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Mar 14. 2024

뱅크런

발리에서 생긴 일 ep 3

“3.1415926535 8979323846………” 

(미도파도솔레레라솔미솔도레시레…)


오늘도 핸드폰의 알람은 어김없이 울렸다. 나의 모닝 알람은 파이송이다. 잔잔한 협화음으로 시작해 웅장한 불협화음으로 이어질 쯤이면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며 잠에서 빠져나온다. 깜빡했다. 알람을 지우는 것을. 여행까지 와서 일상의 루틴을 가져가고 싶지 않다. 어둠 속에서 소리를 따라 손으로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찾는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습관이 무섭다. 새벽 4시. 여기 발리는 시차가 없으니 나의 생체리듬도 똑같은 시간이다. 루틴이 무섭다.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 들지 않는다. 슬며시 눈을 떴다.


咳”(헉!)


내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시커먼 털로 덮인 물체와 그 털들 사이로 하얀 바둑알 같은 눈알이 보였다.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보니 풀어헤쳐진 시커먼 머리털이 웬웬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정말 귀신인 줄 알았다. 웬웬은 과도한 쌍꺼풀 수술의 부작용 때문인지. 수술 이후로 이렇게 눈을 뜨고 잔다. 이것 때문인지 전에 사귀던 남자랑 처음 잠자리를 가진 다음날 바로 남자가 도망을 가버렸다.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쨌든 그녀 때문에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다시 봐도 섬뜩하다. 전날 밤 내가 먼저 잠들어 버리고 그 아쉬움을 혼자서 달랜 모양이다. 거실에는 먹다 남은 룸 서비스 음식들과 샴페인 한 병과 와인 한 병이 거의 다 비워져 있었고 대형 TV에는 넷플릭스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또 내가 처음으로 극본을 썼던 드라마를 본 모양이다. 밤새 술과 드라마에 취했나 보다.


커튼을 열어젖혔다. 어둠 속에 덮인 고요한 발리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앉아 잠시 새벽의 적막 속에 창 밖을 응시한다. 이런 분위기에선 상념에 젖어들기 좋다. 노트북을 가져와 그것들을 써내려 간다. 결국 여행까지 와서 또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이지만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습관이 어느 순간 직업이 되었다. 누구나 꿈꾸는 덕업일치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 적는 글은 일은 아니다. 이건 일기에 가깝다. 그냥 어제 있었던 일을 나의 감상과 함께 적어 내려갔다. 일기는 과거의 기억에 현재의 감상을 집어넣는 것이다. 그럼 새로운 기억이 탄생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상상이 스며들지 않는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일기도 쓰고 쓰다 보면 어느새 사실과는 멀어져 가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 동안 글을 썼을까? 잠시 노트북의 워드 화면에 써내려 가던 커서가 멈춰서 껌뻑거리고 있다. 글이 멈췄다. 고개를 들어 화면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다의 수평선 위로 노란빛이 감돌고 있었다. 노란빛은 점점 파란 하늘을 드러내며 어둠 속에 가려졌던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빛은 세상의 모든 선들을 드러낸다. 빛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으면 나눌 수도 없다. 빛이 생겨나면서 어둠도 함께 생겨났다. 빛이 없었을 때는 어둠은 존재하지 않았다. 빛이 생겨남에 어둠도 생겼다. 빛과 어둠은 동시에 생겨난 것이다.


“빠빠라빠빠빠 빠라빠라바~~” (군대 기상나팔 소리)


그때 시끄러운 기상나팔 소리가 침실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뒤 소리가 멈췄다. 웬웬의 알람소리다. 군대도 가지 않은 그녀는 왜 군대에서나 들을 수 있는 기상나팔 소리를 알람으로 설정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군대를 가보지 않은 그녀도 기상나팔 소리만큼은 잠을 번쩍 깨우는 고통스러운 음악인가 보다. 그렇게 달콤한 꿈나라는 나팔소리와 함께 깨어지고 고통의 현실 속에 눈을 뜬다. 세상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이런 나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어느 날 나팔 불고 나타나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호텔 밖으로 나왔다. 바닷물이 빠진 바다는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슬리퍼를 손에 들고 그 속살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갔다. 한낮에 데워진 바닷물은 아직도 온기를 품고 있어서일까 그렇게 차갑진 않았다. 오히려 이른 아침 공기가 더 서늘하다. 밤새 식어버린 땅 위의 공기가 바다로 불어나간다. 바다 바람을 쐬는 것이 아니라 육지의 바람을 쐬고 있다. 나의 머리카락이 바다를 향해 나부낀다. 정신없이 나부끼는 머릿결 사이로 멀리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이라 모습은 보이지 않고 검은 실루엣만 보였다. 그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핸드폰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었다.


흩날리는 머리를 묶으며 나도 모르게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 남자는 바다땅의 경계, 즉 썰물이 닿는 해변의 경계 사이를 해안선을 따라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발걸음을 재촉해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그의 입에는 기다란 피리 같은 것이 물려 있는 듯 보였다. 거기서는 분명 희미하지만 음률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 소리에 덮여 그 음률을 잘 들을 수가 없었다. 그 소리를 듣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던 찰나였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바흐의 칸타타)


그때 바흐의 [칸타타]가 울려 퍼졌다. 나의 핸드폰 벨소리였다. 그때 앞에 있던 남자가 나의 벨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왠지 모르지만 그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


“喂?!”(여보세요?)

“霈云,你在哪里?” (페이윈~ 너 어디야?)

“我在外面呢” (나 지금 밖인데)

“在外面干什么呢?”(뭐 해 밖에서?)

“我在沙滩上散步呢”(바닷가 산책 중이야)

“你快进来啊”(빨리 들어와~)

“为什么?”(왜?)

“我早上都订好了水疗按摩,快过来” (아침에 스파 예약해 놨단 말이야 빨리 들어와!)

“我知道了我挂了“(아.. 알았어 갈게 끊어)


전화를 끊고 다시 몸을 돌렸을 때, 그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을 둘러봤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호텔로 돌아왔다. 해는 밝아 이제 땅에서 열기가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호텔 입구에 웬웬이 서있다. 그 옆에는 어제 봤던 여행가이드 ‘카렉’이 호텔 앞에 차를 대기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快过来啊,你到底哪里走来走去呀,迟了,快上去" (어서 와~ 혼자서 어딜 그리 쏘다니냐? 빨리 타! 늦었어)

“哎呀,我还没洗了呢" (야~ 나 아직 씻지도 않았어)

“我们去按摩和洗浴去了呢, 去那儿洗吧" (스파 갈 건데, 거기 가서 씻어)

真是的" (아~놔!)


웬웬은 이미 나의 소지품들을 빠짐없이 챙겨 나왔다. 그녀는 철저한 계획형이다. 내 가방을 열어보니 내가 항상 외출할 때 챙기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녀는 현실의 나를 너무 잘 안다. 이럴 땐 이 년이 무서울 정도로 고맙다. 웬웬은 현실의 나의 허술함을 모두 채워주고 있다. 사실 이 자리는 원래 웬웬이 아닌 나의 전 애인, 아니 정확히는 나의 전 약혼자의 자리였다. 뭐 지금은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었지만…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의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았다. 현실의 너무 많은 것을 그에게 의존한 결과였다. 그는 나의 연인이었고 동시에 나의 매니저였다. 그리고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든 상상이었을 뿐이었다. 상상 속에서만 살더니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살았다. 나는 현실의 그를 상상 속의 그와 착각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상상 속의 그와는 완전히 다른 현실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나의 두 번째 작품의 극본 퇴고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나는 현실에서 그와 사랑을 나누며 그 사랑을 상상 속에서 또 다른 현실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한 편의 판타지 멜로드라마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쓴 창조주인 동시에 그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글을 써내려 갔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모두 가지려 했다. 욕심이었다. 신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은 단 한 가지만 허락된다는 것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분명 그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 즉 나의 시점, 나의 현실은 해피에서 새드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드마라의 엔딩을 새드로 바꾸어 버렸다. 프로듀서와 방송국장의 우려에도 개의치 않았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시청자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반전 새드를 집어넣었다. 반응은 실로 엄청났다. 그런 반전을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 반전이 시청률을 떡상시켰다. 그렇게 나의 비참한 현실은 화제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화제의 극작가가 되었다.


나의 약혼남은 내가 아닌 현실의 그 여자 배우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현실과 상상은 하나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현실과 상상은 완전히 분리되었고 나와 그도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가 상상의 세계에 머무는 동안 많은 현실의 일들을 도모했던 모양이다. 첫 번째 극본으로 이름을 알리고 두 번째였던 그 작품이 대박이 터지면서 적잖은 로열티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와 헤어짐 이후 내게 돌아온 건 별로 없더라. 알고 보니 나와 그와의 계약관계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는 내가 고용한 매니저였지만 나보다 더 많은 돈을 챙겨가고 있었다. 나는 온전히 그를 신뢰했고 미래를 함께 했기에 그에게 모든 것을 내맡겼다. 그는 나의 은행이었다.  은행은 고객의 돈을 맡기고 보관하는 곳이지만 사실 은행이 돈을 자기 것처럼 쓴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신뢰와 신용을 내세우며 고객을 신처럼 받들지만 그 뒤에 가려진 그들의 모습은 탐욕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도 은행처럼 겉으론 나를 소중한 고객처럼 대하며 나의 돈을 마음껏 융통했던 모양이다.


“我们分手吧“(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什么? 你收什么意思“(뭐?! 그게 무슨 말이야?)

“你活在想象里我活在现实怎么能一起过一辈子呢?“(넌 상상 속에서만 살고 나는 현실 속에만 사는데 어떻게 함께 사니?)


조촐한 둘 만의 약혼식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가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충격이 너무 컸을까? 한 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의 홍채는 멈추었고 라이브 영상이 멈추고 정지 화면이 이어졌다. 그 정지 화면에 그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그는 나와 시선을 피하고 자신이 피해자인 양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뱅크런(bank run)이 쉽지 않았던 것일까? 약혼이 한 번 미뤄지고 나서야 이뤄진 약혼이었다. 아마 현실의 여배우와 현실의 조율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 나는 대부분의 시간 칩거하며 극본 작업에 빠져있었다. 그즈음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의 열애 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상대는 일반인으로 알려졌고 그 일반인이 나의 약혼자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 통장의 잔고가 거의 다 빠져나갔을 즈음 그는 이별을 통보했다. 그는 현실에서 살기 위해 그 많은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서 도망쳤다.


뱅크 런이었다.


이전 02화 아이 같은 남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