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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초시현 Apr 07. 2019

1100km 자전거 국토종주 3

포항에서 부산까지, 부산에서 창녕까지


새벽 찬바람과 함께

"친구야 안 되겠다. 바람이 차갑다.. 이렇게 누운 상태로 오들오들 떨 바엔 차라리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래, 도저히 못 자겠다."


해변가에서 맨몸으로 잠을 자려니 새벽 공기가 차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닷 모기의 기습도 거의 테러 수준으로 받았다. 동이 트기 전에 친구와 나는 도저히 못 참겠다며 차라리 일어나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냥 가면 아저씨가 조금 섭섭해하실 것만 같아서 아저씨에게 감사의 뜻을 담은 짧은 편지를 적었다. 평상 위에 올려놓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물건으로 잘 고정해놓고는 막사를 떠났다. 찬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니 팔이 시려서 핸들을 좌우로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천국 문처럼 활짝 열린 국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 쓰인 걸 보니 5천 원에서 6천 원 선이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괜찮다 싶어 친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가서 국밥 든든하게 먹을래?"

"아니 돈 아까워."

"5000원이면 먹을 수 있는데..?"

"아니 그래도 아까워."

"그래 그럼 너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어디 가서 뭐 먹을래?"

"편의점 가자."

"그래그래, 가자."


천 원 이천 원 아껴서 뭐 얻다 써먹을라고 그러냐 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괜히 설득당한 척 알겠다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이런 사소한 걸로 싸우기도 싫었지만, 무엇보다 아끼다가 똥 되는 게 뭔지 직접 느껴보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친구는 돈을 아낀다며 물건을 고를 때 자꾸만 내 눈치를 살피더니 딸랑 컵라면 하나를 골랐고 나 또한 친구를 따라 컵라면 하나를 골랐다. 내가 컵라면 하나만 딸랑 고르자 친구는 나에게 왜 다른 건 안 사 먹냐며 의아해했다. 마치 내가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음식들을 여러 개 사면 같이 먹으려고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편의점으로 온 사람처럼 말이다. 분명 이 친구 예산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본인도 사 먹을 여유가 되면서 괜히 얕은수를 써서 날 베껴먹으려는 건가 싶어서 아 나도 너처럼 돈을 아끼려고 한다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의 친구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굉장히 당황스럽고 분노와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있는 듯한 그 표정을 매우 인상 깊었다. 친구가 교훈을 느낀 듯 하여 내심 기분이 좋기도 했다. 물론 새벽부터 자전거를 타다가 사리곰탕 하나로 버티려고 했으니 육체적으론 힘들긴 했다.


"친구야 다음부턴 그냥 식당 가는 게 어때?"

"그게 낫겠다."


친구는 결국 다음부턴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부산 입성

"가즈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논 밭을 지나고, 터널을 지나고, 꼬불꼬불 도로를 지나고, 다시 또 논 밭을 지나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펌핑이 되다 못해 터지거나 갈라질 것만 같았다. 이 날의 이동거리는 150km 정도였는데, 코스도 조금 난이도가 있었던 편이었고 특히 날씨가 정말 심각하게 더워서 굉장히 힘이 들었다. 중간중간 심각하게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어댔고, 주민센터에 가서 물을 얻어서 재출발하기도 했다. 정말 악을 써가며 달렸던 낮시간이었다.


부산 아저씨

"어데서 왔쓰예?"

"안녕하세요~ 강원도 삼척에서 왔어요~"

"어디로 갑니까?"

"해운대 쪽으로 넘어가려고요!"

"그래예? 그럼 내가 지름길 잘 아니까, 앞장서 갈 테니 따라와요."

"진짜요? 정말 감사합니다!"


포항에서 구룡포 아저씨를 만난 것처럼 부산 변두리 쪽에서 우연히 사대강 홍보사업 밑 이미지 개선 사업 쪽에 종사하신다는 분과 조우하게 됐다. 자전거를 타다가 우연히 만난 이분은 부산 해운대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을 안내해주셨는데, 해운대에 도착하자 잘 가라는 말과 함께 멋지게 사라지셨다.


"빨리 왔죠? 해운대까지 가는 길 붓싼에서 내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니까요~"

"하하하, 그렇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잘 가요."(핸들을 꺾어 퇴장.)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자전거를 탄 터라 해운대에 도착하자 쓰러질 정도로 힘이 들었다. 피로가 누적된 것도 한몫을 한 듯 싶었다. 이 날은 더 이상 달릴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근처 찜질방에 가서 카운터 아주머니께 자전거를 보관해달라고 부탁을 드린 뒤, 간단히 샤워만 한 후 바로 수면실에 철푸덕 엎어져서 깊은 잠에 빠졌다.  



체력을 미리 끌어 쓴 자들의 최후


(알람이 울린다.)

"7시? 안 돼.. 더 자자. 진짜 어제 개고생 해서 체력이 완전히 방전났나봐. 오늘은 푹 자고 늦게 출발하자."

"나도 피곤해서 더 자야 할 것 같아. 근데 이따 몇 시에 일어나게?"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자. 알람도 맞추지 마. 너무 피곤해. 그냥 빨리 자자."

"콜. 잘 자."

"너도."


일어나 보니 무려 오후 4시 30분이었다. 


국토종주 수첩

부산에서 인천까지 자전거로 종주하면 국토종주 메달을 받을 수 있는데, 메달을 받기 위해선 구간마다 설치된 부스에서 전용 스탬프를 전용 수첩에 찍어서 도착지점에 제출해야한다. 전용 수첩을 판매하는 낙동강 하구둑 국토종주인증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수첩을 판매하는 시간이 6시까지라고 했다. 그러나 시각은 벌써 오후 4시 30분. 시간상 밤은 되어야 하구둑에 도착할 수 있기에 이왕 늦은 거 부산에서 조금 더 놀다가 밤에 이동하기로 했다. 우선.. 배가 고파서 찜질방에서 나와서 튀김요리 전문점에서 9900원짜리 돈가스 정식을 먹었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던데, 배고플 때 먹는 모둠튀김의 맛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광안대교

돈가스로 식사를 마친 뒤엔 광안대교가 보이는 곳으로 가겠다며 무작정 페달을 저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바다 앞에 도착했고, 70층이 넘는 해운대 아이파크 타워 아파트 옆이었다. 그곳은 부산 영화의 거리가 있는 곳이자 광안대교와 노을이 제대로 보이는 명당자리였다. 친구와 나는 해가 질 때까지 한 자리에서 그리 붉지 않게 지던 노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잔잔한 파동이 보이는 바다 물결, 더위가 한 풀 꺾여 조금 시원해진 저녁 바람, 양초에 불을 붙인 것처럼 조용히 타들어가다가 어둠과 홀연히 사라진 노을까지. 중2병 걸린 중3 소년들의 감수성이 촉촉히 젖어드는 순간이었다. 


"우와아....."


이 날 광안리 해수욕장엔 행사가 열려서 김태우, 시스타, 샤이니 등 많은 가수들이 방문했다. 가수들을 보며 노래를 감상하고 싶었으나 인파가 굉장히 몰렸고, 갈 길도 바빠서 그냥 지나쳤다.



노숙

새벽이 되니 하구둑으로 가는 낙동남로는 텅텅 빈 상태였다. 도로 중앙엔 절대로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의 주황선 두 개가 그어져있었다. 일직선으로 쭉 이어진 도로였기에 아무리 차가 빨리와도 멀리서도 보일 것이 분명하다며, 친구와 함께 도로위로 S자를 그리면서 폭주족처럼 페달질을 하며 선을 넘나들었다. 철없는 스릴을 즐긴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분명한 자유의 영혼이라며 행복해했다. 그렇게 신바람이 나서 부산 낙동강 하구둑에 새벽 3시에 도착했다. 


낙동강 하구둑 기점

이곳 부산 낙동강 하구둑은 인천 아라서해갑문처럼 부산에서 인천까지 이어진 국토종주 자전거길의 출발기점이자, 종점이다. 자전거길의 끝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두 기점 어디를 가도 출발하는 사람들과 완주한 사람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곳에 도착해서 누울만한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텐트라도 있었으면 땅이 평평한 곳을 찾아서 어디서든 편하게 잤을텐데, 텐트는 망가져서 버렸고 침낭또한 안 챙겨왔기 때문에 누울만한 곳을 찾아야했다. 한참을 헤메다보니 화장실 앞 벤치가 눈에 딱 들어왔다. 둘 다 날이 밝으면 수첩을 구매하고 바로 출발하자며 벤치에 누워서 눈을 붙였다. 그런데 정작 아침해가 뜰 때쯤이 되니 밤을 지새운 피로감에 둘 다 기절한 듯이 잠에 빠져들어서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독사과라도 먹은 것처럼 말이다.



국토종주길에 오르다

소나기가 미친듯이 쏟아졌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비가 내리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빗발이 거세졌을 때쯤이 되어서야 옷가지가 꽤나 젖은 채로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온 몸이 화장실 근처에 서식하던 모기들에게 물려서 빨갛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비에 한 번, 모기상처에 두 번 호들짝 놀란 나머지 후다닥 자전거에서 일회용 비닐 우의를 빼입었고, 패니어엔 방수포를 씌웠다. 국토종주 센터로 들어가 전용 수첩을 구매했고 자전거길 노선도도 구한 뒤 센터 밖으로 나왔다. 다른 자전거 여행객들도 수첩을 사러 왔길래 반가워서 인사를 건넸다. 그들도 이제 수첩을 구매하고 출발한다고 했다. 서로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은 뒤, 설레는 마음으로 국토종주길에 올랐다. 우의를 입으니 습기가 가득해서 굉장히 찝찝했다.



아찔했던 사고

출발한 지 30분쯤 뒤, 가시덤불이 도로가에 쭉 심겨 있었다. 어떤 건 덤불 줄기가 많이 튀어나와서 달리다가 머리를 숙이거나 어깨춤을 추며 슉슉 피했다. 다른 라이더들은 가시덤불이 위험하다고 느낀 건지 더 위험하게 승용차들과 함께 도로 질주를 했다. 우린 덤불을 피하는 게 차라리 안전하겠다며 덤불아래로 잘 피하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미처 보지 못한 가시 줄기가 나의 눈을 때리는 바람에 "억" 소리를 내며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렀다. 운이 안 좋게도 엎어질 때 나보다 먼저 땅에 쓰러진 자전거 핸들바에 명치를 찍었는데 정말 앞이 캄캄해졌고 곧이어 혼수상태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 5분이 지난 뒤에야 명치를 어루만지며 다시 출발해야 했다. 흉골이 굉장히 아파서 몸을 앞으로 숙이기가 힘들었다. 


인천으로 올라가는 연어들

"오늘 어디까지 갈까?"

"음.. 최대한 달려보자. 원래 이런 건 첫날 스퍼트지. 여행은 처음이 아니지만 낙동강 처음이잖아. 하하."

"맞아. 역시 첫날 스퍼트지. 웬만하면 쉬지 말고 그냥 밟자. 도로 상태가 좋아서 엄청 멀리 갈 수 있을걸."

"그래. 미친듯이 밟아보자. 인천으로!!"

"인천으로!!"


가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라이더들이 지나가는 걸 봤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질감이 있었는지 인사를 해주거나 힘내라며 진심어린 응원을 해주었다. 그걸 처음 봤을 땐 인사를 활기차게 건네는 낯선 상황에 몹시 당황했지만 금새 적응했고, 우리도 인사를 해주었다.


"힘내세요~!"

"파이팅!!"


조금 적응이 된 뒤로는 자유의 향기에 흠뻑 젖어들어서 손까지 흔들며 인사를 해주었다. 서로 응원해주고, 인사를 해주는 모습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다들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고, 나또한 그런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인사법에대한 한가지 노하우를 터득했다. 첨엔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같은 말을 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서로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하기엔 문장이 너무 길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보고는 그 뒤론 인사를 랩 하듯이, 단어를 더 줄여서 대사를 쳤다.


"안세요~", "빠팅!"



물에 젖은 신발

아침부터 내린 소나기에 신발이 완전히 젖어서 발이 불어 터진 짜장면처럼 불었다. 발은 불어 터지려 하는데 신발은 그대로니 발이 불 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특히 발을 말리기 위해 신발을 벗었을 땐 발이 갑자기 욱신거리면서 응축된 통증이 발을 집중 사격하기라도 하듯 강타했다. 이때 페달이 일반 페달이었으면 슬리퍼를 구입해서 신고 발을 건조하며 다녔을 텐데 당시 클릿 페달을 사용 중이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클릿슈즈가 아닌 일반 신발을 신고 밟으면 쉽게 미끄러져 사고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슬리퍼또한 구입해서 신을 수가 없었다. 악으로 버티기로 하고 축축이 젖은 신발을 툭툭 털어 다시 신었다. 신발 찍찍이를 쫙 당겨서 발을 강한 힘으로 꽉 잡으니 통증이 조금은 참을만했다.


*자전거 전용 신발인 클릿슈즈는 클릿 페달과 함께 사용한다. 신발과 페달을 고정해서 힘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장비인데, 밟는 힘뿐만 아니라 무릎이 올라갈 때의 힘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 근육을 사용하고, 훨씬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속력이 빨라진다. 다만 치수가 크면 신발이 덜렁거리면서 힘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내 발에 꼭 맞는 정사이즈로 구입하여 신고 다녔다. 



끝없이 펼쳐진 강

원래 계획은 먹는 시간도 아끼고 대변보는 시간도 아끼고 모든 시간들을 아껴서 최대한 멀리 가자는 것이었는데 둘 다 배가 고파지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시내로 빠져서 피자를 먹고 가는 걸로 계획을 수정했고, 피자타임을 가진 후에 다시 강가로 복귀해서 달렸다. 이 날, 을숙도에서 출발하여 양산물문화관인증센터, 창녕함안보인증센터, 합천창녕보인증센터까지 총 150km를 이동했다. 도착지인 합천창녕보인증센터에 도착했을 땐 다음날 새벽 5시가 넘어있는 상황이었다. 하루를 꼬박 넘겨서 달린 것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러서 아주 잠깐 휴식을 취하고 또다시 출발할 계획으로 편의점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서 쪽잠을 청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몽둥이로 한 대 맞아서 기절한 것처럼 1초 컷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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