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 나는 네가 한 일을 기억해
왕따, 따돌림: 두 사람 이상이 집단을 이루어 특정인을 소외시켜 반복적으로 인격적인 무시 또는 음해하는 언어적·신체적 일체의 행위. (출처: 두산백과)
‘왕따 당한 적 있어?’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니’라고 답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왕따’라는 단어가 주는 폐배 감과 비참함이 너무 커서일 것이다. 하지만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은 적 있어?’라고 물어보면 답변은 달라진다. 살면서 ‘소외감’을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을 대부분 해외에서 보낸다는 것은 늘 ‘다수’가 아닌 ‘소수’에 속해있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전교에 외국인은 통틀어서 나 한 명뿐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1, 2학년은 즐겁고 순탄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새 친구들이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치원 친구들이 그 장벽을 자연스럽게 허물어주었다.
지금이야 말하지 않으면 외모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과 한국의 패션 수준은 충격적일 정도로 격차가 심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은 전교에 하나뿐인 외국인 학생이 오늘은 어떤 예쁜 한국 옷을 입고 올지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어머나 예뻐라. 이것도 한국 옷이니?”와 “한국 친구는 참 예의가 바르다.”였다. 과거에 중국에는 고개 숙여 인사하는 습관이 없었는데 나는 부모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어른만 보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다녀 뜻밖에 환심을 샀다.
돌이켜보면 중국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순수했고 대부분 심성이 착했다. 이따금씩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 교실에 찾아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는 옆반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 사실도 점차 익숙해질 무렵, 전학생이 왔다. 나는 원숭이를 닮은 그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학생은 입이 다소 튀어나온 남학생이었다. 뚱하고 남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 때문인지 소심하고 겁이 많아 보였다. 처음부터 친절하게 말을 건 게 잘못이었을까?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부터 그의 태도가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시작은 짓궂은 말 몇 마디었다.
“너는 외국인이잖아.”
그다음에는 편 가르기가 시작되었다.
“너는 우리랑 다르잖아.”
그 후에는 욕설이 섞인 거친 말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행동이 이어졌다. 전학생은 나를 밀치기도 하고 기분 나쁜 표정으로 노려보기도 했다. 불쾌한 기분을 표현하고 몇 번이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내편이었다.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해주기도 하고 그 친구가 다가오면 쫓아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유 없는 거친 말과 행동을 마음에서 흘려보내기에 3학년은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따돌림은 집단이 아니어도 충분히 휘두를 수 있는 폭력이었다.
그 아이의 폭력을 멈춘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중국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작문 숙제가 많았다. 주제는 다양했다. 자연 풍경을 글로 녹여내는 것부터 가장 좋아하는 책에 관한 독후감까지 매번 달랐다. 그리고 그 날은 최근에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슬픈 일을 써보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서러움을 다 풀기에 원고지는 턱없이 부족했고 나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진심을 글자 사이사이에까지 담아내려 최선을 다했다. 완성된 글은 어쩌면 3학년의 내가 안고 있던 괴로움의 결정체였으리.
힘든 일이 있어도 뛰어놀 때면 마냥 해맑은 게 또 3학년이다. 그날도 정신없이 친구들과 고무줄 뛰기를 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꼬여버린 스텝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차례를 기다리러 옆으로 나왔다.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웃음꽃이 피었다. 사소한 것에도 자지러지게 웃었던 나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 어깨를 조심스레 톡톡 치는 게 느껴졌다. 웃음이 걸려있는 채로 고개를 돌리자 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전학생이었다.
순간 마음속으로 움찔하면서 불안감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전학생은 오늘따라 더 풀이 죽은 표정이었다. 아니, 조금 슬퍼 보였다.
미묘한 긴장감이 친구들 사이에 감돌려 하는 순간 그럴 새도 없이 전학생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뭐라고 웅얼거리더니 빠르게 뒤돌아 뛰어노는 아이들 틈으로 사라졌다.
미동 없이 서서 그 아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가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쟤 또 뭐라고 했어?”
쫓아가서 한 대 때려줄 기세였다.
“잘 안 들렸는데... 미안하다고 한 거 같아.”
“엥?”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제대로 들은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진 전학생의 모습에 나는 내가 들은 것에 확신이 생겼다.
문뜩 아침에 교무실에 숙제를 내러 갔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 혹시 내가 쓴 글을 다른 친구에게 보여줘도 되는지 물어보셨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있던 친구가 담임 선생님께서 전학생을 불러다가 뭔가를 보여주시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시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 뒤로 그 친구는 다시는 나에게 심한 말을 하거나 거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쁜 사이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전학생이 아닌 반 친구가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친구는 어쩌면 그저 몰랐던 것 같다. 처음 만난 외국인 친구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자신이 뱉은 거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을 때 잘못한 것을 인지하고 폭력에서 손을 떼었다.
사실 내가 겪은 일은 시대와 더불어 진화한 ‘따돌림’ 방식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수준이다. 심지어 해피 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 겪은 정신적인 고통을 서른이 넘은 지금도 기억한다. 물론 지금도 마음이 아프거나 괴롭지는 않다. 하지만 누군가 이유 없이 내 몸에 흉터를 남겼다면 그 흉터를 볼 때마다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고 한다. 그 흔적이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마음에 흉터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흉터를 가진 사람은 평생 기억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은 사과할 줄 아는 최소한의 용기를 가진 친구였다. 그의 사과도 달라진 태도도 기억 속에 있으니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