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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Nov 23. 2020

같이 기억하고 싶은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줄리와 에밀>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에 대해



애니메이션은 누군가의 시선으로 재창조된 세계를 마주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장르이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공기 한 줌마저 감독의 시선이 닿아있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재현할 것인지 정해진 방법이 없으며 실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연출적인 한계에 덜 부딪힌다.

감독은 작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자유로운 창조주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영화는 감독의 감성과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사적인 시선으로 구성된 세계를 유영하는 것은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현실과 마주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단편 애니메이션은 짧은 시간 내 감독의 감각만으로 평생 가슴속에 남을 어떤 순간을 남긴다.


최근 폐막한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BIAF2020에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상업 영화에 비해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 적어 쉽게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 작품들이 내게 남긴 흔적을 기억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두 작품을 소개한다.









1. 줄리라는 이름의 모두에게, <줄리와 에밀>



<줄리와 에밀>(Precious, 폴 마스 감독, 프랑스, 2020, 14')


줄리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지만 친해지기가 어려워 대부분 혼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자폐를 앓고 있는 에밀이 전학을 와 줄리의 짝꿍이 된다. 자폐 증상을 처음 보는 줄리는 에밀을 낯설어 하지만, 에밀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며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곤 곧 친해지게 된다.


수영 수업이 있던 날, 사건이 발생한다.


수영복을 집에 두고 와 아무것도 입지 않고 울고 있는 에밀을 달래주던 줄리를 선생님이 발견한 것이다. 학교에 부모님이 찾아오고 선생님은 줄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줄리는 아이들의 시선, 부모님의 걱정, 선생님의 염려에 눈치를 살핀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싫었다고 말한다.


줄리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서 따돌림당하는 아이를 발견한다. 아이는 펑펑 울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줄리도 고개를 돌린다.  





<줄리와 에밀>은 폴 마스 감독의 관조적인 시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감독이 취하고 있는 시선은 그저 담담하고 평평할 뿐이다. 그렇기에 줄리와 에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극한 현실로 다가온다.


줄리는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아이들의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서 에밀과 함께 했던 시간을 져버린다. 에밀과 같이 그림을 그리고 곤충을 잡던 기억은 잊혀지고 에밀이 선물해주었던 목도리는 짓밟힌다. 언젠가는 소중한 추억이었으나 곧 외면할 기억으로 덧씌워진다. 또 다른 에밀을 보아도 줄리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릴 뿐이다.


특별한 에밀을 배척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어른들이 자폐아인 에밀이 줄리에게 무슨 짓을 했을 것이라 염려하는 눈빛처럼 날이 서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자폐아 에밀에 대한 시선과 더불어 아이들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따돌림, 지친 에밀의 엄마, 아이의 감정까지 신경 쓰지 않는 줄리의 부모님까지. 14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줄리와 에밀은 유일하게 자신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줄리의 얼굴은 이제 그들과 같아질지도 모른다. 우리의 얼굴은 어떨까? 우리는 줄리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감독의 가만한 시선과 그렇게 눈이 마주치는 것 같았다.


  




2. 네가 어디에 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윌 맥코맥, 마이클 고비에 감독, 미국, 2020, 12'40")

   


서먹해 보이는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서로 어떤 말을 꺼내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등을 돌린 부부는 각자의 공간에서 파란 흔적을 발견한다. 집 벽이 축구공에 맞아 깨진 흔적, 세탁기에 남아있는 작은 티셔츠 한 장. 그 흔적이 가슴에 사무친다. 불현듯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다다른 곳은 작은 아이의 방이다.


시점은 과거로 돌아간다. 여느 때처럼 명랑한 모습으로 등교를 한 아이는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는다.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남긴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각자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부모님을 본 아이의 영혼이 그들을 찾아온다. 자신이 어디에 있어도 가족과 함께 하고 있다며 꼭 끌어안는다. 그 온기를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아이가 듣던 노래와 아이의 추억이 담긴 티셔츠를 끌어안고 부부는 눈물을 흘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는 사랑스러웠던 아이를 총기난사 사건으로 잃은 부모가 겪는 아픔을 그린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대규모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지만, 총기 소유가 합법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규제가 쉽지 않다고 한다. 감독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남겨진 가족과 다정한 아이의 사랑을 통해 그려낸다. 유독 이 작품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았던 것은 그 사랑이 너무 크고 다정하지만 아이의 죽음을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If anything happens i love you. "는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하는 말이자,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가 어디에 있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영원히 기억하고 사랑한다는 마음. 더불어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감독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잔인함과 충격 때문에 그 속에 있는 개개인의 죽음의 아픔은 뒤로 잊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전부가 무너지고 평생 텅 빈 흔적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담백한 선 드로잉 속에서 아이의 흔적들을 파란색으로 물들이는 연출은, 보는 관객의 마음에 그 사랑의 푸르름이 묻어날 수 있게 했다. 비록 곁에 없지만 영원히 함께할 아이의 영혼을 그림자로 표현해 손을 잡을 수 있게 그려낸 것도 이 작품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이 그리고 있는 주제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세상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은연중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 자칫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심장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 현실을 다시 바라보는 사이, 나와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지. 그런 고민을 했던 순간을 에밀과 줄리의 얼굴과 아이의 푸름을 통해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다시 만나보기 어렵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사랑해>의 경우, 넷플릭스가 제작을 지원했기 때문에 곧 만나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좋은 기회로 이 작품들을 다시 만날 날들을 기다려본다.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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