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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보 Jun 04. 2021

예보 일기_07

금쪽같은 그 새끼

어느 날 남편이 TV를 보다가 말했다. “오은영 박사님이랑 강형욱 훈련사님이 나오는 프로를 보다 보면 ‘아 세상에는 정말 나쁜 아이와 강아지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공감이 갔다.


어떤 갈등이 발생했을 때 상대방의 잘못으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행위인 것 같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뛰어난 고자질 능력을 보이고 가르치고 훈육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곤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쁜’ 부모도 어쩌면 그저 내면적 문제가 나쁜 행위로 드러난 아이 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 아이가 커서 그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적나라하게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첫째로 태어났기 때문에 마땅히 감당해온 부담감은 남편의 포근함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걸러진 의젓함을 뚫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투정과 어리광이었다. 남편은 고맙게도 그 모습을 아직까지는 귀엽게 봐주고 있다. 오히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 스스로 한없이 유치해진 내 모습에 적잔은 충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리고 누군가에게 생떼를 쓰는 사람이었던가?


남편은 반대로 살이 조금 (많이) 쪘다. 입맛에 꼭 맞는 음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보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어려운 상황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게 은근 한으로 남았던 게 아닐까 함께 추측해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피해 갈 수 없는 숙제로 남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한으로 뒤로 미뤄볼 수는 있지만, 언젠가 꼭 등장해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두렵게 하기도 한다. 마주하지 않고 피한다면 언젠가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살다 보면 나잇값 못하는 ‘어른’과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된다. 직장 상사, 동료, 친구, 스승, 이웃, 지인 등 다양한 관계를 통해 말이다.


그럴 땐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자 ‘으휴, 이 금쪽같은 새끼.’


아무리 못난 사람이어도 인생의 특정 시기에는 다 누군가의 ‘금쪽같은 내 새끼’였을 이 사람도 하루빨리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고 성장하길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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