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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양 Jan 11. 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국해야 했기에 (11)

잊지 못할 그날의 피라미드

카이로에 도착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던 이집트 여행의 종착지이다. 피라미드가 저 멀리 보이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루프탑으로 올라가 봤다.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삼각형의 돌무더기가 보인다. 현실감 없었던 나의 피라미드.

귀국을 앞두고 몇 가지 잡생각들이 피어올랐다. 결국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왔다는 것. 맞아, 여행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게 아니었지. 여행은 일상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기능을 하지만, 나는 결국 귀국을 한 뒤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어찌 보면 20대의 청춘이라는 것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입시, 학점관리, 취준생에서 취업까지. 눈코 뜰 사이 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 그 트렌드에 맞춰 움직여야만 하는 우리들. 청춘을 즐길 시간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떠나왔다. 잠시나마 내 안을 꽉 채우고 있는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즐거웠다. 찬란하게 빛나는 현재를 피부로 느꼈고,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따위는 잊고 지낸 날들이었다.


나에게 가장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걱정들이 발끝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곧 나를 휘감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나의 나라가 문득 무서워졌다. 내가 낙타를 타는 동안 동기들은 토익점수를 보충했고, 고요한 바닷속을 즐길 때, 친구 놈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돌아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한껏 낭만적으로 귀국 항공편을 찢을까 결심하다가도 결국엔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돌아가야만 했다.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을 떠나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여행은 나를 분명 단단하게 만들어주긴 했다. 하지만 여행은 그저 진통제일 뿐인 걸까. 나는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한 뒤, 취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삶을 살아 내야 했다.


그렇게 귀국 후, 자유롭게 홍해를 가르던 청년은, 학교에 복학한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헛헛한 일상 속에서 여행을 항상 품고 산다는 것.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꿈꾸는 것. 언제든 일상의 통증이 느껴질 때 먹을 진통제를 지니는 것.


단순히 시간의 압력에 의해 살아지고 싶지 않다. 파도가 밀려와 부스러져 포말이 되듯, 자연스럽게 살아지고 싶지 않다. 햇빛이 맑은 날이면, 윤슬이 빛나는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를 잡아타는 서퍼처럼, 살아가고 싶다.


카이로를 떠나며 생각했다. 나는 떠나고, 피라미드는 그 자리 그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의 삶은 흘러간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솟아있길.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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