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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초시현 Apr 04. 2019

1100km 자전거 국토종주 2

텐트에 돌 던진 자식들아, 혹시 보고 있다면 반성해라..


텐트로 날아온 돌멩이

텐트 안이 후끈 달아올라 땀을 흘리며 자고 있던 둘째 날 아침이었다. 전날 텐트를 설치한 위치가 형산강 코앞이었기에 시원하게 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후끈후끈했고 아침해가 뜨고 나서부턴 거의 텐트 안에서 찜 요리가 되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그 상황에서도 알람을 수 차례 꺼가면서 잠을 잤는데, 텐트 주변으로 돌멩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텐트에 주먹만 한 돌이 날아와 텐트를 찢고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자다가 이게 갑자기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혹시 주변이나 다리 위에서 공사를 하다가 돌이 떨어졌나? 싶어서 텐트 지퍼를 아주 조금 내리고 바깥을 보니 30m쯤 앞에 중학생 무리가 텐트를 향해 쌍욕을 퍼부으면서 인당 하나씩 돌을 집어서 텐트 쪽으로 던지고 있었다. 아마 자기네들 딴엔 장난이라고 한 행동인 것으로 보였다. 


"친구야, 누가 텐트에 돌 던졌다. 일단 일어나 있어. 또 날아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을 테니까."

"어.. 응? 뭐야.."

"여기 틈으로 봐봐. 쟤네 보이지?"

"중학생들이네."

"응. 쟤넨 쪽수도 많은데 괜히 우리가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더 흥분해서 돌을 더 던지고 도망갈 거야. 그러다 보면 돌싸움 날 게 뻔하니까 아예 텐트 밖으로 나가지도 말고 사람 없는 척을 해버리자. 어차피 지금 거리가 멀어서 돌이 날아오기도 힘들지만 혹시라도 날아오는 게 있어도 텐트 틈으로 보다가 방향 예측해서 피하면 될 거야."

"알겠어."


중학생들은 그 뒤로도 몇 분간 쌍욕을 하며 돌멩이를 던지는 행위를 지속했다. 하지만 텐트와의 거리가 멀어서 그랬는지 금세 흥미를 잃고는 먹잇감을 놓친 하이에나의 표정으로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정말 다행이다. 텐트야 뭐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안 다친 게 어디야?"

"그렇네. 근데 텐트는 어떡하지?"

"음..."


한쪽 벽이 30cm가 넘게 쭉 찢어진 원터치 텐트를 보며 고민을 하다가 타이어를 버린 뒤 겪은 어제의 고통이 떠올라서 챙겨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원터치 텐트를 접어본 경험이 몇 번 없어서 손이 가는 대로 접었는데 실수로 힘을 너무 주었는지 텐트 폴대가 터져버렸다. 거기에 폴대가 초 저렴 모델이라서 그런지 터진 폴대 쪽에서 부분에서 유리섬유 가시가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왔고, 그게 뭔지도 모르고 만져보다가 손과 반장갑에 보이지도 않는 유리섬유가 엄청나게 박혔다. 텐트는 결국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근처 쓰레기장에 버려야 했고, 손과 장갑은 형산강의 물로 한참이나 벅벅 씻어서 가시를 제거해야 했다. 손이 매우 가렵고 따가웠다. 텐트는 아쉽지만 이미 죽어버린 몸이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고, 아침으로 뭘 먹을지 뒤적거려봤는데 전날 먹다만 소시지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어서 소시지를 먹기로 했다.


"어제 정신없이 잠부터 자느라 오늘 아침메뉴를 생각 못했네. 있는 대로 소시지라도 구워 먹을래?"

"난 별로 배가 안고파서 너 혼자 먹어, 난 안 먹을래."

"오케이."


가스불에 소시지를 구워서 아침을 해결했는데, 날이 엄청 더워서 그런지 목이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니타이어를 찾아서

형산강 주변을 달리던 라이더들에게 물어보니 남부종합시장 쪽에 타이어 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알려주어서 네이버 지도로 자전거 샵을 검색해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모두 기본적인 정비만 하는 곳들이어서 도저히 친구 자전거 바퀴 사이즈에 맞는 타이어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산 바이크라는 매장까지 가게 되었는데, 산 바이크 사장님께서 피곤에 찌들고 전쟁 난민 같은 몰골로 찾아온 우리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이곳저곳 전화를 해서 타이어 수배령을 내려주셨다. 그런데도 결론은 동일했다. 아쉽게도 타이어를 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은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고, 허탈한 심정으로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전 날 개고생 한 썰을 들려드렸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우릴 더욱더 불쌍하게 생각하셨는지 따라오라고 하시며 시내로 우리를 안내해주셨다. 그리고 산 바이크 사장님과 함께 시내를 이 잡듯이 뒤져서 타이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친구 자전거 바퀴에 맞는 사이즈의 타이어는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러던 중 사장님께선 혹시나 싶은 표정으로 매우 허름해 보이는 자전거 판매점까지 방문하셨고, 결국 그곳에서 친구 타이어 규격에 꼭 맞는 타이어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자전거 판매점은 마치 20세기에 제작된 듯이 옛날 느낌이 나는 자전거를 취급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무엇인가 사갈 것 같지 않을 것처럼 생긴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허름한 타이어가 딱 하나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뭐 허름하던 허름하지 않던,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굴러가면 장땡인 것을! 사장님께 정말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산 바이크 사장님 덕에 타이어를 구입할 수 있었고, 시장통에서 낮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새 해가 지고 있었다.



호미곶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에 언덕과 급경사가 많아서 애를 먹었지만 막상 도착해서 노을 하늘을 보니 그 몽롱한 빛깔에 취해서 피곤함이 싹 가셨다. 여기서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이 날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말씀도 드리고, 온 사방이 포토존이라 사진도 찍고, 노을 아래서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자전거 여행자들이 지나간다면서 엄지 척을 해주고 힘내라고 차에서 손도 흔들어 주면서 응원을 해주었는데 마치 마라톤을 뛰며 응원을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야간 라이딩

"친구야 오늘 야간 라이딩할래? 오늘 한 게 고작 호미곶에 온 것 밖에 없기도 하고 체력도 많이 남아서 말이야."

"그래, 그러자."


이 날의 이동거리는 거의 없었다. 고작 호미곶까지 간 게 전부였다. 그래서 야간 라이딩을 하기로 합의해서 모자란 키로수를 채우기로 했다. 


아저씨와의 조우

모든 자전거 라이더들은 라이더들끼리 동질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서로 마주치면 웬만해서는 파이팅을 해주곤 하는데, 이 밤에 누가 반대편 차선에서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길래 냉큼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스쳐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 자전거가 우리와 같은 선상에 서게 되었을 때 갑자기 우리 쪽으로 유턴을 한 뒤 우리 대열 뒤로 따라붙었다.


"친구야 우리 저 사람한테 뭐 잘못한 거 없지?"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없지."

"근데 이 아저씨 왜 갑자기 뒤에 따라오지.. 혹시 연쇄살인범일 수도 있으니까 한 명이 명치를 때리면 다른 한 명이 생식기를 걷어차고 뭐 이렇게.. 대충 뭐 하려는 건지 감 오지? 할 수 있겠지?"

"걱정 마."


자전거에 탄 채로 우리 뒤에 붙어서 따라와서 인사를 한 아저씨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예상 못한 상황의 전개에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연쇄살인범.. 은 아니고 그냥 후줄근하게 나시티 한 장 걸치고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기 위해 나온 동네 아저씨라서 경계를 살짝 풀고 대화를 나눴다. 알 보고니 그 아저씨는 해수욕장에서 닭꼬치나 국수 같은 것을 판매하는 막사를 운영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중학생 두 명이 야간 라이딩을 하고 있는 걸 보시곤 궁금하고 기특해서, 밥을 사주고 싶어서 따라오셨다고 하셨다. 


"그럼 식당까지 선두로 앞장서서 갈 테니 잘 따라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저씨와 우리는 냉면을 함께 먹었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타이어를 버리고 걸어온 것부터 텐트가 찢어지고 부러져서 버린 것까지.. 아저씨는 그 이야기를 재미있다면서 흡족한 표정으로 들으시고는 세상엔 원래 별 일이 다 있다고 하시면서 웃으셨다. 그리고 재미난 친구들이라며 우리에게 잠 잘 곳을 제공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텐트도 없는데 참 잘 되었다 싶었다. 그렇게 또 구룡포까지 함께 이동했다.



하늘을 이불 삼아, 땅을 베개 삼아

모기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저씨의 배려 덕에 누워서 잘 공간을 얻었고 빨래와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샤워장에 얼음처럼 찬 물만 나와서 온 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그게 대수랴, 낮동안 흥건하게 흘린 땀을 씻고 옷가지를 빨 수 있다는 것에 무진장 감사드릴 뿐이었다. 막사에 연결된 전기를 사용해서 충전도 할 수 있었는데, 이때다 싶어서 휴대폰을 풀 충전 했다. 덮을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바닷바람을 맞는 것이 굉장히 추웠지만, 이틀째 씻지 못해서 땀 찌린내가 나는 와중에 샤워를 했단 것에 아주 감사했다.


"우린 맨날 뭔 일이 터지는 것 같냐 ㅋㅋㅋ 모르는 사람도 막 만나고 말이야."

"그러게. 재밌네."


그렇게 구룡포 해수욕장의 밤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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