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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설아 SMILETOOTHLESS Jul 17. 2020

인생의 불확실성

9007번 버스에 부치는 간곡한 청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인생의 컨트롤을 잃는 행위와 비슷하다. 특히나 아이가 어릴 때는 삶의 중심이 아이로 옮겨오기 마련이고, 대부분 엄마 쪽이 더 그러하다.

학창 시절에는 지각 한 번에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나도 아이를 낳고는 회사에 지각하는 일을 밥 먹듯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는 일도,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3년여를 살다 보니, 머릿속에 위기경보가 고장 났는지 어지간한 사건사고에는 무덤덤하다. 일상의 규칙을 하나하나 지키려고 하다 보면 지쳐 나자빠지기 십상인걸 이제는 알기 때문에 굳이 아이를 일찍 재우려고 하지도, 꼭 아침밥을 먹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내 일상은 엉망진창이다.

이미 너저분한 내 일상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9007번 버스다. 서러운 경기도민은 그놈의 빨간 G버스를 타고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놈의 빨간 G버스는 배차간격이 참 길다. 예상 도착시간을 훌쩍 넘어오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예상 시간보다 먼저 와서 눈 앞에 휙 출발해버리는 버스를 망연자실 바라보는 내 심정은 G버스 탑승객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긴 배차간격 때문에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빨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버스의 정차 위치를 예측하여 이리저리 구름 떼처럼 몰려다니는 바로 그때, 나는 어디에 끼어들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 눈치게임에서 패배해 그 긴 구름 떼의 끝자락에서 만원이 된 버스에 차마 올라타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난 정말 울고 싶어 진다.

그러니 9007번 빨간 버스야. 제발, 빨리 와 줄 수 없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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