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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의도노마드 Mar 24. 2023

일의 의미와 재미

나는 이과였지만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역사와 사회 과목을 더 좋아했다. 문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학 점수가 나쁘지 않다면 소위 '의치한약수' 중 하나를 목표로 삼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때였다. 나도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이과에 진학했다. 수능을 보고 점수에 맞춰 지방에 있는 한 수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소위 '사'자 직업을 가져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어떤 일에 의미와 재미를 느끼는지는 진로 선택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나에 대한 고민의  빈자리는 방황으로 채워졌다. 동물과 자연보다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였다. 전공 공부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고 동기, 선후배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앞으로 10년 이상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결국 고민 끝에 자퇴를 결심하고 다시 수능에 응시했다.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문·이과 교차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차선책으로 경제학을 복수전공으로 삼기 유리한 수학을 주전공으로 선택하였다. 다행히 새로운 전공공부는 즐거웠고 다양한 전공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길인 만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전공 공부와 여러 교내외 활동에 참여하며 앞으로 어떤 일에서 의미와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갈지 탐색했다. 경제학 수업과 학회 활동을 통해 금융위기 사례들을 공부하며 정보의 왜곡과 비대칭으로 인해 사회와 개인이 어떤 파국에 이를 수 있는지를 배웠다. '어떻게 하면 이런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다 보니, 졸업 후에는 금융시장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정보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학부에서부터 재미를 붙였던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신용도와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방법들을 연구해 왔다. 의미와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일이었다.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고자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연구해온 내용들을 기반으로 사장님들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창업에 도전했지만, 실패로 끝이 났다. 연구와 창업은 전혀 다른 영역의 일임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필요한 정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데이터를 모으고 연결해야 하는데 규제, 기술, 이해관계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는 부동산을 포함 사장님들이 겪고 있는 많은 정보 비대칭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스타트업에 합류하였다.


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데이터와 정보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소속과 직함에 관계없이 이런 믿음을 실천할 수 있다면 나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들을 찾아보고 적용해보는 것은 내가 일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다.  차례 진로 전환점을 지나다 보니 앞으로 내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이제는 스스로에게조차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어렵게 찾은 나만의 일의 의미와 재미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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