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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11. 2024

같은 공간 다른 시간

발리에서 생긴 일 ep 7

“呀!你不起来嘛? “ (야! 안 일어날 거야?)

“啊,我头疼 “ (아~ 머리가 너무 아파)

“所以嘛,我不是说过少喝“(그러게 좀 작작 좀 마시지)

“对不起,今天我动不了了“(미안… 오늘은 나 아무것도 못하겠다)


웬웬은 엉클어진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녀의 숙취가 하루 종일 갈 듯하다. 발리까지 여행 와서 이렇게 호텔방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을 걷어내고 환하게 비치던 태양은 어느새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땅 위 물기를 모두 증발시켜 버릴 듯이 타오르는 태양 때문에 밖은 한증막이 되었다. 금세 옷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당장 이 무더위를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태양 아래서 더 걷다간 굽혀지거나 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근처에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아이스커피를 마시니 바로 이곳이 천국이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언제부터인가 혼자 카페에 오면 가장 먼저 습관처럼 노트북을 펼친다. 그리고 보통 핸드폰은 보이지 않게 가방 속에 넣어버린다. 수많은 알람과 어플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글을 쓰거나 글을 읽을 때는 핸드폰을 숨긴다. 핸드폰과 떨어질 순 없지만 핸드폰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눈에 띄지 않으면 신경이 덜 쓰이는 법이다. 몰입을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핸드폰을 노트북에 연결했다. 발리에 와서 찍은 사진들을 노트북으로 옮기기 위함이다. 핸드폰 속 사진을 노트북의 큰 화면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글감과 영감이 떠오르곤 한다.


영상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글과 사진으로 먹고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이제 영상에 밀려 찬밥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웃긴 사실은 이 영상이 텍스트에서 시작되었고 영상은 이미지가 연속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저 시작과 과정은 간과하고 결과만 감상하며 그 영상에서 얻은 지식과 느낌과 감동으로 자신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영상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을 모른다. 영상을 쫓아가기 바쁘다. 마치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간다. 웃긴 건 영상을 만드는 자들은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영상을 만드는 자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즉 시작과 과정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자이다. 영상으로 모든 것을 습득하는 세상은 결국 결과만 보는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이다. 너도 나도 영상전문가가 되려 한다. 대부분이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고 카피하는 것들만 넘쳐난다. 영상의 홍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작에 서 있는 사람이고 또한 사진을 찍으며 텍스트를 이미지화하고 또한 이미지를 텍스트화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 텍스트를 영상 전문가에게 건넨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텍스트를 보며 연속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스토리영상화 한다. 감동과 재미와 충격을 논스톱으로 선사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그 영상 속에 붙잡아 둔다. 영상만 소비하는 자들은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간다. 타인의 만들어 놓은 허구(상상) 속에서 살아간다.


“完全一样的地方啊 “ (어랏! 같은 자리네)


그 남자의 사진을 발견했다. 동이 트고 어둠이 밀려나는 해변을 거닐고 있는 그 남자의 실루엣이 찍힌 사진이었다. 마우스로 그 사진을 확대했다. 그의 얼굴에는 기다란 막대기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피리를 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나에게 메일로 보내준 사진을 보았다. 석양빛으로 붉게 물든 바다와 해변의 모래사장 경계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웅크리고 있는 나의 검은 실루엣이 보였다. 두 남녀의 검은 실루엣은 모두 같은 자리, 바닷물과 해변의 경계에 있었다. 밤과 낮의 경계인 일출과 일몰에 서 있는 남자와 여자... 이런 우연 같은 상황이 나의 상상을 자극했다. 사진 창을 접고 하얀 워드 창을 띄웠다. 그 사진이 주는 영감을 글로 변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나의 이야기는 항상 단편적인 장면 혹은 문장들이 주는 영감에서 시작하곤 했다. 단편이 장편이 되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다.


“Miss, this is Ice Mocha. “ (손님, 아이스 모카 나왔습니다)

“thank you “ (네, 감사합니다)

“Miss, We run café and small art gallery together. If you are interested in art, you can enjoy the arts for free. And if you don’t mind, we would be appreciate if you follow our Instagram of gallary“(손님, 혹시 그림이나 예술작품에 관심 있으시면 저희가 카페랑 작은 미술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바로 옆에 있으니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저의 미술관의 인스타 팔로우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몰랐다. 카페 옆에 미술관이 붙어있는 줄은. 이런 후미진 주택가 골목에 미술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등을 돌려 보니 미술관의 입구에 단발머리의 검은 선글라스를 쓴 여성이 중지와 검지를 앞으로 내민 입술에 갖다 대고 있는 모습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벽화 앞에는 더위에 지친듯한 강아지 한 마리가 벽화 앞 그늘에 엎드려 쉬고 있다. 나는 벽화 속 여자의 제스처에 이끌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미술관이었다. 갖가지 유화작품부터 사진작품 그리고 조형작품까지 작지만 미술작품의 모든 장르를 포함하고 있었다. 여러 작품을 둘러보다가 특이한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개성 있는 두 남녀가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런데 두 남녀는 갖가지 무늬가 있는 천 조각들을 오려 붙여서 만들어졌다. 두 남녀는 각각 반려견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Hi. It’s an impressive painting, isn’t it? This is made by Portuguese “ (안녕하세요. 그림이 인상적이죠? 포르투갈 작가가 그림 작품이에요)

“ah~ “ (아 네…)


미술관 코디네이터인가 보다. 발리 현지 여성처럼 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나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나는 그림에 심취해 그녀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가 더 큰 흥미를 끌어낸다. 이 미술관은 발리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에 정착한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만든 갤러리라고 했다. 우연히 온 여행지가 새로운 삶터가 되어버린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내가 보던 그림은 한 포르투갈 작가가 발리의 해변 쓰레기 더미에서 주어온 옷가지들을 이용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쓰레기 옷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가 누군가에게 예술 작품의 재료가 되고 영감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의미 없는 것이 의미 있는 것으로 다시 살아났다.


이 포르투갈 작가는 예술가이면서 또한 환경운동가였다. 그녀는 이 그림의 작가가 이곳에 정착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들이 아름다운 발리의 자연을 훼손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20년 전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느꼈던 발리 사람들과 너무도 변해버린 지금의 발리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다. 발리가 휴양지와 관광지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며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은 돈이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돈이 넘쳐나는 곳에는 물질의 풍요가 함께 찾아오지만 사람들은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과거 자신을 해맑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점점 사라지고 그들의 눈빛은 의도와 욕망을 품은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이 돈으로 보기 시작했다.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이 왜 굳이 이곳의 자연을 보호하려는 환경 운동 예술가가 되었을까? 인도네시아 정부는 발리에서 더 많은 관광수입을 벌어들이려 각종 관광세와 비자비용까지 부여하며 돈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과는 너무 상반되는 모습이다. 도대체 누가 자국민인가 헷갈린다.


궁핍함은 돈을 좇게 되고 그 대신 많은 것을 내어놓아야 함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관광이 경제를 부흥시키고 국민들을 부유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대가는 나중에 그들의 자녀와 그 자녀들이 짊어져야 할 짐과 재앙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지금 당장 좀 더 배부르게 먹고 입고 누리는 것에 눈이 멀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이미 지나온 자들이 그것을 보면 그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을 보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산업혁명과 디지털혁명을 먼저 경험해 온 나라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는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하는 자인지도 모르겠다. 근시안을 가지자는 절대 예술을 할 수가 없다. 한다 해도 깊이가 없다. 수박 겉핥기이다. 예술가는 너무 멀리 그리고 너무 깊이 보기 때문에 현실에서 멀어진다.


“It’s so marvelous “ (정말 신기하네요)

“What do you mean? “ (뭐가요?)

“I met a guy who was standing in front of this painting yesterday too. “ (어제도 어떤 남자 한 분이 이 그림 앞에서 서서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라고요)

“Ah really? “ (아 정말요?)

“Yes, he also asked something about this painting like you “ (예, 그분도 이 그림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 남자였다. 코디네이터 말해준 인상착의를 듣고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공항에서 찍었던 그 남자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Wow! right. This guy. “ (오! 맞아요 맞아 이 남자!)


또 한 번 놀랐다. 그 남자와 나는 우연처럼 계속 시공간이 겹치고 있다. 지금은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이다. 내가 쓰는 드라마 극본 속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나의 현실에서 연출되고 있다. 너무 신기하다.


그가 지나간 곳을 나도 지나가고 있다.


그 남자 그 여자


사진 출처 : Nyamangallery in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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