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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an 12. 2020

당신이 가진 특권에 대해 생각 해 본 적 있나요?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책을 이렇게 집중해서 완독한 건 오랜만이었다. 어서 다음 페이지가 읽고 싶어 집에서, 카페에서, 회사에서 틈틈이 펼쳤다. 그동안 궁금하고 혼란스러웠지만 명확하게 보이지 않던 생각들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에 내가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관점에는 분명 변화가 생겼다. 나는 올해 이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할 것이다.

김지혜 작가의 힘이기도 했다. 분명 반발심이 들 수도 있는 이야기와 주제에 대해 본인의 생각부터 솔직하게 풀어냄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능력. 이론과 이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첨예한 갈등과 이견들을 담아내는 능력. 그동안 몰랐던 점을 이제부터 성찰하고 노력해 나가자 감싸주는 능력. 예리하면서도 따뜻했다.

11p
우리는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책의 제목에 담긴 의미가 체감되는 순간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누군가를 차별할 의도가 없었던 ‘선량한 차별주의자’.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라고 말하는 일들이 얼마나 흔히 일어나는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을 반대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일어나 자각하지 못했던 차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후 저자는 각자가 가진 특권을 상기시킨다.
‘특권? 내가 뭐 얼마나 특권을 가졌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저자는 특권을 ‘가진 자의 여유’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 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라고 정의했다(28p). 일상의 예로, 보통 시외버스를 특권이라고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누군가 나타나면 이것이 특권이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지점, 당황과 초조함 같은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 알아차리기 힘든 그 지점이 각자가 갖고 있는 특권이었다. 따라서 인종도, 성별도 특권이 될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밤길 걷는 것을 무서워하고, 운전을 부주의하게 했을 때 ‘김여사’라 조롱 받으며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고, 승진에 누락 됐을 때 여자라서 소외받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들. 바꾸어 말하면 남자라는 성별에서는 굳이 생각 해 보지 않을 상황들이 성별이 갖는 특권이었다.


남자로 사는 것도 힘들다고, 요즘 세상엔 역차별을 받는다고 항변하는 갈등이 예상되는 순간이다. 한국 사회에서 점점 첨예해지는 성별 갈등에 답답함을 느꼈던 나로서도 이 부분에 대해 저자가 어떻게 이야기 할 지 가장 궁금했다.

32p
특권을 알아차리는 확실한 계기는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때이다.’
-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주류로 생활하다가 외국에서 이방인으로서 불안하고 두렵고 화나는 경험을  적이 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의 감정은 그동안 존재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특권을 일깨우는 신호로   있다.’

지금의 성별 갈등은 그동안 너무 당연했던 관습이 흔들리면서 터져 나오는 불편한 감정이 뒤섞인 것 아닐까. 그러면서 저자는 누구의 삶이 더 힘들다는 논쟁이 아니라, 성별에 따라 기회와 권리가 분명히 다르게 주어지는(ex.임금격차) ‘구조적 불평’에 대한 공통의 주제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후의 사례들도 어쩌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관점에 서게 해 주었다. 2018년 제주도 예맨 난민 수용 문제에 반대가 극심했던 사례에서는, 주류집단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우리가 국민으로서 누리는 특권과 배제를 이야기 했다. 한국 사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학벌에 관한 특권에서는 명문대 학생들이 자기의심과 불안이 제거되는 유리한 편견 속에서 다양한 기회를 받아 성장하고 그 현실이 다시 고정관념을 만든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었다.

내가 가진 특권을 이제 나열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출신 대학 때문에, 성별 때문에, 건강한 신체 때문에, 직업 때문에 제약 받거나 이익을 보았던 여러 특권들을. 나는 단지 내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아갈 뿐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을 수 있겠다는 약간의 충격 마저 느꼈다.

60p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

자신이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는 것, 따라서 웃으며 넘기는 같은 장면이 누군가는 슬프기도 서글퍼지기도 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차별을 담고 있는 유머 표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88p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규범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차별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
유머가 금기된 영역의 빗장을 순간적으로 풀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김치녀, 맘충, 뜰딱충처럼 언뜻 언어유희로 보이는 혐오표현, 흑인 분장과 바보 캐릭터를 단순한 웃음의 소재로 넘기지 않고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지적해야 할 이유이다.

그리고 나는 이 부분에서 격하게 동의했다.

98p
문제제기를  만큼 순발력이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 웃지 않는 것이 내가   있는 최소한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유머의 중요한 속성  하나는 청중의 반응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누가 웃는가?” 라는 질문만큼 “누가 웃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중요하다.’

다시 한번 리플레이.
‘누가 웃지 않는가?’
나는 다짐했다. 지금부터 웃기지 않을 때는 절대 웃지 않겠다고. 분위기 때문에 애매하게 웃어 넘기던 것들과는 완전히 작별하겠다고.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났다. 나이가 꽤 차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몇몇 선배들에게 종종 나이 때문에 놀림을 받았었다. ‘상큼함이 떨어진다’의 외모 지적부터 ‘억울하면 빨리 입사하지 그랬니’ 와 같은 나이 지적을 듣던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씁쓸하게 웃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정색했다면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유연하지 못하다고 지적받을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개정색했을 텐데.’ 또 ‘지금은 그런 유머 아닌 유머를 주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긴 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때가 조심해야 할 때다. “나 때 보다는 나아졌잖아” 라고 말하는 순간이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하고 살펴야 할 자세는 이런 것 아닐까.
먼저 나의 행동과 말이 편안해지는 순간을 조심하자. 학창 시절에, 취업 면접에서, 신입사원 시절에, 말 한마디를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171p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지적하듯, 다수자는 소수자의 의견을 거침없이 공격할  있다. 반면 소수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표현을 순화하고,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극도로 세심한 주의 기울이도록 요구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차별을 한 순간에는 이렇게 인정하자.

189p
그러니 내가 모르고  차별에 대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랐다” “네가 예민하다 방어보다는,   알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여야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성찰의 계기로 삼자고 제안한다.’
-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차별에 대해 우리는 더 예민해져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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