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평 Aug 07. 2020

브런치 작가 되는 방법

그리고 브런치 작가라는 사실을 들키는 방법


들켰다. 브런치에 연구원 생활에 대해 쓰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박사님들에게.




일은 회의실에서 벌어졌다. 회의록을 적어야 하는 막내 씨의 운명을 타고났기에 자료와 함께 노트북을 바리바리 챙겨갔다. 옆자리 박사님은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특별할 것 없는 말 한마딜 건넨다.


"와 선생님 되게 인싸네요. 스티커 이렇게 붙이는 거 인싸들만 하는거죠?"


이 말로써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인사이더가 되었고, 장난기 가득한 동료 선생님의 어시스트에 힘입어 유튜버임이 밝혀졌으며,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떨리는 질문을 받게 된다.


"어??? 그럼 설마 브런치에 글 쓰시는 그 연구원 선생님이 선생님이에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어디 가서 사기는 못 치고 다닐 투명한 인간이다. 어찌 아셨냐 반문했다. 사연 인즉슨 그분이 친한 박사님께서 나의 글(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대한스 민국)을 공유해주었고, 그 박사님 그룹에서는 이 자가 대체 어느 연구원 사람인지 나름 궁금증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유튜브를 한다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번 찔러보신 건데, 홈런이었다.


순간 부끄러움에 식은땀이 났다. 가면이 벗겨진 느낌이었다. 누구든 보라고 써둔 것이긴 해도 그게 지척에 있는 박사님일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더욱이 이 공간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알 길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동료 선생님들은 알아도 박사님들은 알지 않았으면 했다. 날 것을 그대로 방출하는 일에는 익명성의 그늘이 필요하고, 타인을 위한 글에는 나에 의한 문장이 적기 때문이다. ‘연구원으로서의 생존과 생활에 대해 적확히 써보겠다’는 첫 포부가 어렵게 되었다 느꼈다. 자연스레 엄한 내용은 없었는지 자기 검열 회로를 빠르게 가동했다. 아무래도 별 것 없는 것 같다. 휴우. 차카게 살자.


동시에 무척 신기하기도 했다. 누군가 이걸 진짜 읽긴 하는구나, 써볼 만 하구나 싶다. 박사도 아닌 연구원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하고 공감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가 재미있고 좋다는 사람이 있다니 영광스럽다. 오고 가는 격려의 말씀에 감사하고도 송구스럽다. 이것이 세미 관종의 미묘한 심리다. 알려지는 게 싫으면서도 알려짐으로 인해 칭찬받는 건 좋다. 나도 날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후 요즈음 함께 일하는 또 다른 박사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던 터라, 그 앞에서 내 귀는 더 빨개질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내 글을 처음으로 공유해주었다는 박사님을 만나보게 되었다. 박사님들이 팬미팅, 작가님이라는 단어를 쓰실 때마다 쥐구멍이라는 말이 이래서 있구나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 공통적으로 듣는 말은 '정말 부지런하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한 일이라곤 ‘시작’ 한 것뿐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소개팅에 나가고,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학교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기록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아무것에 포함되는 관심의 범위가 조금 넓거나 달랐을 뿐이다. 공부하고 일하는 것도 좋지만 삶 자체와 아름다운 것들을 다양하게 기록하는 일이 좋았다. 그리고 이를 나와 같은 관심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일이 즐거웠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 나는 느린 사람이다. 말주변이 없어 글이 아니라면 나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몇 시간 또는 몇 날 며칠을 생각 회로에 불을 지피고 연관된 말들을 되뇌고, 적고, 지우고, 또다시 써야 직성이 풀렸다. 게다가 기억력도 좋지 않다. 생각난 것을 바로 적어두지 않으면 아세톤처럼 금방 날아가 버린다. 그러므로 쓰는 일은 좀 더 잘 살기 위한 습관이자 삶의 노하우였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부터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붙잡고자 메모장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그 무렵 문예창작학을 공부한 선배에게 메모장을 보여줬던 일이 기억난다. 메모들을 본 그는 옅게 웃으며 글이 죄다 느낌표로 끝난다는 것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그것 말고는 특이하게 지적할 만한, 별 볼 것이 없었다는 뜻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책과 글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을 친구들에게 짜잔 하고 보여주기엔 너무 쑥스러웠다. 누군지 모를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책의 부분과 직접 쓴 글 조각을 전시하고 공감을 받는 일은 색다른 기쁨을 선사했다.


한두 해 전부터는 네이버 블로그를 활성화시켰다. 보다 긴 호흡의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일기는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 내놓기도 어려운 그런 글을 적었다. 친한 지인들에게 ‘서이추 하자’는 수줍은 고백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기록은 점차 쌓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내게도 글 근육 비스무리한 것들이 생기고 있었다.


작년부터 갖게 된 이 직업은 좋은 소재가 되었다. 덕분에 브런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어떤 글은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현재 누적 조회수 4만 회를 넘기고 있다. 나처럼 연구직의 일상과 고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싶었다. 지금도 이러한 공감과 관심에 자극을 받아 근육을 계속 단련해나가는 중이다.




마케터이자 <기록의 쓸모>의 지은이인 이승희는 한 강연에서 1%의 영감을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첫째, 가장 쉬운 방법으로 아무거나 시작하기. 둘째,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를 의식하기. 셋째, 큰 이야기보다 작은 이야기를 자주 꺼내기.


놀라웠다. 항상 하던 생각이자 찾던 말이었다. 매일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쉽게, 자주 꺼내 하는 것은 깊은 관계를 만든다. 나에게는 글과의 관계가 그랬다. 더디지만 계속 해오면서, 기록하는 행위를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나의 이런 행위의 결과물들을 좋아해 주는 이들도 적지만 분명 존재하게 되었다.


다만 나는 매일 기록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태생이 게으른 나에게는 그 어떤 반복적인 행위도 지겹다.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의 목적은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만을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것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그리고 그냥 시작하자.


비단 글이 아니더라도 그렇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해보자. 우리는 살면서 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 정말 자주, 많이, 오래 고민해왔다. 그러니 이젠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할 차례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일에 대해 떠올려보자.


고심을 끝마쳤다면 그것을 시작하되, 죽을 것처럼 하지는 말자. 그 대신 ‘죽음이 앞에 있는 것처럼’ 하면 된다. 내일 나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것은 죽음인 것처럼, 오늘 당신의 역사를 시작해본다면 좋겠다. 행운을 빌어 드릴게!




매거진의 이전글 야 너네 연구원 어떠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