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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구리봉봉 Jul 26. 2020

고깃집 자식, 채식을 시작하다.

육식이 일상이었던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기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채식주의자가 흔히 듣는 질문 중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고기를 싫어했었나요?”

저의 경우, 고기 먹기를 상당히 좋아했고 먹을 기회도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 반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한다는 ‘나는 다음에 태어나면 고깃집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어’의 그 자식이 바로 저였거든요. 그런 물리적인 이유로, 저희 집 식탁엔 많든 적든 고기반찬이 늘 올라왔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이 사실인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한 뒤로도 저는 고기를 찾아서 먹곤 했습니다. 고기를 먹어야 밥을 든든히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렇게 고기를 좋아하던 제가 채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배우자인 JB의 제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귄 지 3개월 무렵 연인이었던 JB는 저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밥 먹을 때는 채식만 해보는 게 어때?”

당시 채식을 다룬 책이나 방송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제 주변에도 채식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가끔 채식을 하는 게 몸에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연인이 같이 하자는데 안 할 이유가 있나요. 아무튼 당시 저에겐 안 할 이유보다 할 이유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약 1년 정도 연인과 만날 때마다 간헐적인 채식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 끼니를 채식으로 바꾼 것이 아니기에 제 몸이 무리한 변화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고, 채식을 한 날은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끔씩 하는 채식은 꽤나 할만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엔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말을 떼던 때부터 저희 집엔 강아지를 비롯해 다양한 동물들이 가족으로 함께해왔습니다. 현재도 세 고양이 마담, 오드리, 우연과 함께 살고 있지요. 갑자기 동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가 간헐적 채식이 아닌 삼시세끼 꼬박꼬박 채식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이야기를 하자면 동물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과 함께 살기 전엔, 방송에서 나오는 아기동물들이 귀엽고 예뻐서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도 아기 강아지 엽서를 사서 모으곤 했거든요. 그 무렵 아버지께서는 술자리에서 버려질 위기에 놓인 개가 있다는 지인분의 말에 안쓰러운 마음으로 집에 개를 데려오셨습니다. 저의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죠. 하지만 인형처럼 예쁘기만 할 거란 어린 저의 상상과는 달리 챙겨줘야 할 점이 많았습니다. 밥도 때마다 챙겨줘야 하고, 자주 안 씻겨주면 냄새가 나서 목욕도 시켜줘야만 했습니다. 산책도 시켜주지 않으면 안 되고 하나부터 열까지 가족의 손이 닿아야만 하는 생명체였습니다. 그렇게 챙겨주고 함께 놀고 함께 살다 보니 개는 자연스레 제 가족이자 동생이 되어있었습니다.

'둘리'뿐만 아니라 몇 차례 버려질 뻔한 개를 데리고 오셨다.

유년기 시절 반려동물과 함께 한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동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 불행하게도 버려지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기되는 동물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동물을 저만큼 좋아하는 JB와 함께 이런 생각을 나누었고, 둘은 사람들을 더 모아 유기견보호센터로 봉사활동을 갔습니다. 그곳엔 주로 ‘누렁이’라고 하는, 보신탕집에 팔려가는 개들이 전체 개들 중 70% 이상이 있었습니다. 개고기로 팔려갈 뻔한 개들을 구조해서 센터에서 보호하는 중이었죠.


많은 개들 중 ‘소망이’라는 붙임성 좋은 누렁이와 봉사 첫날부터 친해졌습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소망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친구를 먼저 보낸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곤 합니다. 눈을 마주치면 꼭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는 친구였죠. 궁금함이 많은 녀석이라 자주 갸우뚱거리곤 했습니다.

배려심이 많아 늘 다른 개들을 보살폈던 '소망이'

처음 유기견센터 봉사를 마치고 개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려던 때, 소망이는 제가 떠날 것이란 것을 안다는 듯 저에게 다가와 계속 눈을 마주쳐 주었습니다. 딱히 애교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죠. 그저 ‘쓰다듬어줘서 고마웠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작 4시간의 봉사에 저에게 모든 마음을 내주었던 소망이와 개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반려동물을 손쉽게 사고 무책임하게 버리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미워서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소망이와 교감하게 된 그 날, 자연스레 육식을 그만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유기된 개나 고양이도 이렇게나 사랑스럽게 사람과 교감할 수 있구나, 어찌 보면 축산 동물인 돼지나 닭, 소들도 갇혀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원하진 않을 텐데, 그들도 내가 내 동생으로 여겼던 개와 다를 바 없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식재료에 불과하다 생각했던 고기가, 생명체의 살로써 저에게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마트의 고기가 마치 사람 살처럼 느껴지기도 하곤 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고깃집 자식이 채식을 하게 됐냐며 어떤 분들은 웃으시기도 합니다. 고깃집 자식이던 제가 채식을 하리라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 또한 ‘동물’ 때문인걸 보면 저도 좀 기분이 이상하기도 하고 제가 생각해도 동물과 제가 뭔가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채식을 하는 분들의 시작이 모두 저와는 같을 수 없을 겁니다. 무엇이든 시작의 이유는 사람마다 몹시 다양하니까요. 채식을 하시는 분들, 혹은 채식을 하고 있진 않더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과 더 많은 공감대를 나누고 싶어, 다음 글은 저와는 다른 이유로 채식을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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