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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나의 결혼식

결혼식 두 번은 못하겠어요.

'나의 결혼식' 에피소드는 브런치 작가 준비 중에 써놨던 글인데요.

라디오 사연 감이라며 적극 권했던 남편 덕분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2009년 5월 30일(토) 오후 2시 30분 00 웨딩홀.

저의 결혼식이 있는 날입니다.  

지방에 있는 친정엄마와 친인척분들이 서울까지 와야 했기에 오후 시간대로 예식을 잡았습니다.

     

시댁 근처가 신혼집이었고 전 결혼 2주 전부터 신혼집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결혼식 당일.

예식이 오후인데 아무것도  먹으면 신부 쓰러진다고 시어머님께서 아침 먹으라며 시댁으로 부르셨습니다. 시댁 친인척분들도 잔칫날이라고 시댁에 모이기로 하여 음식을 많이 준비하셨더라고요.      

아침부터 진수성찬으로 배부르게 먹었고 결혼식은 기대되고 설렜습니다.          


남편은 1 3  셋째로 위로 누나 , 아래로 여동생이 있습니다. 아직 미혼인 첫째 시누는 둘째 시누 조카의 머리를 묶어주고 꽃단장해주면서 저에게 메이크업 예쁘게  받고 이따 식장에서 보자며 결혼 앞둔 신부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말했습니다.       

   

드디어 메이크업이 끝나고 드레스를 입고 식장 신부대기실로 들어섭니다. 시부모님은 로비에서 하객들을 맞이하기 바쁘셨고 저는 친정아버지가 결혼 2 전에 돌아가셔서 친정 오빠와 작은아버님이 하객 맞이에 분주했습니다.   


            

두둥~     

# 식 시작 30분 전.

이때부터 저의 잊을 수 없는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번째. 예식장 피로연장에서 여자분이 쓰러졌답니다.     


사진작가님이 행복한 예비부부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신랑을 찾습니다.  신부대기실에서 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다 친구에게 신랑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다급하게 뛰어온 신랑.

작가님이 서로 마주 보며 자연스럽게 잘살자는 덕담  마디씩 건네라고 하십니다. 이미 리허설 촬영을 해봤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마주 보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신랑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뗍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지금 큰누나가 쓰러졌어. 119를 불렀는데 출동이 지연되고 있나 봐”     

입을 조금 벌린  복화술로 아주 조그맣게 속삭이던 신랑을 보는데  표정이 관리가  되더라고요. 이게 덕담입니까?^^;;


신랑도 이미 대기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정신이 없더라고요. 놀란 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믿기지도 않았습니다. 아침에 멀쩡하던 첫째 시누였는데 대체  쓰러진 건지 걱정과 궁금증을 안고 입술에 경련을 일으키며 행복한 신부의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행복해 보일지, 놀라 자빠질지 모를 사진을 찍었고 신랑은 시부모님께서 쓰러진 첫째 시누 응급처치 중이라 하객 맞을 사람이 없다며 로비로 갔습니다. 신랑이  자꾸 자리를 비우는지, 신부는  부자연스럽게 입만 웃고 있는지 타들어 가는  마음을 저만이 알겠죠?                    



# 식 시작 20분 전.


두 번째. 신부 측 어머님 아직 안 오셨나요?     

첫째 시누 쓰러졌다는 소식에 아직 가슴이 진정이 안됐는데 친정엄마까지 아직 안 오셨다니요?     

신부  어머님이 결혼식 20 전에도 아직 식장에 도착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친정아버지가  계셔서 결혼 준비할 , 식장 들어서는 내내 울컥울컥 했는데 엄마까지  오고 계신다니 이게 무슨 난리인지요. 멘털이 나갈 지경이고 돌아가는 상황들이 정말 답답해서 대기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친정엄마께서 45인승 버스를 대절하여 하객분들 모시고 오전에 출발했다고 연락 주셨었습니다. 토요일 교통 상황을 고려해서라도 1시쯤에는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아직까지 도착을 못했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요?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나? 걱정과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오 마이 갓.

알고 보니 기사님이 결혼식장 근처에서 헤매시다 서초를 지나쳐 낙성대까지 가셨다고 합니다. 사고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었지만 엄마가 아직 식장에도  오고 계신다니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눈물도  나더라고요. 이제  시작하기 20분도   남았는데 식전에 도착할 수는 있을지. 친정엄마, 아빠도 없이 눈물 바람으로 결혼식을 하게 될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었습니다.


             

# 식 시작 10분 전

     

친정엄마가 저보다 더 상기된 얼굴을 하고 대기실로 뛰어오십니다.     

큰딸 시집간다고 새로 지은 분홍색의 고운 한복도, 동네 미용실 원장님한테 예약해서 새벽 4시부터 받은 헤어, 메이크업도 무색할 정도로 반은 넋이 나간 엄마의 표정을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군요.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서 시집보내는 딸 결혼식에 혼주인데 하객들 맞이는커녕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심정 백번 이해됩니다. 엄마를 보니 그냥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끝까지 참았습니다.

제가 주인공인 한 번뿐인 결혼식일 테니까요.


결혼식이 시작됩니다.     

결혼 직전 폭풍이 몰아치는 사건들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양가 어머님들은 화촉을 밝히시고 신랑은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씩씩하게 입장을 했고 저는 작은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을 했습니다.     


결혼 예배로 식이 진행되었는데요.

목사님의 주례 말씀도 그때는 들리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결혼식 영상으로 보니 ‘서로 돕는 배필로, 주께 하듯 남편을 섬기고, 아내를 위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부부가 돼라 말씀이셨습니다. 결혼 생활의 지표가  정말 귀한 말씀이기에  메모해두었습니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친정엄마 얼굴을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고 신랑은 큰절을 올리고  눈물을 닦아주며 다독여 주더군요. 축가, 행진까지 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아휴. 정말 두 번은 못 할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 이후 에피소드 또한 넘쳐났습니다.     


먼저 첫째 시누 쓰러진 사건입니다.

평소 생리통을 아주 심하게 앓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식전에 미리 식사하고 친인척 어르신들 챙기려고 피로연장에 갔다가 급성으로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첫째 시누가 쓰러질 때 옆에 있던 둘째 시누의 재킷을 잡고 쓰러지는 바람에 재킷은 찢어졌고, 둘째 시누는 재킷 없이 5월에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사진을 찍어야만 했습니다. 119를 부르고 출동이 늦어진다는 말에 막내 아가씨는 인근 약국에 약을 사러 갔더라고요. 시아버님의 응급 처치와 아가씨가 사 온 진통제로 인해 첫째 시누는 무사히 회복되었고 시부모님도 결혼식 혼주석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쓰러진 현장에 저희 친정 오빠가 있었답니다. 오빠는 하객 맞기 전 식사하러 갔었고 상견례 때 첫째 시누는 참석하지 않아 얼굴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식이 끝나고 양가 가족, 친인척, 우인들 차례대로 사진을 찍는데 시댁 식구들과 가족사진을 찍을 때 아까 피로연장에서 쓰러졌던 여자분이 퀭한 얼굴로 가족 틈에 있더래요. 그제야 저분이 쓰러진 여자분이고 사돈처녀인가 싶었답니다.               


이 정도면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     

행복, 놀람, 걱정, 슬픔, 눈물, 안도, 감동까지

저와 남편이 분량 적은 주인공으로 훌륭하게 연기했던 한 편의 드라마 같지 않나요?

인생의 희로애락이 2시간도 안 된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결혼식이 너무 스펙터클해서일까요?

올해로 결혼 13 ,  아들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키만큼이나 이해심 많고 듬직한 남편과 사춘기가   같은  아들이지만 아직은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년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저의 결혼식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결혼식 당일에는 정말 끔찍했던 기억이 벌써 13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있네요. 남편과 두 아들과 결혼식 사진을 보며 추억놀이 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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