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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메 Jan 29. 2024

루마니아 학교의 빈부 격차(1)

Scoala Nr.1, 4 학교의 이야기



현지에서 내가 교육 활동을 했던 학교는 세 곳이다.  


Scoala Generala Nr.1  https://maps.app.goo.gl/MzuVbmYXFHvpD1Us6

No4 Gymnasium - https://maps.app.goo.gl/AZqcJTMxP6rLGsns8

루마니아 학교명을 살펴보면,

Scoala = School이고, 우리나라처럼 00학교라는 이름이 붙는 대신 숫자를 붙인다. 프랑스 대학과 비슷한 시스템인데, 프랑스처럼 평준화를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인지, 과거 공산주의 체제의 흔적인지 모르겠다. 후자가 아닐까 싶다. 전자라고 생각하기에는 학교 간 격차가 너무나 극명했기 때문에 정부에서 평준화를 위한 정책을 펼쳤을 것 같지 않다.


 위 학교(Scoala nr.1, nr.4)는 교장 선생님이 같다. 같은 학교 캠퍼스인 하다. 그래서인지 인프라 측면에서 비슷했다. 반면 아래 학교(Scoala nr.25)는 위 두 학교에 비해 시설도 좋고, 교직원들도 훨씬 열정적이고, 아이들도 가정에서 케어를 잘 받은 느낌이었다.

Școala Gimnazială Nr. 25 - https://maps.app.goo.gl/odBzgNHcteRgonLp8


Scoala Nr1,4(이하 1학교, 4학교)는 다소 '메마른' 곳이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교육 활동을 위한 자료와 기자재가 없다.


 학교 첫날, 파워포인트 수업 자료가 담긴 USB를 들고 교실에 입장했다. 그런데, 교실에 TV나 롤스크린과 프로젝터는 커녕 컴퓨터도 없는 게 아니겠는가! 오로지 칠판과 분필 뿐이었다. 자기 소개와 한국에 대한 소개를 위해 준비했던 다양한 사진들과 영상들은 내보일 수조차 없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최대한 임기응변을 하였다. 칠판에 열심히 그림을 그려 가며 수업 내용을 구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는 당연히 교과서와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사진 영상 자료로 수업을 준비하던 나였기에, 이런 자료의 불모지에서 그야말로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종이접기라도 해볼까 했건만, 색종이조차 없었다. 있더라도 실물화상기가 없어서 무리였을 것이다.

 A4용지밖에 줄 수 없겠네요.

 실제로 현지 학교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어쩔 수 없이 A4용지와 필기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활동, 몸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한국 전통 놀이 정도로 수업을 이어나갔다. 아래는 노트북으로 정리했었던 수업 실라버스(라기에는 부끄럽지만)를 찍은 사진이다.

nr.1, 4를 위한 수업 목록들. 세 학교 8개 정도의 반을 수업하다보니 각 반에서 식별할만한 특징들을 메모했던 것도 보인다.

 

paper building - A4 높이 쌓기 협력 놀이

 

나름 협력과 경쟁을 하며 즐거워했다. A4용지만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 인생이 영화라면 어떤 타이틀을 짓고 싶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한글 자모음 소리를 알려주고, 자기 이름 한글로 써보기 활동도 해봤다.

학생들이 나와서 쓴 자기 이름들. 글씨가 상당히 예쁘다. (참고로 Nr.25학교 사진)


 그 외, 나를 세 가지 색깔로 설명해보는 활동, 영어 단어 빙고 수업, Hangman game(어릴 적 영어 수업 때 자주 했던 영단어 게임 기억하는가? 나는 임의로 demon game으로 바꿨다. 사람을 목매다는 그림 대신 귀여운 악마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대체했다.), 과일 바구니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등..  맨손 수업은 영혼까지 다 끌어모았던 것 같다.


 안 그래도 학생들의 학습 동기가 대체적으로 낮은데, 동기를 끌어올려줄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외국인 교사라는 점에서 존재만으로 학생들의 흥미를 상당 부분 끌 수 있었고, 나름 쉽고 재미있을만한 활동으로 심폐소생을 하며 5주를 버텼지만 평소에 어떻게 수업이 이루어질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2. 학생들의 영양 관리가 필요하다.

 사진 속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박스가 바로 학생들의 점심이다. 매일 런치 박스가 하나씩 배달된다. 안에 있는 것들은 흡사 전쟁 식량(?)같은 딱딱한 비스킷, 작은 사과, 삼각주머니에 담긴 우유가 전부이다. 학생들은 그걸로 점심을 때우거나, 집에서 개인적으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온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집에서 도시락을 따로 챙겨주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나라 급식이 워낙 잘 나오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충격이었다. 한창 성장할 나이에 영양이 너무 부족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충격과 걱정으로 머리가 잠시 멍해졌던 차에, 학생이 다가와 음식을 건네며 챙겨주었다.

방에 와서 찍은 점심 사과. 내 손에 들어갈 크기


3. 학생들의 안녕에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출결에 엄격하다. 때로는 서로 귀찮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아파서 결석을 하면 진료서 혹은 약봉투, 결석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무단으로 결석 시 학부모에게 연락해서 아이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확인을 한다. 나 역시도 말없이 결석한 학부모가 오후까지 연락이 불통이라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연락을 취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루마니아 1학교, 4학교는 달랐다. 학생은 자기 마음대로 안 오기 일쑤이다. 매번 출석이 들쑥날쑥이다. 왜 안 왔는지 선생님도 별 관심이 없다.

 

 충격적이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5학년 수업을 끝나고 학교 문을 나서는데 위에서 누가  '윤지!'하고 반갑게 불렀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위를 보니, 방금 수업에 들어갔던 반 학생이 담배를 피우며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아닌가. 학교에서, 그것도 교실에서 담배라니..

 또 8학년이었던가, 반에서 수업을 하는데 오랜만에 출석했는지 처음 보는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임신 상태였는지 배가 불룩하였다. 어찌된 일인지 물을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속으로 놀라고 지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이었을까. 행여나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것이 아닌지 알아내어 조치를 취했어야 했을까.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에 그랬을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어디까지 오지랖을 부릴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조심스러웠다.

 


4. 교원들의 무기력한 분위기


 우리나라 학교는 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한다. 대부분 문화권에서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은 예의이자 배려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자 부단히 신경을 쓴다. 그런데 루마니아 학교에서 느낀 것은 선생님들이 '수업 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10여 분을 더 담소를 나누시고는 교실로 올라간다. 나는 중간중간 공강이 있어서 이러한 모습들을 빈번히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1,4학교에서는 교무실에서 회의를 하거나 하는 모습을 거의 못 봤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학년끼리 혹은 전체 교직원이 모여서 회의를 꼭 한다. 교육 활동을 위해 협력하고 의논해야 할 일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마니아는 교원 간의 소통이 현저히 적은 느낌이었다. 교무실도 그저 '쉬는 시간에 앉아 계시는 용도'로만 이용하시는 듯 했다.

Scoala nr.1 교무실의 모습

 

 내가 수업할 때 가끔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함께 계시는데, 핸드폰을 하시거나 창밖을 바라보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 입장에서는 지켜보는 눈길을 주지 않아 부담이 덜한 느낌도 있긴 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여러 번 있었기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1,4학교에서 8,9학년 학생들은 다소 거칠고 과격한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하는 루마니아어로 내게 장난스런 말들을 하며 웃는데, 나 혼자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파악조차 안 하시고 핸드폰에 열중이신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괜시리 학생들에게 정색을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학생들보다 선생님께 더 섭섭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수업에 함께 하는 태도로 내 수업을 참관하시고 흥미로웠다는 피드백을 주신 한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임용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셨다. 그 분께 더 감사한 마음도 들고, 같은 새내기 교사로서 동질감도 느껴졌다. 그런 선생님이 루마니아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논외.

루마니아 1,4학교는 수업 종이 수동이다... 방송국에서 자동으로 송출되고?그런 것 없다...

학교 관리인이 뭔가를 잡아당기며 수동으로 벨을 울리시더라. 완전 레트로 감성...ㅎㅎㅎ



 학교에서 제공하는 지원은 메말랐지만, 나에게 쾌활한 웃음과 관심을 주었던 학생들의 모습들은 결코 메말라 보이지 않았다. 부족해보이는만큼 더 고민하게 되고 더 눈에 담고 싶었던 Scoala nr.1 그리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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