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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독가의 서재 Mar 27. 2023

마르쿠스 씨 이야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고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중략)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 특별함이 하나 둘 모이면 평범함이 되고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요즘 즐겨 듣는 노래 허회경의 ‘김철수 씨 이야기’ 가사 일부다. 제목 때문에 소설로 오해할 뻔한 노래인데 노랫말 속 김철수 씨나 내 인생이 별반 다를 게 없어 왠지 슬픈 듯 묘하게 가슴에 남으며 위로가 되었다. 결국은 나의 즐겨찾기 목록에 꿰차고 앉아 돌려 듣기를 끊임없이 하게 된 곡이다.

      

희한하게도 명상록을 읽는데 계속 ‘김철수 씨 이야기’의 가사가 겹쳐졌다. 감히 말이다. 명상록은 인류의 황금시대라 불리는 로마제국시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철학일기다. 생애 말기 게르만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원정을 간 10여 년 동안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매일 자기 자신의 내면과 삶을 살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때론 꾸짖듯 써 내려간 메모가 17세기에 와서 명상록으로 불리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황제라는 직위만으로도 이미 무게가 남다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는데 명상록을 읽을수록 그의 비범함이 평범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간, 공간, 뭐 하나 가깝지 않은 누군가의 일기 속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혹은 나일지도 모르는 김철수 씨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는 글귀에서 짠해지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2권의 첫 문장에서 나는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긍정확언이라 해서 새벽기상과 함께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좋은 문장들을 쓰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열풍이다. 한때 새벽기상과 함께 긍정확언을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우울감이나 에너지가 필요할 때는 긍정확언문을 쓰며 힘을 얻곤 한다. 그런데 약 1900년 전에도 했었다니! 이뿐이 아니다.      


날이 밝았는데도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을 때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다나는 그 일을 위해 태어났고그 일을 위해 세상에 왔는데그런데도 여전히 불평하고 못마땅해하는 것인가나는 침상에서 이불을 덮어쓰고서 따뜻한 온기를 즐기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명상록 제5문예출판사, 88>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건 같다는 걸 보여주는 문장에서는 결국 황제님은 나에게 마르쿠스 씨가 되어 버렸다. 나와 같은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니 그가 있는 자리가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흐트러지기 쉬운 상황, 매일 자신을 채찍 하며 스스로를 세워나가기 위해 틈틈이 일기를 쓰는 모습이 그려진다. 얼마나 많이 목숨이 위험한 순간들을 맞이했을 것이며 반대로 얼마나 많은 타인의 죽음을 목도했을 것이며 가끔은 황제인 자신의 자리를 생각하며 편안한 자신의 집을 그리워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것도 사치가 된 상황에 화가 날 것이며, 자신에게 쏟아지던 찬사가 때로는 질타와 질시로 바뀌는 숱한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민낯을 보며 배신감을 느껴야 했을까.      


다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을 물리치고 스스로 서라. <명상록 제3문예출판사, 59>

아직 시간이 허락되는 동안에 다른 모든 헛된 희망들은 다 내던져 버리고서오직 그 목표를 완성하는 데 온 힘을 다 쏟아서 너 자신을 구해내라. <명상록 제3문예출판사, 64>

인간이 악하다고 불만을 품는 일을 멈춰라. <명상록 제4문예출판사, 69>

진정한 행운은 너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명상록 제5문예출판사, 107>

너 자신으로 물러나서 침잠하라너의 내면을 파라,  <명상록 제7문예출판사, 137, 145


 그냥 평범한 인간일 수 밭에 없던 마르쿠스 씨가 황제의 무게를 지기 위해 노력했는지 요즘말로 짠내 나는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그는 철학을 붙들어 자신의 내면을 살펴 삶의 목적을 찾고,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결단력 있게,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며 현재를 살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철수 씨의 이야기’ 후렴구처럼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가 귓가를 맴돌지만 마냥 슬프거나 짠한 슬픔이 아니다. 마르쿠스 씨는 우주의 본성을 이해하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흐름에 맡기되 적어도 자신의 삶은 최선의 선택지로 채워나가야 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마르쿠스 씨는 김철수 씨와 달리 평범함은 특별함이 되어 닮고 싶어지는 삶의 태도를 남긴다.      


너는 5막이 아니라 3막 만을 마쳤을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맞는 말이다하지만 연극과는 달리 3막만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명상록 제12문예출판사, 242> 




김철수 씨 이야기 _노래 허회경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내 기쁨은 늘 질투가 되고

슬픔은 항상 약점이 돼

사실 너도 다를 게 없더라고

생각해 보면 난 친구보다

떠돌이 강아지를 더 사랑해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

특별함이 하나 둘 모이면

평범함이 되고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내 사랑은 늘 재앙이 되고

재앙은 항상 사랑이 돼

널 사랑할 용기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

겁쟁이는 작은 행복마저

두려운 법이라고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입꼬리를 올릴 때 찾아온단다.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

내방의 벽은 늘 젖어있어서 기댈 수 없고

나의 이웃은 그저 운 좋은 멍청이들뿐이야

나의 바다는 사막으로 변해가기만 하고

나는 앞으로 걸어가도 뒤로 넘어지네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

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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