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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18. 2024

세 개의 화산

발리에서 생긴 일 ep 8

“Karek, What is the meaning of your name?“(카렉, 너 이름은 무슨 뜻이야?)

“hahaha“(하하하)

“Why are you laughing“(왜 웃어?)

“Nothing, actually some guy ask me that too yesterday“(아니 어제도 어떤 남자가 내 이름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거든)


우리는 발리의 또 다른 관광지 우부드(Ubud)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발리는 바다도 멋있지만 내륙의 산속에도 볼 것들이 많다. 발리를 오면 우부드는 꼭 들려야 할 곳이다. 사실 우부드 여행은 계획에 없었다. 왜냐면 웬웬은 우부드를 여행 코스에 넣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렉이 우부드와 발리 북부의 지역에 볼거리와 액티비티가 많다는 추천에 내가 가자고 웬웬을 설득했다. 그녀는 발리의 해변에서 뭇 남성들의 시선을 즐기고 싶은 모양이었는지 우부드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It means the second.” (두 번째라는 뜻이야)


그녀는 6형제 중에 둘째였다. 그녀는 발리의 북부의 유명한 화산인 바투르 화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의 방언으로 첫째는 ‘부뚜’, 둘째는 ‘카렉’, 셋째는 ‘꼬망’, 넷째는 ‘끄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선 일반 명사가 고유 명사인 이름이 된다고 한다. 그 마을은 아이를 많이 낳아서 그냥 순서대로 부른다고. 그래서 마을에는 동명이인(同名異人)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밖에서 자신 만의 다른 이름을 만들어 친구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자신은 새라(Sarah)라는 본명 같은 이명(異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나중에 성인이 되고 마을을 떠나게 되면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본명처럼 되어버린다고 했다. 나는 왜 우리에겐 ‘카렉’이라는 이름을 알려주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공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자기와 같은 또래 친구여서 자기도 모르게 ‘카렉’이라는 이름을 알려줬다고 했다. 우리는 어느새 여행 가이드인 ‘카렉’과 친구처럼 친해져 있었다. 그녀는 우리 또래였지만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다. 첫째가 이미 초등학생이란다. 충격이다. 그녀는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때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느냐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하지만 웬웬과 나는 오히려 너무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고 기른 그녀가 더 신기하고 대단했다.


무엇이 정상인지 헷갈린다. 자연법칙에 따르면 인간도 사춘기가 되면 생식이 가능하다. 아마 그 옛날 문명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에는 분명 ‘카렉’처럼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고 순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화와 산업화는 자연법칙을 거스르며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원시화라는 다른 말로 바꾸어 놓았다.


중국도 이제 더 이상 인구가 늘어나지 않고 줄어드는 인구 소멸 국가로 접어들었다. 너무 많은 인구를 걱정해 산아제한(1 가구 1자녀)을 하던 때가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 빠른 현대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제는 아이를 낳는 것은 사치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지만 그런 욕구를 억제하는 것은 바로 사회화였다. 하지만 이제 국가의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사회화라고 말을 바꾸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인간이 인간을 생산하는 것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 사람들은 편리와 풍요를 얻었지만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은 이제 고착화되어 서로 멀어질 뿐 가까워질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알게 되면 생식 욕구로 인해 자녀에게 고통이 대물림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나오는 나의 자녀가 국가의 세납자와 가진 자의 부를 더 늘려주는 노동력이 될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면 과연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 자녀에게 죄를 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없는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영속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위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 위에 굴림하는 상태에서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은 더욱더 인위적임을 위한, 즉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자연법칙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을 거친 나라의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를 경험하지만 그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정신의 빈곤을 느낀다. 그들은 이제 본능에 이끌려하는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점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져 간다. 인간은 스스로 소멸로 향해 간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정화의 길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줄면 자연은 되살아나니까.


“Who was that guy? “ (그 남자는 누구니?)

“I was a trekking guide for Mt. Batur yesterday. Because I have no schedule yesterday as you know. I met a guy for trekking. That guy asked me like you“(어 아니. 내가 어제 너희들 하루 일정을 비워줘서 일일 바투르화산 일출 산행 트래킹 가이드를 했거든 거기서 한 한국 남자의 가이드를 했어, 그 남자도 너처럼 내 이름의 의미를 묻더라고)


카렉은 어제 한국 남자와 함께 한 일출 산행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카렉은 그와 단 둘이 짙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헤드렌턴 빛에 의지하며 산을 올랐다. 카렉은 그에게서 여태껏 만나온 관광객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카렉도 물론 신을 믿는다. 대부분의 발리인들은 모든 곳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모든 생명과 사물에 신의 존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다신교이다. 발리에 사는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는다. 신기한 건 인도네시아의 다른 모든 섬은 대부분 이슬람교이지만 유일하게 발리섬에만 힌두교가 성행하고 발전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발리인들은 자신의 가정에 신을 모시는 사당 혹은 탑 같은 공간이 존재했다. 매일 그들은 그곳에서 신께 올리는 갖가지 각자에게 의미 있는 재물들을 놓아두고 기도를 드렸다.



“What do you pray for everyday?”(넌 무엇을 위해 기도하니)


어둠 속에서 그 남자가 카렉에게 물었다. 카렉은 가족의 평안과 건강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도가 그렇지만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는 또다시 물었다. 


“So, are your family good?”(그래, 그럼 너의 가족은 안녕하니?)

“Well… Actually my first kid is sick.”(음… 사실 요즘 큰 애가 좀 아파)

“Oh, really? I’m so sorry to hear that”(그렇구나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봤나?)

“It’s Ok, that’s why I pray more than usual for my kid”“(괜찮아, 그래서 요즘 아이를 위해 더 많이 기도를 하게 돼)

“….”


그 남자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산길은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카렉은 그 남자가 점점 궁금해졌지만 그의 거친 숨소리에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의 템포에 맞춰서 속도를 조절해 가며 산을 올랐다. 어둠과 적막이 가득한 숲 속엔 그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What about resting for a while here?”(잠시 쉬었다 갈까?)

“Good idea” (그래 좋은 생각이야. 후우)


그때였다. 밑에서 두 개의 불빛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이제 올라가는 거야?)

“#!$%#!!$!” (응 좀 늦었어)

“!%@#?” (누구?)

“ %$@#&#” (오늘 같이 트래킹 하는 손님)

“#$” (1명?!)

“@!$” (응)


카렉의 이웃사촌이었다. 옆집에 사는 쌍둥이 자매라며 나에게 소개해 줬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은 각자 커다란 백팩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오늘 산 정상에서 트레킹 관광객의 아침 식사를 위한 식자재를 가득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상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어둠 속에 2개의 불빛은 4개로 변했다. 남자는 둘이 쌍둥이인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둘이 쌍둥이라고 하자 손전등을 들어 둘의 얼굴을 확인했다.


“Do you guys know that we are all twins?” (너 아니 우린 모두 쌍둥이라는 걸?)


그리고 그는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쌍둥이라는 생뚱맞은 말을 했다고 했다.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말이었지만 그는 꽤나 진지한 태도로 말을 했기에 카렉과 쌍둥이 자매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살다 보면 가끔씩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들이 있다. 아주 이상적이며 그럴듯한 상상 속 얘기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혹은 들뜨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그런 것들을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복잡한 세상 속에서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말들만 받아들이고 늘어놓으면 살아간다. 그 남자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자신이 마치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느낌이 싫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카렉과 쌍둥이 자매는 한동안 그의 말을 들으며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Wow, I got the top finally” (와~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아직 세상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카렉은 그 남자에게 일출을 보기 가장 좋은 자리를 안내하고 아침을 준비하러 산 위에 만들어진 움막 같은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촐한 아침이 준비되고 움막 밖으로 나왔을 때는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안개가 몰려오고 있었다. 바투르 산(Mt Batur, 1,717m) 앞 호수를 가운데 두고 뒤에 우뚝 솟은 또 다른 산을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몰아치는 안개가 산을 뒤덮으며 그 남자의 형체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어느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에 휩싸여 버렸다. 바로 코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산 정상에 있던 관광객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모두 각자의 랜턴 불빛을 밝혔다. 안갯속에 랜턴불빛이 산란하며 진귀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멀리서 조금씩 붉은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안개에 덮인 하늘은 강한 태양의 빛을 받아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앞에 우뚝 솟은 산 뒤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안개 때문에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빛은 너무도 강렬해서 안갯 속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태양이 산 위로 올라올수록 더욱 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탄성은 일반적인 바투르 산의 일출을 볼 때 나오는 그 탄성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감격과 감동의 탄성이 아닌 놀라움과 경악의 탄성이었다. 카렉은 수도 없이 이 산을 올랐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어느새 하늘이 피바다가 되었다. 그때였다.


“피리리리” (바흐의 칸타타 : Cantata BWV 147)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북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 바람이 안개를 다시 남쪽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그때 카렉의 눈앞에 눈부신 태양 빛을 막아선 그 남자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고 긴 막대기 같은 것이 입에 닿아 있는 실루엣이었다. 거기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핏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은 사라지고 하늘의 푸른빛과 태양의 노란빛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또 한 번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탄성은 카렉이 올라올 때마다 일출을 보는 관광객들이 내뱉는 감격의 탄성이었다.


“Hey, have some this” (이것 좀 드세요)

“Wow, thanks”(와우! 고마워)

“It’s so weird today”(오늘 정말 신기하네요)

“what weird?”(뭐가 신기해요?)

“Because it’s first time to see this scene”(이런 광경은 처음이라서요)

“Is that so..”(그렇구나…)

“I’m sorry that you can’t see the clear and beautiful sunrise of Mt Batur.”(안타깝네요 바투르산의 화려하고 선명한 일출을 보지 못해서요)

“It’s ok, It’s more meaningful. Because nobody can see this kind of sunrise.”(괜찮아요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일출을 맞이한 게 더 의미 있는걸요 뭐)


그의 반응은 남달랐다. 그래서 카렉은 그 남자가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건 그런 이상함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북하거나 불편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Is not that mountain alive?” (저 앞에 산은 죽은화산인가요?)

“No, it’s an inactive volcano” (예, 그것은 활화산이 아니에요)

“Then, What about the mountain behind of that mountain?” (저 산 뒤에 있는 산은?)


그가 손가락으로 멀리 앞에 우뚝 솟은 아방산(Mt Abang, 2,152m)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그 아방산 뒤에 있는 발리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아궁산(Mt Agung, 3,031m)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세 개의 산이 일렬로 서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It’s rarely can be seen, isn’t it?”(정말 보기 드물지 이런 건…)


3개의 화산이 일직선 상에 서 있는 곳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리고 더욱이 활화산 가운데 죽은화산이 있는 건 더욱더 희귀하다. 카렉은 모두가 일출의 아름다운 광경에 탄성을 내지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과는 달리 생뚱맞은 지질학적 질문을 던지는 그가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산을 내려가기 전에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Don’t you think that inactive mountain is like us? Three can be connected to be one if that mountain is alive. (죽은 산의 마치 우리 모습 같지 않아? 저게 타올라야 세 개가 연결되는데 말이야 후훗.)

“…”


카렉은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아쉬움을 품은 듯한 표정이 아직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그때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남자가 그 남자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Could you bring me to Mt Batur too?” (나도 바투르 산에 데려다줄 수 있겠니?)


나도 가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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