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자전거 무인카페
새벽 강추위에 뻥튀기 기계 옆 비둘기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여기서 잠들면 또 저녁에 일어나겠지.' 오늘만큼은 잠을 참아보겠다는 생각에 편의점에서 라면을 한 그릇 먹고 곧바로 출발했다. 해가 뜨고 나니 매미가 맴맴 울어댔고 미친듯한 폭염이 찾아왔다. 얼굴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고, 끊임없는 갈증에 연가시처럼 강속으로 뛰어들고픈 욕구가 하늘을 찔렀다. 이틀째 잠을 못 자고 계속 달리다 보니 뇌가 불타는 것처럼 지근거렸다.
갈증에 허덕이던 중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자전거 무인카페를 발견한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이용해 보는 무인카페 내부로 들어가 보니 일반 구멍가게와 별 차이는 없었다. 그저 라이더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겨냥하여 아이스크림이나 간식류를 취급하는 곳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더라면 테이블에 현금을 놓는 통이 있었고, 손님이 알아서 돈을 놓고 가는 구조였다. 우와 신기하네 하면서 뭘 먹을까 하다가 아이스크림이 굉장히 먹고 싶은 나머지 후다닥 지갑을 꺼냈다. 지갑엔 천 원짜리로 한 뭉태기가 들어있었다. 다행이다 싶어서 아이스크림을 두 개 집은 뒤 현금을 놓고 밖으로 나왔다. 빙글빙글 아이스크림을 돌려가며 빠니 원기둥 모양의 아이스크림은 금세 원뿔형으로 변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던 도중, 각각 밀짚모자와 야구모자를 착용한 두 명의 남자가 무인카페 앞에 멈춰 섰다. 이 남성들이 타고 온 자전거는 80년대에 생산된 듯이 허름하기 짝이 없는 코렉스 자전거였다. 자전거에 달려있던 짐받이는 고물 자전거상에서 만원쯤을 주고 산 듯이 낡아 보였다. 짐 또한 일반 책가방에 담아서 스트레치 코드로 칭칭 감아서 짐받이에 고정해놨는데 비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침수될 게 뻔해 보였다. '코렉스 자전거로 국토종주라..' 우리보다 더 힘들게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뭔가 안쓰럽기도, 멋있어 보이기도 해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들과 우리는 자전거 여행이라는 대화 주제로 서로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인천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라이더들이었다. 저 허름한 코렉스로 헬멧도 없이 어마어마한 거리를 남하했다. 근성이 보통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힘내라고 응원을 해주고는 자전거에 탑승했다.
붉은 네온사인의 십자가
상주에서 후레시 배터리가 모두 나간 채로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캄캄한 밤에 가로등도 없었고, 잠시 쉴만한 편의점도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마저 바닥이어서 일단 꺼놓고 기록을 남기고 싶을 때만 사진을 촬영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달빛에 의존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을 뚫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쉴 곳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굉장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어둠이 짙어서 혹여나 자갈이라도 밟고 미끄러진다면 어떻게 넘어지는지도 모르게 넘어지기에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조심조심, 강을 따라 이동할 뿐이었다. 마치 연료가 바닥나서 언제 바닷속으로 꼬구라질지 모르면서도 육지가 나오겠지 하면서 계속해서 앞을 향해 날아가는 영화 속 전투기처럼 말이다. 그렇게 천천히 이동하던 중 운이 좋게도 저 멀리서 뻘건 네온사인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정말 민폐라는 걸 알고 있지만 후레시도, 휴대폰 배터리도, 텐트도, 침낭도 없었기에 염치 불고하고 교회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사택에 가서 노크를 하니 50대쯤으로 추정되는 목사님께서 금방 잠에서 깨신 듯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주셨다.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드리니 감사하게도 잘 왔다며 따뜻하게 반겨주셨다. 너무 죄송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감사인사를 꾸벅 드리고는 목사님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 날의 잠자리는 상주 매호 교회 식당이 됐다.
최악의 발상태
신발을 벗고 발 상태를 보니 여전히 최악이었다.
신발을 벗자마자 욱신거리는데 저승사자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는 말이 있다고 하던데, 그중에 젖은 클릿슈즈 포함되어 있는 거냐
없으면 그 말 만든 새끼 진짜 개새끼..
기록을 항상 남겨라
친구는 쓰러져서 자고 있고.. 난 이 날의 일기를 기록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것...... 매일 수기로 꼼꼼하게 그 날의 일지를 작성했기 때문이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일기를 다 쓰고 나선 기절한 듯 잠에 들었다.
동냥
며칠 뒤, 경비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서 대뜸 눈 앞에 보이는 노인정에서 밥 동냥을 하기로 했다.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고 괜히 긴장을 해서 어버버 하면서 부탁을 드렸는데 할머니들이 불쌍하다고, 손주 같다고 하시며 밥을 꺼내서 차려주셨다. 반찬은 김치, 나물, 고추 조림 이렇게 세 개였는데 왜 이리 맛있던지.. 어푸어푸 먹다가 추접스럽게 입에 내용물이 있는데도 밥 좀 더 먹을 수 있냐고 여쭤보는 실례까지 범했다. 안타깝게도 남은 밥이 없다고 하셔서 더 먹진 못했고 할머니들이 갈 때 챙겨가서 먹으라며 방울토마토를 한 봉지 챙겨주셨는데 몇 시간 달리다가 꺼내보니 찜통더위에 상해서 하나도 못 먹었다. 아무쪼록 할머니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증센터
삼척에서 출발하여 부산을 경유하고, 사대강 길을 따라 633km 국토종주길을 달려서 10일 만에 인천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총 1100km를 달린 것이었다. 도장을 찍고 나서 수거용 우편함에 인증수첩을 넣는데 감격스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다. 그때가 되니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르는데 비가 와서 우중 라이딩을 하고, 노숙자들 우글우글한 정자에서 맨 몸으로 노숙하고, 식당에서 6천 원짜리 국밥 한 그릇에 감동받아서 울컥하고, 참다 참다 터져서 친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노인정에서 밥을 얻어먹고, 벤치에서 자다가 소나기를 맞고, 교회에 가서 잔 모든 기억들이 아련하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우린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고향 땅 강원도 삼척으로 돌아갔고 난 계획대로 친구를 깔끔하게 손절했다. 그 뒤로 두 달이 지나서 집으로 정체모를 택배가 하나 도착했는데, 뭐지 하고 보니 국토종주 인증메달이었다. 곱상하게 생긴 메달이 싱긋 생긋 금빛 미소를 짓는데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닦을 것도 없이 깨끗한 메달을 닦고 또 닦아서 서랍장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마치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때의 추억들이 다시 한번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아, 여름날의 기억들이여..
평생 잊지 못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