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34호: 예의 있는 반말 / 이성민, 기현 안녕?
나는 예전에 너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한 적이 있다. "친구가 있기에 우리는 혼자 즐겼던 것을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다. '나의 것'은 홀로 즐길 때 생기는 게 아니라 친구가 옆에 있을 때 생겨난다. 너가 있어야 나는 비로소 나의 것을 갖는다. 바로 그것이 너의 의미다." 이제 이와 같은 너의 의미를 지금 주어진 너의 문제에 적용할 때, 너를 찾지 못한 상태가 곧 나를 찾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p.39)
릿터에서도 그렇고 민음사 커뮤니티에서도 평어를 사용하자고 해서 평어가 뭘까?라는 호기심이 들던 찰나에 잡동산이에서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글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내가 하는 존댓말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 않았는데 내가 듣는 존댓말이나 반말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가끔 있었다. 그래서 평어가 좀 더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언어 습관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12년 동안 같은 학년, 나이로 묶여 모두와 친구였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동기로 만나게 되었다. 모인 자리에서 사람들은 이름 다음으로 나이를 물었고,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이를 알게 된 후엔 너무나도 당연하게 언니, 누나, 오빠, 형 등의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게 되고, 또 그 나이 차로 인해 조금은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대학교 동기들은 거의 대부분 나와 한 살 차이가 나서 종종 ’이제 그냥 이름만 불러~‘라고 진심으로 말하곤 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도 있고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왔기에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기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사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작 한두 살 차이인데! 다 같이 이름 부르는 친구하고 싶은데!
그래서 평어를 쓰는 실험을 친구들에게 제안해보고 싶어졌다. 글쓴이가 ’호칭들은 가족 프레임과 학교 프레임을 끌고 오고, 이런 프레임은 성인의 자율적인 사회적 삶에 적합한 프레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공감이 갔다. 사실 언니, 오빠, 누나, 형 같은 호칭은 가족 내에서만 썼으면 좋겠다. 영어만 해도 이름을 부를 때 00 sister, 00 brother라고 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만 이런 호칭을 쓰는 걸까? 다른 외국어는 잘 알지 못해서 궁금한데 아마 없을 것 같다.
분명 ‘언니, 누나, 오빠, 형’ 같은 호칭으로 인해 나이를 인지하고, 친해질 수 있었음에도 거리감을 느끼게 되어 다가가지 못하게 된 인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때가 있다. 평어가 좀 더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과 평어로 소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