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Sep 26. 2019

애매한 시간 오후 4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이의수

"불혹(不惑)은 몸도 마음도 지쳐서?"

                                        - 글 짓는 목수 -

                         

   마흔은 몸도 마음도 다르다. 불혹이 되니 몸과 마음 달라진다. 정말 웬만해서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고된 인간사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일까? 30대가 될 때는 커다란 감흥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40대의 시작은 뭔지 모를 공허함과 불안함과 시작했다. 서른아홉의 마지막 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폭죽 소리와 함께 수많은 인파의 환호성 속에서도 뭔지 모를 쓸쓸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Sydney Fireworks in 2019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30대 초반이었다. 경북 대구에서 직장 생활하던 시절 사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왜 이 책을 집어 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부서 팀장(당시 40대 초반)과 트러블이 많았고 그를 이해해보려고 책을 대여했던 것 같다. 매일이어지는 야근과 특근으로 책은 다 읽지도 못했다. 내용이 크게 와 닿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책은 반납되지 못하고 집에 남겨진 채 회사를 떠났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 읽은 책은 그 때와는 사뭇 다른 공감을 불러온다. 믿기지가 않는다. 내가 이제 중년에 접어든 것인가? 그동안 난 뭘 해놓았는가? 나는 왜 아직 이 모습인가? 내가 꿈꿔왔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거울 속엔 희끗한 새치들이 유난히도 눈에 거슬리는 아재만이 표정 없이 덩그러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버티지만 세상이 계속 일깨워준다."

                                           - 글 짓는 목수 -

                             

  아직도 20대 30대의 나를 나는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놓고 싶지 않다. 오기가 생겨서인지 요즘은 운동(수영)으로 몸을 더욱 혹사시킨다. 하지만 세월의 중력은 나의 근육과 체력을 돌려주지 않는다. 나는 뺏기지 않으려 버티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젠 조금씩 자신이 없어진다. 이렇게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것인가?


  얼마 전(2019) 호주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호주 로또 당첨금이 몇 달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누적되어 그 금액이 1억 달러(한화 약 800억)에 달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호주는 복권에 세금이 한 푼도 붙지 않아 정말 대박 중의 대박 인생역전이 가능하다. 한인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호주 전역이 떠들썩하다. 어딜 가나 로또 얘기다. 친구들도 다들 로또를 사고 럭셔리 소설을 쓰고 난리도 아니었다. 난 사지 않았다. 불혹이니까. 그 주 1등 당첨자가 1명 나왔다. 곳곳에선 사람들의 아쉬움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가난의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

      

  재산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알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너무 힘이 든다. 다들 쉽게 부자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있겠는가? 로또 걸린 사람은 분명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아니라면 저 로또를 계기로 타락의 인생을 걷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톨스토이의 말이 나에게만 더 와 닿는 것일까?


"행복의 빈부(貧富)는 상대적인 것이다."

                                           - 글짓는 목수 -


  과거 조용한 중형 세단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여기 호주에선 뚜벅이다. 지인한테 얻은 자전거에 뛸 듯이 기쁘다. 이제 바람을 가르며 땀을 식힐 수 있다. 사무실 안에서 종일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움직이는 거라곤 눈동자와 손가락뿐일 때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여기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속옷까지 흠뻑 젖고 현기증이 나도 잠시 그늘 아래서 마시는 콜라 한 캔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확실히 욕망을 줄이면 빨리 행복해진다.                    


"40대쯤 되면 몸 어디에든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 글 짓는 목수 -

                               

  상처는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지워지지 않기에 상처인 것이다. 마음의 상처 또한 그렇다. 상처들은 나의 편도체에 각인되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40대는 상처를 남긴 행동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불혹이 되는 것이다. 유혹에 넘어가지(불혹 不惑 =불변 不變) 않는다?! 40대는 그런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후 4시

오후 4시, 시작도 마무리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다. 40대와 닮아있다. 하루의 중반을 넘어섰다.


  부담스럽지만 그냥 있을 수도 없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업무를 정리하며 커피 한 잔의 여유로운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발등에 떨어진 새로운 업무로 야근을 각오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정리를 하든 새로 시작하든 해야 한다. 아직 하루의 끝을 장담할 수 없다. 정리하다 5시 혹은 6시에 시작해야 할 수도 있고 시작했다 생각보다 빨리 정리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상황을 탓하기보단 행동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 

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

이 무거운 세상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


                                  - 노래 [거위의 꿈] 중에서 -

                             

 [거위의 꿈]은 불러도 들어도 모두 소름 돋는다. 정말 감정이입이 잘 되는 노래 가사이다. 로또는 한주를 버티게 해주는 진통제이다. 상호의존적이며 일시적이다. 중독되고 몸과 마음은 피폐해진다. 꿈은 삶을 견디게 해주는 영양제이다. 상호보완적이다. 성장하며 건강해진다. 시련이 있기에 꿈이 간절해지고 꿈이 있기에 시련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허황된 꿈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 꿈을 꾸자! 이뤄지는 그 날까지 죽는 순간까지 이루지 못할지라도 꿈을 향해 달려온 추억이 나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40대는 다시 열정을 불어넣어야 할 시기이다.


40대가 되면 생애전환기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이 예전같이 않고 권태가 찾아온다. 20,30대 때의 열정을 다시 찾아야 한다. 환경과 생활습관을 바꾸고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한다. 다시 40년을 더 살아가려면.... 이대로는 안된다.


하나님은 왜 남자와 여자에게 사랑을 다르게 넣어주신 걸까?!


   저자40대에 이혼의 위기에 맞닥뜨린다. 아내의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이혼을 불러왔다. 남자는 당황스럽다. 물론 바쁜 직장생활과 생계에 집중하느라 아내와의 유대관계에 신경을 쓰지 못한 건 인정하지만 그게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부부는 의리로 살아간다고들 한다. 사랑을 했었기에 의리가 남는 게 아닐까? 사랑 없이 결혼한 부부라면 아마 의리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부부들이 각자 또 다른 삶 혹은 사랑을 찾아 떠나가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40대 남자의 사랑은 식어가고 여자는 더욱 갈구한다. 남자는 이해가 간다.(내가 남자라서) 이성에 대한 관심과 성욕은 20,30대 때처럼 왕성하지 않다. 사실 다른 것들에 더 많은 관심과 절실함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아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수컷으로서는 이제 생존의 궁리를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여자는 왜 40대가 되면 남자의 사랑을 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남은 생을 사랑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워서 일까?


  난 개인적으로 인간은 시기에 따라 집중해야 할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경중을 따져 선택과 집중을 해야 된다. 가족의 생계가 위태롭고 나의 사회적 존재가치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남녀 간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남자가 누가 있겠는가? 있다면 그 자는 위험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로맨틱한 중년의 사랑은 대리 만족에 그치는 것이지 나의 인생에 접목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 40대의 새로운 사랑이 아니던가? 중년의 불안함과 쓸쓸함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마 부부간의 따뜻한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 해본다.


  사실 자녀들의 뒷바라지와 직장에서의 고군분투로 지친 몸과 마음은 서로가 달래줘야 하는 것이다. 주변에 자녀를 키우는 친구들을 보면 둘만에 시간은 꿈도 꾸기 힘들다고들 한다. 의무적인 잠자리의 횟수를 채우는 것보단 차 한 잔 혹은 술 한 잔의 소통의 시간이 더 절실한 것일 수 있다. 40대의 부부는 둘만의 위로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자존심과 자존감

                          

   가끔 사람들은 자존심과 자존감을 헷갈리는 듯하다.얼핏 듣기에도 자존심보단 자존감이 더 중요한 듯 들린다.쉽게 표현해 보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조선시대 정승을 지낸 대나무같이 곧은 사대부 양반이라고 한다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방랑 김삿갓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충직한 사대부는 자신의 뜻이 꺾이면 칼을 뽑아들지만, 김삿갓은 술잔과 붓을 든다. 풀고 남긴다. 우리는 사대부 양반의 자존심보단 방랑 김삿갓의 자존감을 배워야 할 시기이다.

                               

"사대부 양반보다 방랑 김삿갓이 낫다"

                          - 글 짓는 목수 -

                      

40대가 되면 도전이 두렵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젠 어느 정도 쌓아놓은 것이 있다. 놓을 수 없다. 아깝고 두렵다. 이대로는 더 이상 쌓아 올리기도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땐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필요하다.

                                   

"와이프랑 자식들 빼고 다 바꿔라!"

                                         - 이건희 회장 -

                          

  과거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기업의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며 직원들에게 했던 유명한 말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한 사람의 인생 또한 도전과 변화가 없이는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릇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40대에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겪고 있다. 나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것을 내려놓았고 새로운 것들을 담고 있는 중이다. 쉽지는 않다. 남들은 처자식이 없어서라고 가능한 일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들보다 더 무모해질 수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그걸 핑계로 도전하지 않는 자들 또한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가 돈과 지위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오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일지도... 무모한 도전의 지속은 숙련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과거 삼성, 현대등 대기업들의 무모한 도전이 반도체, 자동차, 조선 강국을 만들어 냈고, 어리버리했던 신입사원이 지금의 김과장을 만들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7] -

                           

이 성경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 사람은 도전하는 사람이 분명하다.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 아킬라 아베베 -


  올림픽 최초 마라톤 2연패(60년 로마, 64년 도쿄)의 맨발의 영웅 아킬라 아베베가 남긴 말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한다.

아킬라 아베베

  '내 다리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지만 나에겐 아직 두 팔이 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지만 양궁선수로 다시 도전하여 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 이후에도 탁구, 썰매 크로스컨트리 등에 또다시 도전 메달을 딴다. 그는 자신을 이김으로써 자신의 삶의 승리자가 되었다. 40대에는 많은 실패와 시련이 닥치는 시기이다.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어리석은 자가 되기보단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책 속에 40대의 삶을 잘 녹아낸 듯하다. 곳곳에 삽입된 명언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40대라면 많은 공감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공감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이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4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는 책인듯싶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이전 26화 사람+사랑=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