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내 책 읽은 지 5년,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온 지인들은 “무슨 책이 이렇게나 많냐”며 깜짝 놀라곤 한다. 서재 앞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연이어 두 번째 질문을 한다. "엄마가 책을 많이 읽으면 아이도 책을 많이 읽나요?" 집에서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아이도 저절로 책을 읽는지 궁금한 것이다. 많은 육아서에서 공통적으로 외치는 말이 있다.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어라. 나도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책을 따라 읽는지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듯했다. 잠들기 전 독서등을 켜두고 그림책을 몇 권 읽고 자기는 했지만 스스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순 없었다.
나도 한때는 책육아를 꿈꿨다. 아이도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도서관도 많이 데리고 다녔고 책을 많이 사기도 했지만 "꾸준히" 책을 들이미는 엄마는 되지 못했다. 나는 아이책보다 내 책이 먼저인 엄마였다.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거대한 북카트를 끌고 다니며 수십 권의 그림책을 빌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북카트가 아니라 에코백에 내 책과 애책을 모두 담아갈 정도의 책만 빌리는 평범한 엄마이자, 1층 어린이 자료실보다 2층 일반 자료실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긴, 그냥 책을 좋아하는 엄마였다. 정말 열심히 내 책을 읽어댔다. 집안 곳곳에 책들을 쌓아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애가 잠들고 나서 틈틈이 읽었다. 아이에게 책을 갖다 바치는 엄마는 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이 곁에서 책을 많이 보는 엄마가 된 것이다.
"엄마 지금 읽는 책 제목 진짜 웃기다"
식탁에서 시리얼을 먹던 아이가 문득 낄낄거리며 물었다. "엄마 지금 읽고 있는 책 제목 진짜 웃기다" 식탁 한편에 쌓아둔 내 책들 중 제목 하나가 웃기다는 거였다. 아이가 책을 유심히 살펴본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후로도 "엄마, 라틴어가 뭐야?" "네 이웃의 식탁은 무슨 식탁일까?" "타이탄은 사람 이름일까? 누가 지었을까?" "제일 처음 한글을 만들게 된 건 어떤 이유일까?" 라며 시시때때로 내가 읽는 책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아이의 질문은 나에게 곧 '답'이 되어주었다. 집에 언제나 책이 있는 것, 책을 읽는 사람을 매일 마주한다는 것,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든 책이라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도 알 수 없는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책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하는 친구로 인식한다는 걸 알게 된 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아이에게 집중적으로 책과 친해지도록 유도하지 못했다는 사실(예를 들면, 책육아를 하는 엄마들처럼)이 괴로웠는데, 나는 내 방식대로 아이에게 책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었던 거다.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 엄마가 행복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노출을 했을 뿐인데 아이가 저절로 책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나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엄마책 제목만 보고도 궁금한 게 피어오르던 아이는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성장했다. 유아기에는 엄마가 읽어줘야만 책을 읽었다면, 초등학생이 되고 나니 "아, 지금 재밌는 책 읽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기 전에는 저학년용 문고판 책 한 권을 뚝딱 읽고 나서 이야기를 요약해서 엄마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세상에는 재미난 것도 많고, 신나는 일들도 많고, 개구쟁이 친구들도 많다는 사실을, 때로 슬프고 괴로운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이가 책과 친해진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을까. 책을 통해 문해력을 향상시키고 결국엔 수능과 같은 시험을 잘 보게 하기 위해서일까? 나도 결국엔 입시 대비를 해야 한다며 아이가 스스로 책 읽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학부모가 된 걸까? 여전히 해맑고 순수한 아이를 오래 들여다보며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책 제목만 보고도 피어올랐던 궁금증은 곧 생각으로 이어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된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스스로 생각해보기' 다양한 독서로 인해 다양한 생각을 할 기회를 얻는다.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책의 재미를 알았는데, 내 아이는 그보다 일찍 그 세계로 입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가르침이다.
아이의 인생에 있어 책이라는 존재가 '바람'과 '파도'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따뜻한 바람'의 힘에 의해 방향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부드러운 파도'로 인해 멋진 항해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책만 읽는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결되지 않듯이 '바람과 파도'는 직접적인 안내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 외롭고 지쳤을 때, 커다란 이벤트를 앞두고 심란할 때, 내 아이에게 따뜻한 바람 부드러운 파도 같은 존재가 곁에 있어준다면 좋겠다. 부디, 책으로 위로와 공감을 얻고, 단단한 마음을 뿌리내리길 바라며.
그간 지인들이 "엄마가 책을 많이 읽으니 아이도 책을 많이 읽겠다"라는 말에 고개를 내저었는데, 책과 함께 지지고 볶았던 '5년'을 지내고 보니 이제는 이렇게 말하게 될 것 같다. "엄마가 책을 읽으면 아이도 책을 읽게 되더라고요." 처음부터 아이에게 들이밀고서 책 좀 읽으라고 닦달을 했다면 나도 아이도 절대 행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나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고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을 거라 감히 예상해 본다.
우리 오늘도 나란히 앉아 책의 세계에 함께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