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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의 초등학교 졸업식

밖에서는 잘하고 있었구나

어린이집 2년 수료식.

유치원 3년 졸업식.

초등학교 6년 졸업식.

그리고 남은 중고등학교 각 3년.

공교육 12년 중 가장 긴 6년을 잘 버텨내고 졸업하는 첫째 아들.


강당이 아닌 각 학급 교실에서 진행된다는 졸업식.

끝물인 코로나와 이태원 참사 여파인지

학부모님 중 한 분만 참석이 가능하다는 초대장을 받아 들고 처음으로 6학년 아들의 교실을 찾아갔다.


졸업식은 교실에서 영상으로 진행되고 식순에 맞춰 졸업장과 특기상이 수여됐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3학년부터 교내상이 없어지고 학년말에 전교생이 1인 1 특기상을 받는다.

예절상, 우정상, 봉사상, 예술상, 운동상 등 학업 결과와는 상관없이 1년 동안 지켜본 결과 학생별 특기를 인정해 주는 상이다.


첫째가 받은 특기상은 작년에 이어 예술상이다.

1학년, 2학년 때 교내상으로 받은 미술 분야 은상, 동상 그리고 외부 대회에 참여해서 받은 특선.

진로적성검사에서도 예술형이 주된 적성으로 나오고, 반에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로 인정받았다며 신이 나서 말하던 기억이 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소질이나 재능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했고, 요즘에는 예체능도 결국 성적으로 대학 간다는 말로 주요 과목부터 챙기라는 현실적인 엄마였다.

그러면서도 문구점을 가면 스케치 노트를 사서 책상에 놓아주고 같이 가 볼만한 전시회를 찾아보곤 했다.


공식적인 졸업식은 간소하게 끝났고

6학년 11반 우리 반만의 졸업식을 시작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며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여자 아이들 순서가 끝나고 남자 1번, 그리고 남자 2번인 우리 첫째의 이름이 호명되더니 준서는 가장 나중에 이야기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지켜보던 나까지 긴장이 됐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일부러 순서를 바꾸시지?'

그때부터 다른 아이들의 격려 메시지는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마지막 한 명 남은 학생이 있죠?"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녹음을 했다.

나중에라도 준서가 선생님의 메시지를 온전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준서는 여름방학 이후 2학기가 시작되고 만났을 때 1학기보다 많이 성숙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여름방학 동안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깊이 해서인지 준서의 성숙하고 의젓한 행동이 기억에 남아요. 평소에도 독서를 좋아하는 준서가 졸업 이후 2주 동안,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책을 가까이하고 더욱 멋지게 성장하길 바라요. 준서야, 중학생이 돼서도 책 많이 읽고 잘 성장할 수 있지?"

준서는 부끄러운지 선생님의 응원이 마음을 움직였는지 씩씩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준서를 향한 메시지를 마지막에 하셨을까에 대해생각해 봤다.

'책을 가까이하고 멋지게 성장하라는 메시지를 준서에게 말하듯 반 아이들 전체에게도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준서에게 물어보니 "내가 좀 멋지고 특별해서 그런 거야."라는 시답잖은 대답을 한다.


선생님의 말씀 중 '여름방학 이후, 성숙, 독서, 생각, 의젓함...'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들을 가지고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냈는지 첫째와 떠올려봤다.

성숙할 만한 행동과 시간들이 있었는지.

결정적인 사건이 떠올랐고 사단은 바로 준서의 핸드폰과 사춘기가 한 풀 꺾이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때는 몹시 괴로웠던 시간이었는데 의도치 않았던 결과와 효과 덕분에 지나간 추억처럼 웃으며 이야기했다.


여름방학한 지 3일째 되던 날.

이틀 동안의 경고가 무색하게 여전히 소파나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핸드폰만 하고 있는 꼴이 보기 싫어 극약을 처방했다. 핸드폰 압수!

폰과 강제 이별한 첫날은 눈물과 반항, 둘째 날 반항의 극치, 셋째 날부터는 애원과 체념을 거쳐 다섯째 날이 되어서야 포기를 했다.

아들의 감정 기승전결을 다 지켜본 후 K-엄마의 레퍼토리를 시전 했다.

"엄마는 한 번 아니면 아니라고 했지? 기회를 줄 때 적당히 하고 멈췄어야지, 꼭 이런 상황까지 와야겠니? 30일 동안 압수할 거야. 아빠처럼 마음 약해져서 3일 만에 돌려주는 그런 일은 절대 없으니 기대는 하지 말고."


그날 이후 아들은 핸드폰이 없으니 학원 가기 전까지 책을 보고, 잠을 자고, 수학 문제집을 미친 듯이 풀었다.

"핸드폰을 안 하니까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잠도 잘 자고, 엄마도 도서관에서 책 빌려다 주는 즐거움도 있고 너무 좋다. 수학 공부하느라 힘들지만 나중에는 이 시간이 거름이 되고 꽃을 피우는데 도움이 되었구나 싶을 거야."

아들은 개학 후 한 달을 채우고서야 휴대폰을 돌려받았고, 2학기에는 사춘기가 잠잠해지더니 내 아들로 돌아왔다.

 



졸업 후 아이방 책장을 정리하면서 초등 6년 동안의학교 생활 통지표를 찬찬히 살펴봤다.

성적표는 '잘함 / 보통 / 노력요함' 3단계 평가로 대부분이 잘함이지만 보통이 있으면 왜 보통을 받았냐며 다그쳤던 기억이 났다. 다 잘할 수는 없는데, 나 역시도 매번 올 수만 받았던 것도 아닌데 완벽을 요구했던 나를 반성한다. 이제 성적은 부족한 과목이 무엇인지 정도로 확인한다.

(아니다, 중학교 가서는 올 A를 받아오라고 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나 보다.)


사실 나는 성적보다는 선생님의 종합의견이 더 궁금하다. 대부분 좋은 말로 써주시니 본연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객관적인 선생님은 한 줄 냉정한 평가를 적어주시기도 한다.


첫째에 대한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의견을 정리해 보았다.

-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이 말은 아주 못하는 학생 아니고는 두루 쓰는 말)

-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소질이 있고...(평소에 그림 좀 그린다는 소리를 들을 때)

- 책 읽기를 좋아하며 도서실 이용을 즐겨하고...(신체 놀이보다는 책을 더 좋아하는 성향)

- 학급 친구들에게 다정하며...(친구들과 두루 잘 지낸다는 말)


첫째는 까칠하고 예민한 성향이라 학교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학부모 상담 주간에 선생님들의 말씀에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의외인 부분도 있었다. 걱정보다 교우관계가 좋으며 예민하지 않다는 말에 안도했고,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아이라는 말에 밖에서는 이렇게 지내나 싶었다.




졸업식날 친구들을 안아주며 작별을 아쉬워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마음이 따뜻한 아이라는 걸 다시 떠올렸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잘 자라고 있는 아들인데 첫째여서인지 자꾸만 더 잘했으면 하는 기대와 욕심이 생긴다. 여전히 힘든 시간들이 찾아오겠지만 한 여름 소나기처럼 한바탕 시원하게 맞고 지나가길 바라고, 엄마로서 내가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더욱더 내려놓고 노력해야겠다. 아들의 멋진 성장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도 초등 엄마를 졸업하고 더 성숙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아들아, 우리 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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