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2019시즌 데이터 리뷰
2016시즌을 기점으로 K리그는 매년 테크니컬 리포트를 발간하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K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기존의 단편적인 지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K리그 시즌을 되돌아보는 것이 테크니컬 리포트의 취지라고 한다.
2019시즌 K리그는 웨어러블장비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더 다양한 데이터(선수 스피드, 뛴 거리 등)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해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19시즌 K리그는 ‘역대급'이라고 불릴 만큼 시즌 막바지까지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전북과 울산의 우승 경쟁뿐만 아니라 서울, 포항, 대구, 강원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다툼. 그리고 인천, 경남, 제주의 강등권 경쟁까지. 아주 흥미진진했던 K리그에 화두가 되었던 두 가지 주제를 뽑아 2019시즌 K리그 테크니컬 리포트를 통해 소개해보겠다.
(해당 글에서 사용될 모든 데이터와 이미지의 출처는 2019 K리그 테크니컬 리포트입니다.)
강원FC의 김병수 감독은 선수 시절 ‘천재’라고 불릴 만큼 촉망받던 유망주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일찍 접어 ‘비운의 천재'라고 불리었다. 다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것은 영남대 감독 시절부터이다. 당시 김병수 감독은 전술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이명주, 김승대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배출해내면서 아마추어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혔다. 이어 K리그2의 서울 이랜드 FC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한 한 시즌을 보내고 사임했다. 이후 2018시즌 하반기에 강원에 부임하여 팀에 ‘병수볼' 철학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다음 해인 2019시즌, 강원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상위 스플릿 잔류, 그리고 역대 최고 기록인 5위로 시즌을 마감하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김병수 감독에게는 ‘병수볼' 철학이 프로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한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짧은 패스 중심의 점유율 축구
“이론적으로 우리가 볼을 가지면 수비를 할 필요가 없다. 주도권을 갖기 때문이다. 수비진에서 볼을 소유하는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이뤄지니까 그 다음에는 볼을 갖고 공격적으로 나서는 게 가능해졌다.” - 김병수 감독
김병수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병수볼' 철학의 중심은 ‘점유율'이다.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 경기의 주도권을 갖고 수비를 위한 체력 소모를 줄여 공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실제로 2019시즌 강원은 K리그1에서 제일 높은 점유율(58%)을 기록했다. 2위인 전북(55%)과 비교해도 차이가 있고 3위인 상주(51%)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병수볼'의 철학이 데이터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축구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제일 효과적인 방법은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원은 K리그1에서 제일 많은 패스(572회)를 시도했고 패스 성공률 또한 81%로 제일 높았다. 572회 중 단거리 패스(139), 중거리 패스(401) 시도 또한 리그 최다였다.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낮은 장거리 패스(33) 시도 횟수는 리그 평균보다 적었던 부분과 평균 패스 길이가 18.2m로 리그에서 제일 짧은 것을 보면 강원이 성공률 높은 짧은 패스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면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병수볼'의 믿을맨, 한국영
김병수 감독이 2019시즌 제일 의지했던 선수는 한국영이 아닐듯싶다. 한국영은 한때 ‘기성용의 파트너’로 주목받으며 국가대표의 선발 미드필더 자원이었으며 2014년 월드컵에도 출전했었다. 해외에서 K리그로 들어온 후에 부상으로 많은 고생을 했지만 2019시즌에는 강원의 MVP라고 할 수 있을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영은 강원의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병수볼’의 점유율과 패스 축구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2019시즌 K리그 최다 패스 시도(2,822회)를 기록했고 패스 성공률 또한 압도적인 92%로 이는 패스 시도 상위 20위 중 1위에 해당하는 성공률이다. 앞서 얘기한 패스 중심의 축구를 구사하는 강원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태클과 프리볼 잡기* 모두 점유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표다. 점유율을 높이는 경기 운영에서는 팀이 공을 소유하는 것만큼 상대 팀이 공을 가졌을 때 소유권을 되찾아 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소유권을 되찾아오는 시도를 제일 잘 나타내는 지표가 바로 태클과 프리볼 잡기이며 자연스럽게 수비형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평가할 때 사용되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영은 태클(시도 3위, 성공 횟수 3위)과 프리볼 잡기(시도 1위, 성공 횟수 1위) 두 부문 모두 리그 상위권이었다. 패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병수볼'의 핵심으로 활약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017 테크니컬 리포트에서 ‘프리볼 잡기’를 “상대팀 진영에서 공 터치 실패 혹은 상대팀의 부정확한 패스로 경합 없이 공을 다시 잡은 횟수”로 정의한다. 아마 Opta에서 정의하는 'Recovery'와 같은 개념인 듯하다.
**소유권을 되찾아 오는 것과 관련된 지표로 ‘인터셉트’와 ‘볼 되찾음’도 있다. 다만, 이들은 통상적으로 중앙 수비수의 기록이 좋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 제외했다. 참고로 강원 FC 내에서는 한국영이 '볼 되찾음' 2위를 기록했다.
비록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탈락과 다음 시즌 아챔 티켓을 따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대구FC는 2019시즌 K리그의 화제의 팀이었다. 새로 지은 축구전용구장 ‘대팍’(DGB대구은행파크)은 무려 9번이나 매진을 기록했고 다양한 마케팅 시도에 새로운 마스코트 ‘리카' 마저 대박이 나면서 K리그 흥행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 대구의 ‘아이돌'들과 더불어 K리그 최고의 용병 세징야가 존재했다. 2019시즌 개인 커리어 시즌을 보낸 세징야는 2019시즌 MVP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플레이메이커' 세징야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한 세징야는 2019시즌 울산의 김보경과 함께 리그를 대표하는 ‘플레이메이커'였다. 플레이메이커를 평가하는데 제일 흔하게 사용되는 도움 기록만 봐도 10개로 전북의 문선민과 함께 리그 최다 도움을 기록했다.
도움 외에도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적인 평가지표로는 이전 글에서도 소개했던 키패스(Key pass)가 있다. 슈팅 직전의 패스를 뜻하는 키패스는 얼마나 질 좋은 패스로 득점과 가까운 찬스를 만들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이다. 이 부분에서 세징야는 압도적이었다. 키패스 시도는 총 100개로 2위인 김보경보다 무려 22개나 많았으며 성공 횟수(62개)와 성공률(62%)까지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득점이 제일 많이 이뤄지는 페널티 박스 안으로 성공되는 패스는 자연스럽게 득점 기회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 수비가 밀집돼 있는 공간이며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패스를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세징야는 ‘페널티 박스 안으로 패스' 부문에서도 시도 횟수(297회)와 성공 횟수(159회) 모두 리그 1위에 해당하는 수치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는 것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재다능' 세징야
세징야가 정말 대단한 이유는 그의 활약과 기록이 비단 일반적인 플레이메이커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시스트, 키패스 등 플레이메이커를 평가하는 지표 외의 기록도 리그 수준급이다. 득점은 15골로 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골을 넣었고 10도움과 함께 총 25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9시즌 K리그 최다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자연스럽게 득점 공헌도(72%) 또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단순히 공격포인트 외에도 세징야는 슈팅 시도(170개)와 유효슈팅(82개) 기록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또한, 드리블 시도(248회, 성공률 60%)와 경기장 피파울 (3.5개) 부문에서도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슈팅과 패스 외에도 세징야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구의 대표 세트피스 키커로 나서 상대편 페널티 박스로 보내는 코너킥/프리킥 시도 부문에서는 서울의 박주영에 이어 2위(164회)를 기록했으며 성공률은 57%로 상위 10명 중 1위였다.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이지만 플레이메이킹 외에도 득점, 슈팅, 드리블, 뛰어난 킥력 등 공격의 모든 부분에서 리그 탑 수준을 보여준 세징야는 전천후 공격 자원으로 분류할 수 있는 뛰어난 선수이다.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거액의 제안이 있었을 테지만 K리그에 남기로 한 결정에 대해 K리그의 한 팬으로서 고맙고 내년에는 또 얼마나 대단한 공격력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드는 선수이다. 세징야는 대구뿐만 아니라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우리는 이미 Big Data의 시대에 살고 있고 스포츠 업계에서도 여느 때보다 더 활발하게 데이터 분석 및 활용에 투자하고 있다. 이미 리그, 언론, 팬들이 다양한 데이터에서 대해 얘기하고 논의할 창구가 많은 해외에 비해 국내 스포츠 업계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런 시점에서 K리그의 테크니컬 리포트 발간은 국내 축구 업계뿐만 아니라 스포츠 업계에도 아주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이런 K리그의 노력이 국내 스포츠 업계를 한 층 더 발전시키고 스포츠 팬들도 한 층 더 성장할 기회가 되길 바란다.
(배경 사진 출처: 대구FC 페이스북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