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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Apr 19. 2022

봄날의 이벤트 같은 산책, 남산 벚꽃길&성곽길

벚꽃을 만끽하지 못했다면 이 글로 즐겨봐요~

올해의 봄은 예상치 못하게 나에게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3월부터 시작한 쇼핑몰 팝업 매장 운영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대부분의 시간을 매장에 갇혀 지내게 되었고, 조마조마했던 코로나도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어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나의 봄은 그렇게 실내에서 팔 할을 보내며 지나가는 듯했다. 격리도 해제되고 밀렸던 업무를 보기 위해 서울 사무실을 들렸다. 사무실도 지하에 있어 창 밖 풍경은커녕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일하게 되는 곳이다. 이렇게 나의 봄은 그냥 지나치는 것인가... 얼핏 버스에서 보던 풍경이 새삼 놀랍던데, 벚꽃이 사방팔방 피었던데, 그 나무 아래에 나의 몸을, 두 눈을 두지 못하고 지나간단 말인가.

괜히 억울하고 울적했다. 이렇게 봄을 그냥 보내버리면 멀리 떠나는 친구가 인사 한 번 없이 가버리는 것과 같은 서운함이 들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얼른 일을 마무리하고 남산길로 퇴근을 해야겠다. 집을 남산길로 가야겠어!' 갑작스럽게 정한 스케줄이었다. 운이 좋게도 사무실에서 집까지 남산길이 연결이 된다. 그래서 가끔 시간 여유가 되면 남산길로 출퇴근을 할 때가 있다. 살짝 피곤했지만 어떻게든 이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오후 5시. 좀 늦은 시간인가? 그래도 해는 떠 있으니 풍경을 구경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간 남산길. 다음날 비 소식도 있어 살짝 우중충한 날씨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벚꽃은 만개해 있었고, 흐린 날씨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실내에 격리되어 있는 동안 벚꽃은 수없이 폈는지 바닥은 이미 벚꽃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늘과 땅에 알알이 박힌 연분홍의 향연. 살짝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랄까.


벚꽃이 울창한 남산길



눈이 감미로운데 귀도 달달했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를 틀어 이어폰을 꽂았다. 비현실 같은 기분이 더 비현실 같아지라는 마음으로! 근래 매장 운영, 재고 관리, 물품 충당, 판매까지, 일에 매달려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터라 이런 산책이 생각보다 큰 쉼으로 다가왔다. 원래도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랜만에 근사한 풍경을 곁에 두고 걸으니 이벤트가 따로 없다.


눈에 담느라, 폰에도 담느라 바쁜 산책이기도 했다.

(실제 보는 것만 못하겠지만 사진으로라도 남산 벚꽃길을 즐겨봐요~)



햇빛이 쨍하지 않은 날이었지만 오히려 운치가 있었던 것 같다.


작은 연못에 수북이 쌓인 벚꽃 꽃잎들



바닥과 하늘 가득 벚꽃 만발


집으로 가는 길의 여정만 즐기려고 했지만 갈 때마다 보이는 장관에 쉽게 귀가할 수가 없어 다른 길의 산책길도 무작정 걷고 걸어 점점 고도가 높아져 갔다. 그렇게 서울의 전경까지도 눈에 담아 보았다. 퇴근시간이 되어 도로가 빨갛게 변해버린 풍경이었다.


남산 산책길의 시작은 국립극장을 지나쳐 올라오면 된다.

올라오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고 한쪽으로는 잘 꾸며진 정원이 보인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늘 다양한 꽃들로 예쁘게 단장이 되어 있는 화단이다.


버스정류장을 기점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 길은 좀 더 가파르고 올라가는 길이다. 계속 올라가면 남산타워를 갈 수 있다. 벚꽃나무의 키가 크고 울창하다. 그래서 하늘 가득한 벚꽃 나무길을 만끽할 수 있다. 오른쪽 길은 완만하게 걷는 산책길이다. 자전거나 버스가 다닐 수 없는 진정한 산책길이다. 계속 가다 보면 명동 및 남대문 일대가 나온다. 왼쪽보다는 벚꽃나무가 키가 작고 아담한데 아기자기하다. 개나리 및 다양한 수목이 보이고, 졸졸 흘러가는 물길이나 연못이 보여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두 갈래의 길이 같은 듯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각각 오른쪽, 왼쪽 초입길 모습. 입구부터 다른 모습을 보이는 듯 하다.



남산길을 끊임없이 걷다 어둑해지는 하늘에 이제는 진정 귀가를 해야겠구나 싶어 발길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성곽길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 성곽길이 또다시 발을 잡았다! 오래된 돌담길과 함께 어우러진 꽃나무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하! 언제 집으로 간단 말인가.


성곽길을 따라 핀 벚꽃길, 저녁의 가로등 불빛과 함께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본 성곽길은 약수역 혹은 동국대 역에서 갈 수 있는 길이다. 남산 초입길 국립극장 맞은편 반얀트리 호텔을 지나 성곽길 산책길로 들어서면 이 길을 만날 수 있다. 고도가 높아 서울의 전경과 함께 오래된 돌담, 꽃나무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서울을 지키던 오래된 성곽과 함께 높은 호텔 빌딩이 보이는 매력적인 풍경



어둑 해지는 그늘 아래에 조명을 받은 꽃나무는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한참을 앉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감정이 말랑 말랑해지는 빛과 풍경,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올해의 봄은 예상치 못하게 나에게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혼자 본 것이 사뭇 아쉬워 글을 남겨 보았다. 내년에는 이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걸었으면 한다. 글을 쓴 시점은 이미 벚꽃이 많이 지고 푸르름으로 변하고 있을 것이다. 다음 기회에 여유가 된다면 꼭 한 번 걸어보시길! 1부 남산길, 2부 성곽길 어떠신지?!


* 사진 찍은 날 : 2022년 4월 12일 (남산 벚꽃 만발, 바닥에도 꽃잎이 많이 떨어진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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