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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21. 2024

코스모폴리탄과 블루라군처럼

발리에서 생긴 일 ep4

“아아아악 우우우 으으으”

“Are you Ok? Lady?” (괜찮으세요 아가씨?)

“你没事吗?那么痛吗? (너 괜찮아? 그렇게 아파?)

“O..ok, No problem” (오.. 오케 괜찮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에 뿌려진 은은한 라벤더 오일 향과 고요한 선율의 음이 아늑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향과 음이 마음의 평안을 가져온다. 오일을 타고 미끄러지듯 가해지는 손끝의 압력이 나의 온 몸을 자극했다. 그 자극이 다리에서 허리 그리고 어깨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압력이 어깨에 닿았을 때에 참기 힘든 통증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마사는 나의 비명소리에 놀라 나의 상태를 확인했고 마사지에 잠이 들어가던 웬웬도 나의 비명에 깜짝 놀라 나의 안녕을 확인했다.


장시간의 집필이 이어지면서 항상 어깨에 무언가를 얹고 있는 기분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양쪽 어깨엔 곰 두 마리가 앉아있는 듯 했다. 두 편의 장편 드라마가 끝나고 그 어깨 위에 곰들이 비대해진 모양이다. 새끼 곰이 어른 곰이 되고 이제 늙어서 스스로의 근력으로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중력의 힘에 한없이 바닥으로 처진다. 그 커진 질량 만큼 중력은 강해지는 법이다. 강한 중력이 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제 그것들을 나의 어깨에서 내 쫓아야 할 시간이다. 극심한 고통 혹은 고난이 끝나고 나면 다가오는 건 평안 과 기쁨이다. 다른이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당사자가는 분명 평안과 기쁨을 맛본다. 그래서 견디기 힘든 고통 뒤에 찾아오는 죽음을 안식이라 말하는 것인지도.


"기록하여라!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성령이 말하였다. 그렇다. 그들은 괴로운 수고를 그치고 쉬게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 [요한계시록] 14:13 -


나는 가끔 성경을 읽는다. 그런게 그게 현실이 아닌 꿈 속에서이다.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종교도 없고 신앙도 없다. 국가도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국가의 일원인 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 해야한다. 하지만 가끔 헷갈린다. 국민이 먼저인지 국가가 먼저인지.. 뭐 어쨌든 내가 처음으로 꿈 속에서 읽었던 성경은 아니 정확히는 들었다고 해야할 거 같다. 성경책을 펼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글자는 희미했고 보이지 않는 음성이 그 글을 읽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들은 건 기록하라는 구절이었다. 


그 때부터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정말 괴로운 시기에 글을 쓰면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계속 쓰게 되었다.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그 때 당시 나에겐 현실의 고통을 벗어날 무언가가 절실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음성이 꿈 속에서 그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것이 성경 속 구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Lady, let me do the massage gently?"(아가씨 마시지를 살살 해드릴까요?)

"No, just do like this please."(아뇨, 그냥 세게 해주세요)

"아아아악~"


또 다시 고통이 찾아든다. 이건 육체의 고통이다. 지금의 고통을 견뎌야만 한다. 이것이 끝나면 찾아들 평안을 알기에. 고통과 함께 내지르던 비명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그 소리는 신음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폐 깊숙이 묵은 이산화탄소가 신음 소리와 함께 입 밖으로 빠져나간다. 온몸이 이완되고 노곤함이 밀려든다. 이내 그 신음 소리마저 잦아들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평안이 찾아든다.


--------- (드라마 속으로) ----------


두 남녀가 마주친 곳, 즉 둘의 시공간이 완전히 겹친 곳은 새하얀 오페라 하우스와 검고 웅장한 하버 브릿지가 보이는 곳이었다. 


새해를 알리는 폭죽 소리를 시작으로 하늘에는 오색 현란한 불꽃이 수를 놓고 있었다. 그 아래 땅 위에는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 많은 인파가 몰려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었다. 시커먼 하버브리지에서 쏘아 올린 불꽃과 하얀 오페라 하우스에서 쏘아 올린 마지막 불꽃이 검은 하늘에 커다란 하트를 만들었다. 그 때 땅 아래에 있던 인파 속 수 많은 연인들은 그 하트를 올려다 보다가 고개를 내려 서로를 바라봤다.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며 또 새로운 한 해의 사랑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 때 남주와 여주는 찐하게 키스를 하고 있는 두 커플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와 그녀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커플은 남남, 여여 조합의 동성 커플들이었다. 그 키스가 이성이 아닌 동성 간의 것이라서 더욱 더 둘의 시선을 끌었다. 두 동성커플의 키스 장면 사이로 두 남녀의 시선이 부딪쳤다. 둘은 두 동성 커플의 딥 키스에 놀랐고 또 꿈 속에서만 지켜보던 상대를 현실에서 마주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둘은 한 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너무도 많이 보았기에 그 상대의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서로는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인파의 움직임이 반대였다. 두 남녀는 서로 다른 방향의 인파에 휩쓸려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헤어지면 또 다시 언제 어떻게 만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먼저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도 손을 뻗었다. 두 손은 멀어질 뿐이었다.

 

“What is your name?” (이름이 뭐예요?)

“마리~ 아?~ Mary!” (마리 아! 메리예요)

“My name is Thomas!, nice to meet you!.” (내 이름은 토마스예요 반가워요!)

“nice to meet you too” (저도 반가워요!)


남자가 소리를 지르듯 이름을 물었다. 다행히 들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서로는 서로의 이름만 안 채 인파 속에 휩쓸려 점점 멀어져 갔다. 수많은 엇갈림 그리고 그 엇갈림을 서로 꿈 속에서 지켜만 봐야했던 시간이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간절함을 만들었다. 


멀어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만든 눈물이었다.


-------------(현실 속으로 )----------------


“Lady, Lady?!” (아가씨, 아가씨?)

“…”

“Please wake up, all finished.” (일어나세요 마사지가 끝났습니다)

“Ooo…Ok~ thank you” (오 감사합니다)

“Are you Ok?”(괜찮으세요?)

“Yes?!” (네?!)

“You kept crying when you were sleeping.” (당신은 자는 동안 계속 울었어요)


안마사가 몸을 흔들어 나를 깨웠다.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눈물이 시트를 적셨다. 나는 가끔씩 내가 쓴 드라마를 꿈꾸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마치 썼던 극본을 미리 꿈 속에서 재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쓰지 않는 것까지 꾸게 되고 꿈에서 깨어나면 쓰지 않았던 부분을 써내려 갔다. 그렇게 극본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쓰고 꾸고 쓰고 꾸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나의 극본은 내 의지 혹은 의도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 지 전혀 예상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초창기엔 프로듀서와 방송국장과의 회의 때 마다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인물간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엔딩은 어떻게 되는지등등 드라마의 시놉시스, 즉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라고 했지만 나는 전혀 그럴 수 없었다. 보통 드라마 제작은 작가와 연출자 그리고 쩐주의 삼위 일체의 협의와 협력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주는 데로만 만들어야 하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시청률이 계속 올라가고 드라마가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그들과 만날 일은 줄어들었다. 그들은 말없이 나의 극본이 메일로 날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필요한 전달 사항이나 미팅은 내 전 애인이 처리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갑이 되었다. 방송국에 갈 일도 없고 미팅도 없으니 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이름만 알려진 드라마 작가가 되었다. 그것도 본명이 아닌 필명만 떠도는 작가가 되었다. 나는 본명을 따라서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필명을 따라서 비범한 세상 두 곳을 오고 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본명은 부모가 준 것이었지만 필명은 신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모가 원하는 삶과 신이 원하는 삶은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인륜을 저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천륜을 저버릴 수도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필명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더 마음이 쏠린다. 이런 나의 이런 이중적인 삶을 알고 있는 자들은 많지 않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제일 많이 안다.


“’間寫’皇后,下一步就我让您大饱口福了“ (지엔씨에 황후마마, 자! 다음은 제가 당신의 배를 채워드리겠습니다)

“哎呀。你别说我笔名,好不好?” (야! 제발 밖에서 내 필명은 부르지 말아 줄래)

“哈哈,没关系啦。在海外嘛。”(하하, 괜찮아. 해외잖아)


나의 필명은 ‘지엔씨에’(사이에서 쓰다)이다. 언제부터 이 필명을 쓰게 됐는지 정확한 시점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글을 쓰면서 나로부터 시작한 글이 타인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면 항상 두 가지의 다른 세계 사이, 즉 경계에서 서서 양쪽을 드려다 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지엔씨에(사이에서 쓰다)’가 되었다.


“我早就知道你会有下一步准备, 我会很期待哟”(이미 예상하고 있었지, 기대되는데.. )

“那我们吃饭去咯~“ (그럼 먹으러 가볼까나~)


마사지를 받고 나니 어깨에 곰들이 모두 짐을 싸고 떠난 듯 하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몸을 씻고 나오니 허기가 진다. 그걸 모를 웬웬이 아니다. 다음 코스는 혀가 즐거워 지는 시간이었다. 고급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갖가지 해산물로 배를 채웠다. 몸과 혀가 즐거워지는 여행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휴양 아니겠는가. 다음은 뭘까?


“你今天准备得太周到的吧”(너 오늘 너무 철저하게 준비한 거 아냐?)

“你说的太早着呢 哈哈”(아직 그런 말 하긴 일러 하하)

“还有吗?“ (뭐 더 있어?)

“当然啦”(물론이지)

“下一场呢?“(다음은 뭔데?)

“下一场就要玩去咯”(이제 놀아야쥐)


이제 오후의 해가 점점 기울어 가고 있었다. 웬웬이 나를 데려간 곳은 일몰이 유명한 비치클럽이었다. 이미 관광객들의 입소문이 많이 나있는 곳인지 입구부터 사람들과 차들로 붐빈다. 


“I’ll wait outside, no parking place here. when you guys come out, just call me, I’ll be back in 10 min” (전 밖에서 기다릴께요. 여긴 주차할 곳이 없어요. 나오실 때 연락주세요. 그럼 10분안에 돌아올께요)


우리의 가이드 카렉이 클럽의 입구까지 태워다 주었다. 웬웬이 멋진 드레스 코드를 준비했다. 웬웬의 성화에 이동하는 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함께 입고 사진을 찍어야 한단다. 하아~ 피곤하다. 이런 건 좀 귀찮다. 또 빨강과 파랑의 조합이다. 이년은 나랑 태극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자기는 빨강 드레스이고 나는 파랑 드레스이다. 


“还有这个 嘻嘻” (그리고 이거 히히)


갈수록 가관이다. 수영복까지 준비했다. 수영복까지 빨강과 파랑의 비키니이다. 그 클럽 안에 수영장이 있단다. 나는 내 것을 입고 싶다. 그런데 호텔 방에 두고 왔다. 망했다. 클럽 안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미 앉을 수 있는 곳은 모두 다 만석이다. 


“Please follow me”(절 따라오세요)


클럽 직원이 우리를 안내했다. 클럽의 가운데 푹신한 선배드 두 자리가 비어있고 테이블에는 [Reserved]이라는 펫말이 놓여 있다. 웬웬이 준비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썬배드 앞 테이블에는 방금 나온 듯한 칵테일이 놓여있었다. 황당하다. 칵테일도 빨강과 파랑의 조합이다. ‘코스모폴리탄’과 ‘블루라군’의 조합이다. 모두 보드카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원료는 같지만 맛과 색이 다르다. 


나와 웬웬도 같은 종의 인간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색과 맛을 가진 존재이다. 신은 똑같이 티끌을 모아서 인간을 만들었지만 모두가 각자 서로 다른 삶과 소명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대부분 비슷한 삶과 비슷한 운명처럼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건 아마 신이 넣어준 삶과 소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나온 똑같은 술만 마시며 똑같은 푸념을 일상처럼 늘어놓으며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부모가 원하는 학교와 직장을 얻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만들고 아이를 키우며 그렇게 살다가 자녀들이 떠난 노년이 되면 동반자와 여행이나 다니며 여유로운 여생을 보내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꿈꿨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이란 모두가 꿈꾸는 삶이었다. 모두가 그것이 평범한 삶이라 생각한다.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평범해지지 않는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며 발에 땀나게 열심히들 살아가는데도 삶이 고달프다고 볼멘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비슷한 삶으로 가득 찬 세상, 내가 신이라면 이걸 지켜보는 것만큼 지겨운 게 따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같은 원료로 우리를 만들었지만 각자 다른 부재료를 섞고 흔들어 생명을 불어넣었으리라. 그리고 각자가 현실이라는 감옥 속에서 주어진 각자의 색깔을 찾아가는 미션을 준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오묘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코스모폴리탄’과 ‘블루라군’처럼...


코스모폴리탄 & 블루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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