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미 Jan 14. 2023

소피와 화장실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갔지만, 졸업 전에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그 당시엔 교사란 직업보다는 회사원이 더 멋있어 보였다. 막상 회사원이 되고 보니, 책상 앞에 앉아서 영문 편지를 쓰는 일이 답답해졌다. 회사 생활 일 년 정도 지났을 무렵에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평생직장으로 삼기보다는 교사란 직업을 한 번 경험해 보겠다는 심정이 더 컸다. 한 달 넘게 용산고등학교에서 보수교육을 받고, 시험을 쳤다. 필기시험도 보고, 피아노로 실기시험을 보았다. 교사가 되려는 열정이 크지도 않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 순위에 따라 10월에나 발령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집이 논현동이라 강남교육청 소속의 학교로 발령이 났다. 잠실 주공아파트 안의 제법 큰 학교였다. 1981년 10월 17일, 네 명의 교사와 함께 교장 선생님의 소개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분들은 여러분처럼 2년제 교대가 아닌 4년제 대학을 졸업하신 분들입니다.”

  아뿔싸! 교장 선생님의 소개가 벌써 갈등의 시작을 만들었다. 게다가 같이 발령받은 한 분의 교사가 불을 더 붙이고 말았다.

  “제가 경기도에 있는 중학교에서 현재 미술을 가르치는데, 여기서 근무해야 할지, 거기서 계속 가르쳐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사흘 뒤에 학교에 나타났다.

  ‘흥! 4년제를 나왔으면 나왔지, 뭘 안다고 아이들을 가르쳐? 가르치길.’

  뒤돌아서면 선생님들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지금이야 4년제 교대로 바뀌었고,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들이 거의 야간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을 거쳐서 대학원을 진학하였지만, 그 당시는 2년제를 졸업한 것은, 사실이다. 교대가 2년제에서 4년제로 바뀌는 바람에 모자라는 교사를 충원하기 위해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에게 ‘중초교사’라는 이름을 붙여 보수교육을 받고 교사가 될 기회를 준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와 같이 발령받은 이들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미리 한 달 전에 교생실습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었고, 전화도 없는 가구가 많아선지, 나는 그런 연락을 받지 못하고 준비도 없이 아이들을 맞게 되었다. 아이들의 정서적, 신체적 특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교실이란 공간에서 아이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3학년 담임을 맡아 처음 만난 아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예쁘기도 하고, 똑똑해 보였다. 교대를 나오지 않은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게 어색했고 첫날은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소피'사건은 정확히 기억한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되자, 아이들에게

  "소피 볼 사람 다녀와요. “

  라고 얘기하자 

  "소피가 뭐예요? “

  라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아차 싶어 얼른 화장실 다녀오라고 지시한 후에 한참 속으로 웃음을 삼켜야 했다. 어떻게든 있어 보이려고 애들 앞에서 포장하는 내 모습이라니.     


  몇 년 전 1학년 연구 교사 공개수업을 참관했었다. 수업 중 한 아이가 화장실 다녀와도 될지를 물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글씨를 정성껏 쓰며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네. 다녀오세요. “

  라고하고 칠판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마주 보았다. 그런데 아! 아이들 모두가 다 화장실을 가버린 거다. 텅 빈 교실에서 참관하는 선생님들 모두 진땀을 흘리며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모두 역지사지가 되어서. 

    

  중견 교사가 되어서, 학년 부장을 맡았고, 6학년 담임이었던 시절이다. 국립박물관으로 체험학습을 갔다. 아이 하나가 내 손을 붙잡아 화장실로 이끈다. 아이들에게 잠깐 그 장소에서 구경하고 있으라 시키고, 함께 화장실을 갔다. 6학년이라 덩치가 나보다 컸고, 평소 과묵한 J였다. 당황한 나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라고 짐짓 침착하려 애쓰며 물었다.

  ”선생님. 나 생리 시작했어요. “

  ”아! 그래. 생리통 있어? 약 줄까? “

  ”아니요. 나 그거 할 줄 몰라요. “

  J는 늘 생리 때마다 엄마나 주변 사람이 처리해 주었는데, 마침 체험학습 중이라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J는 지능이 또래보다 약간 낮아 특수학급에 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늘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유순한 J는 나를 참 잘 따라주었다. 함께 화장실을 가서 그 일을 처리해 주었다. 

     

  아이들은 교사가 생각한 대로 따라오면 다행이다. 늘 돌발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특징에 대비해야 하고 깨어있어야 하고, 준비해야 한다. 때론 아이들과 같이 투명한 마음이 필요하다.

작가의 이전글 짜장면과 산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