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글방(2023.3.27. 월 색깔)
한 때는 꿈을 컬러로 꾸는지 흑백으로 꾸는지가 궁금했다. 꿈을 꿀 때는 분명 선명했는데 막상 깨고 나니 색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실치 않았다.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상상할 때 색도 상상할 수 있느냐가 한 때 인터넷의 화두인 적이 있었다. 새빨간 사과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름 충격적이었다. 훈련에 따라 가능해진다는 말이 있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댓글을 흥미롭게 여겼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는 어휘력을 늘려 보겠다고 하나의 색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를 쭉 늘려 써보기도 했다. 노랑,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샛노랗다, 누렇다, 노리끼리하다, 개나리의 노랑, 수선화의 노랑 같은 단어들.
이렇게 여러 노랑과 파랑, 빨강 같은 색들을 나열하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꽃이나 물체, 풍경을 연관 지어 떠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노랑, 봄이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폭죽처럼 쏟아져내리는 개나리. 연두, 개나리가 지고 나면 뾰족뾰족 솓아오르는 잎새. 초록, 벚꽃이 지고 잎이 나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울창해진 새파란 이파리. 주황, 축복처럼 쏟아지는 가을의 단풍. 파랑, 겨울날 코 끝 시리게 추운 바람에 저 멀리서부터 선연한 바다. 하양, 그 선연한 바다를 타고 내 앞까지 달려와 부서지는 파도. 빨강, 다시 봄이 올 때면 할머니댁 마당 가득 탐스럽게 열리는 동백꽃.
아, 색을 이토록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