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며
중학교쯤 이 다큐를 접하고, 10년이 지나 다시 보게 됐다.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먹먹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공부해 의대까지 간 수재였다. 눈앞에 펼쳐진 탄탄대로 대신 아프리카에서의 선교활동을 선택했다.
내전으로 고생하는 작은 동네, 톤즈에 도착한 그는 고민했다. 신이 있다면 이곳에 학교를 세울지 아니면 교회를 세울지, 그는 결국 학교를 세웠다. 대단한 인프라도 없었으니, 벽돌부터 시작하는 기초공사까지 모든 걸 도맡았다.
저녁에는 빛도 잘 안 들어오는 곳이었지만, 낮에는 학생들에게 수학, 영어, 음악을 가르치고, 시간을 쪼개 사람들을 치료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본인을 희생하면서도, 그는 본인이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에 자신을 찾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있어서 정신없을 만큼 행복하다고.
바쁘게 행복했던 그에게 대장암이 찾아왔다. 점점 더 생의 끝에 가까워진 마지막까지 본인이 아니라 어머니, 즉 타인을 걱정하며 그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떠났다.
그의 장례식 영상을 톤즈 학생들에게 보여주자, 학생들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였을지 감히 상상해 보자면, 모두가 외면하는 아이들의 인생에 기꺼이 들어가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줬으니, 그들에게 그는 얼마나 감사한 존재였을까. 총탄뿐인 세상에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 사람,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 사람, 그런 존재가 사라졌을 때 그들이 느낄 절망감과 슬픔이 얼마나 클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적어도 부모님보다 더 큰 존재였을 것이다. 부모도 하지 못한 일을 했고 사랑을 줬으니까.
그는 떠났지만, 한 사람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이 작게는 마을공동체, 크게는 한국까지 확산되고 있었다. 재단이 세워지고, 톤즈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유학 프로그램, 꾸준한 학교 지원 활동 등 그가 없어도, 그가 하고자 했던 일들이 실현되고 있었다. 선하고 다정한 마음이 결국은 통해서 세상을 감동시키고, 많은 이들을 공명 시켰다는 점에서 그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영원불멸하다고 생각한다.
광활한 우주에 보잘것없는 생애지만, 모순적으로 개인의 삶이 이렇게도 빛나고 위대할 수 있구나,,
세속적인 고민만 하던 나에게 너무나도 큰 세상이 다가온 느낌이라 더 먹먹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