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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의도노마드 Sep 01. 2022

문송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말을 줄인 표현이다. 언젠가부터 문과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자조적인 농담을 자주 듣곤 한다. 업종을 막론하고 디지털, 4차 산업, 데이터를 외치면서 이공계 전공의 수요가 폭증하자 상대적으로 상경계를 비롯한 문과 계열 전공자는 신입이나 경력이나 설자리가 부족해진 탓이다.


이러다 보니 문과 전공자 친구들도 취업을 위해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이런 수요에 맞추어 우후죽순 코딩 학원들이 생겨났다. 이런 학원들의 광고를 보면 코딩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질 것은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거나, 누구나 6개월만 학원을 다니면 고액 연봉의 개발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으려 노력하는 것만 같다.


직업의 경제적 가치는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산업의 수요과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그 수요와 공급은 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불과 10년 전 내가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만 해도 컴퓨터공학과는 이공계열에서 비인기과 중 하나였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말이 사회현상 용어로 쓰일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더 10년 전에는 지금과 같이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수요가 높았다. 인터넷과 개인 PC가 보급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 단기적으로 보면 그 이유는 산업과 기업의 성장 사이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기에 늘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새로움에 대한 수요가 넘칠 때는 그것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공급이 충분해지고 산업과 기업이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 자원 배분을 최적화하고 조직을 이끌 수 있는 경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또 새로운 수요가 떠오르면 그 수요를 채워줄 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사이클은 반복된다. 산업과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경영 모두가 필요하다. 다만 시기에 따라 그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발생할 뿐이다. 언제 다시 '이공계 기피현상' 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기술을 통해 더 풍요로운 세상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에서는 점차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기술이 많은 부분 채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보다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우리 행복의 더 많은 부분을 채워주리라 믿는다. 그러니 문송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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