한다고 내가 경험했던, 배웠던 것들이 날아가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내가 쌓은 '아하'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배운 데 쓴 시간은 절대 매몰비용이 될 수 없다. 배운 지식들은 언제든 직무로, 취미로, 재미로, 관심사로 회수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다른 지식들과 뒤섞이는 좋은 자양분이다. 

    지금까지 쓴 시간이나 돈이 아까워 본인의 분야, 커리어를 함부로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한다. 배우는 데 쓰는 시간들은 절대 매몰비용이 되지 않는다. 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과감히 도전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