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26-2 (개정판)
“우덕아~ 내 컴퓨터가 좀 이상한데, 내방으로 좀 와라”
“옙~ 사장님!”
장우덕대리, 엉덩이를 쭉 빼고 앉은 모습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갈 듯한 모습이다. 반대편에 마주보고 앉은 나는 일어서지 않으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업무시간 그의 자세는 마치 PC방에 죽치고 있는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저기에 담배만 꼬나 물고 옆에 먹다 남은 컵라면만 가져다 놓으면 싱크로율 100%다.
“야! 두더지! 자꾸 땅 속으로 기어들어갈래?”
가끔 사장이 기획실을 지나갈 때면 그에게 던지는 말이다. 사장이 던지 그 말에 빵터진 팀원들은 그가 모르게 ‘불량 두더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사장이 지나갈 때면 땅 속으로 기어들어갔던 두더지는 재빠르게 모니터 위로 머리를 드러낸다.
그는 방대리와 동갑인 기획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팀원이다. 그는 게임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경력직으로 DB중공업으로 이직해 왔다. 박대리는 그를 시스템 개발 인원으로 적극 활용하려 했지만, 그의 프로그래밍 능력이 생각했던 수준에 못 미치는 모양이다. 그 또한 프로그램 개발이 체질은 아닌 듯 보였다. 입사 초반에 그가 개발을 추진한 인사관리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했고 결국은 프로그램 전체를 갈아엎고 다시 개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걸 눈치챈 사장은 그를 전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매 및 관리의 중책을 맡겼다. 그것도 기획실장인 도대리를 건너뛰고 사장 직속으로 보고와 결재가 이루어지는 핫라인을 거머쥐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를 자리에 앉게 되었다. 불량 학생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다.
“아~ 사장님 비위 맞추기 넘 힘드네”
“장대리님 그래도 사장님이 대리님 완전 총애하시는 거 아녜요? 매일 같이 무슨 친동생처럼 불러대니 하하하”
“아놔~ 말도 마라! 내가 무슨 개인 집사인줄 아나봐”
“그래도 프로그램 개발하시는 거 보단 낫잖아요 나름 전산 구매아닙니까? 하하”
“구매는 무슨 맨날 전사 컴퓨터 수리나 하러다니는 시다바리지”
그는 전사 사무용 컴퓨터를 관리하느라 하루에도 여러 번의 컴퓨터 수리 요청을 받는다. 물론 그가 모든 컴퓨터를 다 손 볼 수는 없기에 별도로 외주용역업체를 운용한다. 그는 외주업체운용부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구매, 관리까지 그가 맡고 있다.
“장대리, 저 자리가 참 꿀 보직인데…”
“무슨 말씀이예요?”
상한씨의 예리한 레이더에 또 뭔가가 포착된 모양이다. 가끔씩 난 그가 국과수(국가과학수사연구원)에 소속된 형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두툼한 체형만 빼면 말이다.
“생각을 해봐요, 왜 장대리가 사장님이랑 다이렉트로 얘길하겠어요, 것 두 일개 대리 나부랭이가 사장이랑”
“…”
“회사에 얼마나 많은 전산비품이 있는지 모르죠? 그거 유지, 관리비용도 만만치 않을 껄요, 장대리 가끔씩 재무팀 사부장한테 끌려내려가는거 봤죠?”
“예”
“그 만큼 회삿 돈을 많이 쓴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뭐 보나마나 또 사장님 비자금 루트인게 분명해”
“설마요?!”
“쯧쯧 세상은 희택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아”
사회 초년생의 눈에는 아직 그런것들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아직 물 밖 세상도 생소한 나에게 물밑의 움직임들이 보일리가 없다. 사회생활의 짬밥은 무시할 수 없다.
설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설날에는 많은 선물이 오고 가기 마련이다. 우리 같은 일반 직원들은 회사에서 나눠주는 몇 가지 선물셋트와 명절보너스가 전부이겠지만 몇몇 직원들에게는 특별한 비밀 선물들이 있다.
“아놔! 짜증나, 잠시만 자리를 비우면 주차할데가 없네”
외근을 나갔다 오는 길이었다. 회사 근처 공단도로 양 옆으로 직원들의 차량으로 가득하다. 업무용 차량이 부족해 직급이 낮은 사원, 대리들은 대부분 자차로 외근을 나간다. 뭐 별도의 유류비를 회사에서 제공하지만 내 차량의 감가상각비용은 책임지지 않는다.
일단 그런 건 제쳐두고라도 문제는 외근을 다녀오면 회사에서 가까운 빈자리는 어김없이 다른 차로 채워진다. 그러면 회사에 한참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와야 한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주차를 하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장대리다. 그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과 그의 차 뒤에 서서 커다란 선물 박스로 보이는 상자를 자신의 차 트렁크로 옮겨 싣고 있는 것이다. 물건을 싣고 난 후 그 사람은 다시 하얀색 봉투를 장대리에게 건넨다. 장대리는 봉투 안을 살짝 들여다 보고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잽싸게 회사 점퍼 안주머니에 쑤셔넣고는 그 사람과 악수를 하며 몇마디 말을 주고 받고 이내 헤어진다.
‘음… 역시 회삿돈 쓰는 사람은 쓰는 만큼 들어오는게 있구나’
왜 사람들이 구매팀을 부러워하는지 그때까지 잘 몰랐다. 난 학생시절 때 회사의 꽃은 영업이라고 생각하고 해외영업의 꿈을 안고 입사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영업은 밖으론 고객에겐 구걸하고 안으로는 돈벌어오라고 채찍질 당하는 그런 서글픈 운명이라는 것을 몰랐다.
반면 구매는 어딜가나 왕대접을 받는다. 어디 외부업체 외근이라도 나갈라치면 평소에 구경도 하기 힘든 산해진미들로 배를 채우고 온다. 그래서일까 구매팀의 직원들은 날이 갈수록 얼굴에 기름이 흐르고 삶이 윤택해지는 듯 보였지만 영업팀은 얼굴이 푸석해지고 스트레스성 탈모나 위궤양등의 지병들이 하나씩 들어가는듯 보였다.
“오~ 오성씨 던힐(Dunhill)피네요 저도 한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갑의 구매팀 직원을 가끔씩 흡연장에서 만난다. 입사초기땐 같이 디스를 나눠피던 그는 1년이 좀 지나자 양담배로 바뀌더니 새 중형세단을 뽑았다. 그의 말로는 할부로 질렀다고 하지만 사원 월급으로는 중형고급세단을 할부금을 감당하기 쉽지않다. 처음엔 금수저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금수저가 이런 지방중소기업에서 일 할리도 만무하다.
직장 생활의 길어질수록 사람을 향한 의심도 늘어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