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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닮는다?

엄마 카드와 아빠의 비빔면

남편과 외출 후 저녁까지 먹고 귀가하니 7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다.

8시에 중요한 스케줄이 있던 나는 두 아들의 저녁을 빨리 해결해줘야 했고, 미리 생각해 둔 메뉴를 준비할 요령이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생우동면이 먹고 싶다며 허락을 구한다. 나도 급한 상황이었고 아들의 바람도 들어줄 겸 수락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주며 조심히 다녀오라고 했다. 단지 내 편의점은 바로 집 앞에 있고 고르고 골라도 5분 후면 카드 사용 문자가 와야 하는데 조용하다. 둘째는 아직 핸드폰이 없어 연락이 안 되니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심부름 가다 카드를 잃어버렸나? 편의점 말고 길 건너 마트를 갔나? 아직도 고르고 있나?' 여러 생각을 하다가 시간을 보니 아이가 나간 지 15분이 지나고 있었다. 첫째 아들을 재촉해서 동생 찾아보라며 내보낸다. 잠시 후 두 아들이 무사 귀가를 했고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엄마, 카드를 이걸 주면 어떡해?"

"왜? 낮에도 사용한 신용카드인데 뭐가 문제야?"

둘째가 카드를 내밀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어이없어한다.

카드를 건네받은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내가 아들에게 줬다고 생각한 카드가 검은색의 S사 카드인데 아들에게 들려 보낸 카드는 아웃렛에서 발급받은 검은색의 VIP PASSPORT 카드였다. 이럴 수가! 신용카드라고 굳게 믿고 줬던 카드가 멤버십 카드였다니! 나 조차도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집 앞 편의점에 생우동을 안 팔아서 더 큰 편의점까지 갔는데......"


"미안해. 엄마가 정신이 없다. 신용카드 줬다고 생각하고 너 안 와서 걱정하고 있었어. 카드 다시 줄게 얼른 가서 사와. 형이랑 같이 다녀와."



어지간히 우동이 먹고 싶었던지 군말 없이 두 형제는 다시 심부름을 하러 나갔고 나는 내 스케줄을 하러 방으로 들어가며 남편에게 아이들 저녁을 부탁했다.



두 아들은 각자 원한 저녁거리를 사 왔고 남편이 물을 끓여서 컵라면을 조리해 준 모양이다. 잠시 후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 첫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엄마, 비빔면이 뜨거워?"

"무슨 말이야? 비빔면은 찬물에 헹궈서 물기 빼고 수프 넣고 비비기만 하면 되는데."

"아빠가 비빔면을 뜨거운 물 붓고 양념을 넣어서 맛이 이상한데 그냥 먹으래"

"엥? 하하하하하하하하"

"다시 끓여줘. 이게 무슨 비빔면이야?"



입가에 빨간 양념을 묻힌 채 반은 울면서 말하는 첫째를 보니 웃기기도 하고 안됐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비빔면 먹고 싶다 하여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벼먹는 라면을 사다 놨다. 그런데 오늘은 엄마가 바쁘니 요알못인 아빠가 할 수 있는 비빔면 컵라면으로 사 온 것이다. 아들도 나름대로 한 발 양보한 것인데 아빠의 개성 있는 조리법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은 볶음면처럼 조리하면 되는 줄 알고 조리법도 안 보고 확신에 찬 행동으로 과감하게 뜨거운 국물이 자박한 비빔면을 대령한 것이다. 내일 간식으로 제대로 끓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결국 아들은 자박한 비빔 온면을 다 먹었다고 한다.


엄마의 카드로 둘째 아들 황당해하고, 아빠표 비빔면으로 첫째 아들이 억울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부가 세트로 뭘 잘못 먹었나? 한 날 연달아서 이러기도 힘들 텐데 이런 것도 닮았나 보다. 재미있는 해프닝이지만 두 아들은 얼마나 짜증이 났을지 진심으로 미안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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