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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실 출입 금지령

보건 선생님이 젊고 이쁘시니?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서 보니 애들 학교 전화번호가 뜬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를 보내고 학부모가 되면서부터 기관에서 전화가 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사교육 하는 과외나 학원도 아니고 공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내 아이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전화는 거의 전무하다. 나 역시도 학교에서 근무할 때 소위 말하는 문제 학생들의 부모님께만 전화드렸었다. 수업을 잘 듣는 것, 교우 관계가 좋은 것, 성적이 우수한 것 모두 학생으로서 본분일 뿐 학부모님께 전화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학생이 잘하면 잘하는 내용을 학생생활기록부에 잘 기록해주면 된다.      


그런데 울 집 두 아드님은 학교에서, 정확하게 말하면 보건실에서 전화가 자주 온다. 엄마가 근무 중일 때는 통화가 어렵고 집에 가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정말 크게 다치거나 아파서 병원 갈 일 아니면 연락이 없었다.      

한 번은 첫째가 단원평가를 보는 날 앞 친구가 시험지를 넘기다가 시험지 모서리가 눈동자에 스쳐서 위험했던 적이 있었다. 출혈이나 다른 증상은 없지만 안과를 데리고 가보라는 보건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의 전화에도 바로 갈 수도 없었고, 아이도 참을만하다고 괜찮다고 했다.

      

퇴근 후 병원을 데려가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눈 많이 아프면 조퇴하라고 하셨다며? 집에 가서 눈 감고 좀 쉬지 그랬어?

“엄마가 조퇴하지 말라며? 나는 조퇴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나서 안 했어. 참을만했고.”

“참을만했으면 잘했어. 집에 가도 너 혼자였고 대안은 없었어.”     



그랬던 아들 두 놈이 올해는 엄마가 쉬고 있는 걸 알고 그러는지 보건실 출입이 너무 잦다. 보건 선생님은 꼭 보호자 확인 후 조치를 취하기에 연락을 주신다.      


“OO초 보건실입니다. 춘기(큰아들은 사춘기가 와서 요즘 ‘춘기’라는 닉네임으로 부른다)가 배가 많이 아프다고 보건실에 왔어요. 미열은 조금 있고, 맥박이 빠른데요. 급식도 못 먹겠다고 하고 많이 힘들어하네요.”

“아침에 속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네. 요즘 장염 바이러스가 돌고 있어요. 배 아프다고 보건실 오는 친구들이 많네요.”

“네. 알겠습니다. 하교시켜주시면 병원 데려 갈게요.”     


춘기는 유행하는 장염 바이러스에 걸려든 것이었고 전날 같은 음식을 먹은 남은 식구들은 멀쩡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아이인데 코로나도 장염도 우리 식구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받아들인다.  

    

이틀 뒤 보건실에서 또 전화가 왔다. 춘기 장염이 아직 낫지 않았는데 또 배가 아픈 걸까 라는 걱정에 전화를 받았다.     


“OO초 보건실입니다.”

“네. 춘기가 배가 많이 아픈가요? 아직 다 안 나아서요.”

“아뇨. 지금 통이(꼴통과 통통이에서 따온 통이는 둘째를 지칭한다)가 옆구리가 아프다고 왔어요.”

“아, 지난 주말에 놀다가 의자 모서리에 긁혀서 제가 약을 발라주고 밴드 붙여줬어요.”

“네. 지금 다시 소독하고 약 발라줬는데요. 움직이기 힘들다고 하네요.”

“네? 다친 주말에 농구 수업도 하고 어제는 배드민턴도 쳤는데요? 통이 좀 바꿔주시겠어요?”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통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건네받는다.


“통이야 많이 아파? 어떻게 아픈데?”

“다친 부위가 아프고 못 움직이겠어요.”

“다친 부위는 나을 때까지는 아플 거야. 약 바르고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교실로 가서 수업 잘 듣고 이따 보자. 보건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교실로 가.”   

"네에......"


  

이런 전화가 비일비재하다. 호락호락한 엄마가 아닌 걸 알아서인지 보건실 다녀왔다는 말을 안 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밴드를 붙이고 오는데 그건 애교다. 발목에 붕대를 감고 오는 날도 있는데 학교에서는 아프던 발목이 귀가만 하면 붕대를 풀어버릴 정도로 멀쩡 해지는 마법도 시전 한다. 보건 선생님이 최고의 명의임이 분명하다.           





등교하는 두 아들을 배웅하며 당부를 전한다.

“오늘은 보건실 가지 마. 구급차 부르거나 다급하게 병원 갈 일 아니면 엄마 전화 안 받게 해 주고. 학교 잘 다녀와.”     


그동안 보건실 출입 문제로 남편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던지라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보건 선생님 젊고 이쁘시니?”     


두 아들이 동시에 어이없어하며 답한다.

“50대 후반에 아들이 대학교 졸업했어.”

“하하하하하하, 그래? 너희가 하도 보건실을 자주 가는 것 같아서 아빠는 보건 선생님이 아주 젊고 이쁘신 분인가 했지? 근데 왜 자꾸 보건실 가는 거야?”

“아프니까 가지.”     


대체 보건실을 얼마나 자주 가고, 얼마나 선생님과 친하면 선생님 가정사까지 다 알고 있단 말인가?

라떼는 그 정도로는 보건실은커녕 6년, 3년 개근상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아파 죽어도 학교에 있으라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자랐는데 요즘 아이들은 다르긴 하다.     


나는 아이들이 보건실 가는 여러 이유를 '정말 아프거나, 용건이 있거나, 지루한 수업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정도로 생각했는데 ‘젊고 이쁜 선생님’은 나의 예측을 빗나가는 이유였다. 내가 함께 근무한 보건 선생님들은 모두 연세가 있으신 여자 선생님들이어서 선입견이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하다.          


 

연년생 초등학생 아들 둘은 보건실 자제령과 출입 금지령을 기억하는지 학교 보건실에서 전화 오는 횟수가 줄었다. 지난주에는 통이가 2주 만에 보건실 다녀왔다며 본인의 노력을 어필한다. 난 중고등학생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초등 아이들이 시시콜콜한 문제로 선생님 찾는 게 옆에서 보기만 해도 힘들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애들한테 보건실 이용은 꼭 필요한 경우만 하라고 당부한다. 애들 학교 보건 선생님은 정말 친절한 분이시다. 여전히 애들 학교 보건실 문은 늘 열려있다고 한다. 


아이코.

이 글을 발행하기 직전인 지금도 춘기가 손가락을 커터 칼에 비었다며 보건실에 밴드 붙이러 다녀왔다는 말을 하고 사라진다. 하하하하하 네버엔딩 보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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