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위 Mar 15. 2022

독립 예찬 _ 그렇게 나를 알았다.

#예찬시리즈 #독립만세 #독립추천 #나를알다 


난 30이 훨씬 넘어서야 독립을 했다. 늘 부모님과 함께였고, 함께 하는 시간이 아늑하고 편안해서 독립에 대한 특별한 로망도 없었다. 독립을 한 계기는 사무실로 쓰일 공간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썰렁했던 첫 시작을 잊을 수가 없다. 원룸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밤, 인터넷도 되지 않아 오래된 MP3를 틀어 텅텅 빈 공간에 음악으로 가득 채우려 했던 그런 밤이었다.


썰렁했던 첫번째 독립 공간


그렇게 나만의 공간이 처음으로 생겼다. 처음은 어색했고, 그 공간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다 내가 지낼 곳을 채울 냉장고를 사면서 세탁기를 사면서 가구들을 사면서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이럴 수가! 나만 쓰는 냉장고가, 세탁기가 가구가 있을 수 있다니! 늘 함께 쓰는 물건이었는데! 무섭고 설레었다. 가구와 가전기기를 매장에 방문해 구입하기도 했고, 온라인 쇼핑을 열정적으로 하기도 했다. 어찌나 매장을 돌아다니고, 온라인몰이란 몰도 다 검색하며 부모님께 괜찮냐는 질문을 쏟아내니, 그렇게 순하디 순한 울 부모님은 나에게 쀅 소리를 지르며, “대충 해라 대충! 뭘 그렇게 고르고 앉았니!”라고 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그동안 나의 공간을 채울 일이 없었고, 나의 취향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독립은 그야말로 나에 대한 탐구와 같았다고 할까. 행위는 쇼핑이었지만, 그건 나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고뇌였으며, 나의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들이었다. 

침대 커버는 무슨 색으로 하고 싶은지, 가구의 프레임은 화이트가 좋은지, 블랙이 좋을지, 냉장고에는 어떤 음료와 음식으로 채울지, 심지어 쓰레기통은 어떤 디자인을 고를지. 그야말로 독립은 나에 대한,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인생 이벤트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독립하기 전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은 부모님의 취향이자, 그들의 향이 강한 곳이었다. 내가 덮던 꽃이불도, 꽃 벽지도, 고급미 철철한 엔틱 가구도 나의 의견이 들어간 것은 전혀 없었다. 공간뿐이랴, 독립된 공간에서 채우는 시간은 또 어떠하리! 10첩 반상 아침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나는 심플한 아침 식사를 선호하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조용한 시간을 차분히 즐기기도 참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무료함을 달래는 나의 행동은 무엇인지, 빨래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장보기는 얼마나 하는지 등등 독립 후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기댈 곳 없는 곳에서의 나는 내가 겪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개인이었으며, 훨씬 믿음직스럽고, 신뢰가 갔다. 서툴지만 꽤나 멋스러운 일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에 스스로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책꽂이를 쭉 훑어보는 이 순간, 나의 취향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기다란 선반. 

혼자만의 공간이 점점 나를 닮아간다는 느낌. 그 공간이 곧 나임을 보여주는 오묘한 느낌. 

물질도 시간도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바로 독립이다! 



독립을 본격적으로 했다고 느낀 두 번째 공간, 친구들과 추억을 많이 쌓은 곳
파란 나무가 보여 더없이 좋았던, 나의 이야기가 시끄럽게 가득해지는 공간




<<독립 비하인드 스토리>>

나의 취향으로 채워진 냉장고 안은 맥주캔이 제일 환영을 받고 있다...ㅡ.ㅡ ㅎ 

양식보다는 한식을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청소 안 한다고 엄마한테 구박을 많이 받았었는데, 독립 후에 생각보다 깔끔하게 살고 있어 혼자 놀라고 있다. (내 기준에서의 깔끔함이지만....) 

티브이가 없는 집도 꽤나 좋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호불호가 강해져서 향후 누구와 함께 살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ㅎ 






작가의 이전글 영앤리치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