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누구도 아닌 한 발짝 뒤 우리들의 이야기
지난 밤중 청년 고독사를 다룬 마음 저린 영상을 보고는 밤잠을 편히 이루지 못했다. 30분이 넘는 영상이었지만 한번 재생을 시작한 이상 멈추기가 힘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점점 증가해 가는 2030 젊은 세대의 자살, 고독사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 어쩌다 꽃 피워보지 못한 젊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러나 그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인 가구, 취업을 향한 발버둥, 사회적 고립과 단절. 나의 상황에서 조금만 더 나빠지면 그들까지 가는 데는 몇 발자국 남아있지 않았다.
점점 차오르는 나이, 그리고 줄어드는 기회. 단지 숨만 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존 비용'도 있다. 새로운 기회와 도약을 위해서는 투자도 필요하다. 그로 인해 잔고도 더욱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에게는 부모님이라는 마지막 안전망이 있었다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겐 세상이 그저 살아남아야 할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즉석밥에 라면스프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삶이 그들에게 얼마나 생존해야 할 만한 삶이었을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위안을 삼기엔 우리는 절벽 바로 앞 단계에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불행은 이후에 나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불행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망하고 바닥까지 치달을 수 있고, 그것은 곧 내가 될 수도 내 주변의 또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를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필요해지는 법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마음가짐이 더욱 요구된다.
단지 마음이 아파서라기보단 나에게도 해당되는 모습이 보여 더욱 삶의 위기의식이 강해졌다. 고작 끼니를 제대로 챙기는 것이 부담이 되고 사치가 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점심시간, 두유와 에너지바로 점심을 해결하며 꿈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는 나의 현실 모습도 그 사이의 교집합에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불편해지니 점점 기피하게 되는 친구들과의 약속. 그러면서 사회적 고립을 자연스럽게 강요받게 된다. 나는 그나마 복 받은 사람이라 내 주변을 지켜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 삶일까. 사라져 간 그들의 쓸쓸한 뒷모습에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