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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28. 2024

부유와 빈곤 사이

발리에서 생긴 일 ep 5

“哇~ 好漂亮啊,对吧霈 ,霈云”(우아~ 완전 멋있다 그치 페이윈?!)

“哦“(어… )

“我暂时去洗手间了“(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知道了“(어… 그.. 래)


태양이 해수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붉어졌다.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핏빛에 가까운 색으로 물들었다. 그토록 붉은 석양은 본 적이 없었다. 선베드에 누워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해변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이 빠진 해변으로 몰려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석양과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찍으려 난리법석들이다. 여기저기서 화보촬영이 한창이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물이 빠진 모래 위를 걸어서 바다쪽으로 향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모래 위에는 층층이 물결무늬가 남겨져 그 사이사이에 고인 바닷물이 석양빛을 비추고 있었다. 마치 안이 완전히 비치 지 않는 불투명 유리에 또 다른 하늘과 태양이 있는 것 같았다. 끝없이 뻗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하늘과 땅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나는 그 사이의 경계를 향해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 경계에 닿았을 즈음이었다. 갑자기 어지러웠다. 머리가 핑핑 돌며 몸을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 동안 어지러움이 계속되며 귀가 멍해지고 들리던 파도 소리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Hello, excuse me”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건드렸다. 고개를 들었다. 그때 또 한 번 놀랐다. 그 남자였다. 석양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얼굴이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남자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 놀람도 잠시 남자의 양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Wow! nice to meet you again, It’s quite surprise, isn’t it?”(와! 반가워요. 우리 구면이죠. 놀랍네요 그렇죠?)

“ah~”


다행히 그제야 멍멍하던 귀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Well… Please look at this. This is you, actually I took a photo over there for this beautiful sunset. But I found you in the photo. Look, It’s so beautiful, isn’t it? So I'll give you this photo if you want” (이거 당신이에요. 제가 저기서 석양을 찍다가 사진 안에 있는 당신을 발견했네요. 사진 이쁘지 않나요? 그래서 그쪽한테 드릴까 해서 원하신다면.)


그는 자신의 핸드폰에 찍힌 사진을 보여 주었다. 석양이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한 여자가 바다와 모래가 맞닿는 경계쯤에 머리를 감싼 채 웅크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때 내가 해변에서 너무 멀리까지 걸어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Frist of all, We’d better go out from here” (우선, 여기서 나가야 할 것 같은데)

“Ah, ok Thank you” (아 네 고마워요)


물 때가 바뀌고 있었다. 어느새 밀물로 변한 바닷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그와 나는 서둘러 육지로 걸어 나왔다.


“嗬! 又是他呀~ What are you doing to her?”(헐~ 또 이 남자네, 그녀에게 뭘 하는 거예욧?)


그때 웬웬이 나타났다. 그녀는 놀란 표정과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나의 보디가드인 양 나의 앞을 막아서며 그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Nothing, I just want to give you this photo to her, do you want? If you don’t, I’ll delete it in my phone.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냥 사진을 주고 싶어서. 받으실래요 아니면 그냥 지워버리게요)

hey Mr. I want it, Please send me. 你别这样啊,他救我了要不然我进水里去了"(네 갖고싶어요 보내주세요. 너 이러지 마 이 남자한테. 이 사람 아녔으면 나 물에 빠질 뻔했어) 

“Ok l’ll send you right now like you did before”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와 나는 이미 공항에서 이메일을 한 번 주고받았다. 그는 내가 보낸 메일에 바로 답신을 했고 그 사진을 첨부해서 보내왔다. 


“Well… now I'll leave” (음 그런 전 가볼게요)


그는 내가 메일을 받은 걸 확인하고는 바로 등을 돌려 멀어져 갔다. 나는 멀어져 가는 그 남자를 한동안 멀뚱히 바라봤다.


“谢谢”(고마워요)


그리고 깜빡 잊은 감사하다는 말을 뒤늦게 하고 있었다.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언어와 들리지도 않는 거리에서.


“呀 这丫头。你我不在的时候又有什么事了?我不允许你随便走来走去了”(야. 계집애 나 화장실 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 자꾸 매니저 허락 없이 막 싸돌아 다닐래?)

“哎呀 你少来呀” (휴~ 적당히 좀 하삼)

“快过来” (빨리 와~)

“去哪?” (어딜?)

“换泳衣” (수영복 갈아입어야지)

“啊~ 又来了”(하아~ 또 시작이네)

“快快 要不然太阳就落海去了”(어서 서둘러야해 다 떨어지기 전에)


웬웬은 석양이 다 떨어지기 전에 수영장 화보를 찍을 모양이었다. 터덜거리며 걸어가는 나의 팔목을 잡아끌며 클럽 안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또 빨강과 파랑의 태극 조합 비키니가 클럽에 등장했다. 비키니가 꽤나 노출이 심하다. 주변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웬웬은 최근에 적잖은 의료기술의 도움으로 적잖은 몸매 보정의 효과를 경험했다. 오늘 그 보정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날이다. 특히 과도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가슴은 내가 봐도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쌍꺼풀 수술의 실패를 그것으로 만회하려 했던 것일까? 뭐 그 덕에 많은 남성들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그곳으로 향하는 것 같긴 하다.


“你看看,这就好看吧。你也得拍这样,明白吗?”(자 봐봐! 잘 나왔지? 이런 각도로 찍어야지 아놔!)

“哦。。。 知道了”(어…. 알겠어…)


자신의 화보를 찍기 위해 나를 데려온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나의 사진 기술이 그녀에 맘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웬웬은 사진을 제법 잘 찍는다. 그녀는 자신의 화보를 찍으려다 결국 나의 화보를 만들어주고 자신은 내가 찍은 리얼 다큐멘터리 사진을 드려다 보며 울상을 짓고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은 이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자신이 가진 재능은 항상 타인을 향하게 되어있다. 그때 비로소 그 재능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타인 없이 스스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자는 없다. 나도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 모두가 타인 때문이었다. 타인이 나에게 고통을 주고 또 기쁨도 주며 그것들이 수시로 강약 중강약의 장단을 타며 희로애락의 스토리를 선사했다. 음악도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우리의 가슴에 감동을 선사하듯이 삶도 이야기도 기쁨과 평안 그리고 고통과 불안을 품고 있어야 한다. 그 안에서 나의 재능이 자란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서 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도 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무궁해진다. 나를 위해 쓰던 글이 타인을 향하게 되는 순간부터 글은 한계가 사라지고 무궁해진다. 글을 쓰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내가 보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 줌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의 가치가 드러나게 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나로부터 시작해 타인을 향하고 또 타인에게 보여주면서 작가가 되었다.


“Excuse me Ladys, May I buy a drinks to you? (저기 숙녀분들, 제가 술 한잔 사도 될까요?)


넓은 가슴에 수북한 털을 가진 잘생긴 수컷 유인원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는 호모사피엔스보다 네안데르탈인에 가까운 신체적 조건을 갖추었다. 그는 손에는 코스모폴리탄 칵테일 두 잔이 들여있다. 우리 테이블 위에는 웬웬의 마시고 남은 코스모폴리탄 칵테일 잔이 보인다. 블루라군의 이미 빛깔이 사라졌다. 그 남자는 분명 우리 둘이 코스모폴리탄을 마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들고 온 칵테일 잔을 우리에게 들이밀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와 교미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느 책에선가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이 호모 사피엔스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들은 우월한 신체적 조건을 맹신했기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우월한 신체적 능력은 결국 뛰어난 지적 능력을 당해낼 수 없는 모양이다. 


“Sorry, I don’t drink this” (미안해요, 전 이걸 마시지 않아요)

“I like it” (제가 좋아해요)
 

내가 잔을 거부하자. 수컷 네안데르탈인이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웬웬이 그가 들고 있는 칵테일 잔 두 개를 냉큼 받아 들어 자신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웬웬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웬웬의 표정이 밝다. 그녀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是否她也是尼安德特人。。。‘ (얘도 네안데르탈인인가…)


그녀는 항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남자를 꿈꿔왔다. 물론 그녀가 좋아하는 디카프리오는 그 옛날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던 그 시절의 그다. 젊음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 결국 발리에서 그 이상형을 만난 모양이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가슴에 털이 없다. 그런데 그녀는 털도 좋아한다. 금상첨화이다. 그녀는 드넓은 가슴 초원을 바라보며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我去卫生间”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Ok啦 “


나는 화장실에 가서 그녀가 입혀준 파란 비키니를 벗고 하얀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 몰래 해변으로 나갔다. 해는 저물고 물 때가 바뀌어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던 바다는 이제 다 타고 남은 숯처럼 시커멓게 일렁이고 있었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지만 등을 돌려 바라본 해변의 클럽에는 화려한 조명들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은 검은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 빛이 강해서 하늘에 별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클럽에서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술에 취해 또 분위기에 취해간다.


나는 해변을 따라 계속 걸어갔다. 클럽에서 멀어질수록 조명 빛이 닿지 않아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자연의 빛은 모든 곳을 비추지만 인공의 빛은 인간들이 원하는 곳만 비춘다. 어둠 속에서 악취가 풍기기 시작했다. 핸드폰 불빛을 켰다. 쓰레기 더미에서 올라오는 냄새였다. 거기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한 노파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그 노파가 나의 핸드폰 불빛을 보더니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나의 옷자락을 잡으며 다른 한 손을 펼쳐서 나에게 구걸을 했다. 그녀의 손에 묻은 더러움이 나의 하얀 옷에 시커먼 자국을 남겼다. 나는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노파는 나를 잠시 동안 쳐다보더니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등을 돌려 쓰레기 더미로 걸어갔다.


“따라라라 라라” 


그때 또다시 바흐의 칸타타가 흘러나왔다. 나의 벨소리였다. 핸드폰 화면을 보니 웬웬이 화상통화를 걸어왔다. 


“hey! 你在哪? “ (야! 너 어디야!?)

“Hey~ Where are you, Sweety? I miss you. Please Come on here. Let’s get party!” (헤이~ 어디예요 스위리? 보고 싶어요~ 빨리 여기로 와. 같이 파티해요~)

“呀,你那里为什么那么黑,到底在哪里呀。快过来! “(야 거기 왜 그리 컴컴해 도대체 어딨는 거야 어서 와! ) 


핸드폰 화면 속에는 웬웬과 그의 털짐승 디카프리오 그리고 또 한 명의 털짐승이 추가되어 있었다. 추가된 털짐승은 언제 나를 봤다고 보고 싶단다. 그들은 칵테일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꽤나 취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 속에 끼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땐 그 노파는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서는 화려한 조명빛과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곳은 어둠과 악취가 존재한다. 나는 다시 그 조명과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雯雯, 我先回去宾馆了你玩的开心吧。我一个小时后让Karan去你那儿接你。当心尼安德特人。 ] (웬웬, 나 피곤해서 그냥 먼저 숙소로 갈게. 놀다 와~ 1시간 뒤에 카렌 보낼 테니까 적당히 놀고 들어오삼. 네안데르탈인 조심하고)


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웬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부유와 빈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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