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신사들 (by 루이자 메이 올콧)
그들은 계속해서 말 두 마리와 소 여섯 마리, 돼지 세 마리, 올더니 종 젖소 ‘보시’를 보러 갔다. 보시는 뉴잉글랜드에서 송아지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토미는 요란하게 흐르는 작은 개울에 돌출해 자란 어떤 오래된 버드나무로 네트를 데리고 갔다. 울타리에서 큰 나뭇가지 세 개 사이에 있는 널따란 틈새 안으로 기어오르기가 쉬웠다. 큰 가지에서 해마다 무더기로 뻗어 나온 잔가지는 초록색 덮개가 되어 머리 위에서 바스락거렸다. 여기에 작은 자리들이 만들어졌고 벽장처럼 움푹 들어간 장소는 책 한 권이나 두 권, 분해된 배 모형, 반제품 호루라기 몇 개를 보관하기에 넉넉했다.
“여기가 데미와 나의 비밀 장소야. 우리가 만들었어. 그리고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올라올 수 없어. 데이지는 빼고, 걔는 올라와도 상관없어.”
토미가 털어놓았다. 네트는 졸졸 흐르는 갈색 물과 초록색 아치 위를 흥겹게 바라보았다. 아치 위에서 벌들이 공기를 달콤하게 물들이는 길고 노란 꽃을 맘껏 먹으면서 노래하듯 윙윙거렸다.
“아, 정말 아름답다!”
네트가 감탄했다.
“네가 나를 가끔 여기 올라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길 바라. 살면서 이런 멋진 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내가 새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여기서 매일 살 수 있잖아.”
“여기 진짜 괜찮지. 데미가 허락한다면 여기 와도 돼. 아마 걔도 괜찮다고 할 거야. 어젯밤에 걔도 네가 좋다고 말했거든.”
“그랬어?”
네트는 기뻐서 미소 지었다. 데미는 일단 바에르 교수의 조카이고 한편으로는 정말 진지하고 성실한 친구이기에 그의 관심은 다른 애들에 비해 가치가 있는 듯했다.
“그래. 데미는 조용한 녀석을 좋아해. 그리고 걔처럼 네가 책에 관심이 있다면 걔와 너는 잘 어울릴 것 같아.”
기뻐서 홍조를 띠던 네트의 얼굴이 마지막 말을 듣고 불쌍하게도 고통스럽게 어두워졌다. 그리고 말을 더듬었다.
“나는 잘 못 읽어. 배울 시간이 전혀 없었어. 자나 깨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돌아다녔거든. 잘 알잖아.”
“나는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읽고 싶을 때는 잘 읽을 수는 있어. 그런데 열두 살이나 됐는데 책을 못 읽는다니!”
토미는 놀란 눈을 하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래도 악보는 읽을 줄 알아.”
네트는 자신의 무지를 실토한 것 같아 꽤 속상해하며 말꼬리를 이었다.
“나는 못 읽는데.”
토미의 말투가 존경스럽다는 듯하여 네트는 대담하고 야무지게 덧붙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뭐든지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고 배울 셈이야. 전에는 한 번도 이런 기회가 없었거든. 바에르 교수님은 엄하시니?”
“아니. 조금도 화내지 않으셔.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시고 우리가 어려운 고비를 넘도록 격려를 해주시지. 안 그런 사람들도 있잖아. 나를 가르친 다른 선생님들은 안 그랬어. 우리가 하나라도 틀리면 머리를 쥐어박곤 했으니까!”
토미는 아주 후하게 맞은 꿀밤으로 아직도 얼얼한 듯 자신의 정수리를 문질렀다. 그것이 그가 ‘다른 선생님’과 한 해를 지내고 쌓은 유일한 추억이었다.
“나 이것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네트는 책들을 살피다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면 조금 읽어봐. 내가 도와줄게.”
토미는 네트를 도와주려고 자리를 잡았다.
네트는 최선을 다해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누구 못지않게 곧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을 친절하게 격려하는 토미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앉아 온갖 종류의 일에 관해 소년답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트는 아래 개울 반대편에 있는 밭들에 무엇을 심는지 궁금했다. 밭들은 많았고 작은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토미는 정원 손질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것들은 우리 농장이야. 각자 자신만의 밭이 있어.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식물을 키우는 거지. 대신 서로 다른 종을 골라야 해. 그리고 작물이 자랄 때까지 바꾸면 안 돼. 우리는 여름 내내 작물을 잘 키워야 해.”
“너는 올해 무엇을 기를 거야?”
“음, 소에게 먹일 콩을 기르려고. 키우기 제일 쉬운 작물이거든.”
네트는 참을 수 없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토미가 모자를 뒤로 밀고 손을 주머니에 넣고 느릿느릿 말하는 품새가 바에르 교수님을 도와 집을 관리하는 사일러스를 은연중에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 웃을 필요까지는 없잖아. 콩은 옥수수나 감자보다 엄청나게 키우기 쉽단 말이야. 작년에는 멜론을 길렀거든. 그런데 벌레들 때문에 정말 성가셨어. 오래된 것들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 익지 않았을 거라고. 신선한 멜론 하나에 조그맣고 흐물거리는 거 두 개 말고는 얻은 게 없었어.”
토미는 마지막 말을 다시 사일러스처럼 말했다.
“옥수수도 잘 자라는 것 같은데.”
네트는 웃은 걸 사과하듯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렇지. 하지만 너는 앉으나 서나 온종일 괭이질을 해야 할 거야. 심은 지 6주인 콩은 한 번 정도만 하면 조만간 익는단 말이야. 내가 제일 먼저 말했으니까 내가 콩을 심을 거야. 스터피가 심고 싶어 했지만, 걔는 완두콩을 키워야 해. 완두콩은 뽑기만 하면 되는데 걔가 그것을 해야 해. 스터피는 정말 많이 먹거든.”
“나도 내 정원을 가질 수 있을까?”
네트는 옥수수 괭이질조차도 신나는 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바에르 교수가 산책을 끝내고 돌아와 나무 아래 있었다. 그는 낮에 틈틈이 모든 사내아이와 일일이 담소를 나누기 때문에 두 소년을 찾으러 왔다. 바에르 교수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다음 주에도 신나는 출발을 하도록 아이들을 돕는다고 믿었다.
공감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플럼필드의 아이들은 모두 서로를 공감했다. 모든 소년은 바에르 교수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느꼈다. 어떤 아이들은 여자보다 남자인 바에르 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 준비가 더 되어 있었다. 특히 남자 대 남자로서 자신의 희망이나 계획에 관해 이야기 나누길 좋아하는 좀 더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더 그랬다. 나이 어린아이들은 모든 경우에 조를 자신의 엄마이자 고해 신부로 여기지만 큰아이들은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만 본능적으로 조에게 의지했다.
그들만의 둥지에서 내려오다가 토미가 개울에 빠졌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그는 차분히 물에서 스스로 나와 몸을 말리려고 집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떴다. 이로 인해 네트는 바에르 교수가 바랐던 대로 교수 옆에 혼자 남게 되었다. 산책하면서 그들은 정원의 작은 땅으로 갔다. 바에르 교수는 네트에게 작은 ‘농장’을 주었고 가족이 먹을 음식이 수확에 달린 것처럼 진지하게 농작물을 토론했다. 이 유쾌한 주제는 다른 주제들로 이어갔다. 네트의 머리에 새롭고 유용한 생각들이 많이 차올랐다. 메마른 땅이 따듯한 봄비를 빨아들이듯 감사하게 그 생각들을 받아들였다. 저녁 시간 내내 그는 그 생각들을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종종 ‘저 정원 얘기 좋아요. 선생님, 다시 토론해요.’라고 조르는 듯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에르 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이의 소리 없는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소년들이 모두 일요일 저녁 담소를 나누고자 조의 응접실에 모였을 때 바에르 교수는 정원을 산책하면서 생각했던 주제를 선택했다.
네트는 바에르 교수의 주위를 돌아보면서 학교보다는 멋진 한 가족처럼 보인다고 느꼈다. 사내아이들은 난로를 빙 둘러 넓게 반원을 그리고 앉아 있었다. 의자나 깔개에 앉기도 했다. 데이지와 데미는 이모부인 바에르 교수의 무릎 위에 앉았다. 로브는 엄마의 안락의자 뒤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아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로 지루할 때는 안 보이게 졸 수 있었다. 모두 무척 편안해 보였고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산책을 오래 해서 모두 쉬고 싶어 했다. 그러나 거기 있는 모든 소년은 이름이 불려 자신의 견해를 말해야 하는 것을 알기에 답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도록 신경을 곤두세워 준비하고 있었다.
바에르 교수가 옛날이야기하는 방식으로 토론을 시작했다.
“옛날에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정원을 가진 훌륭하고 현명한 정원사가 있었어. 아주 멋지고 사랑스러운 정원이었지. 정원사는 가장 뛰어난 기술과 세심한 배려로 정원을 잘 보살폈고 최상으로 유용한 온갖 작물들을 키웠어. 하지만 이런 질 좋은 정원에도 잡초가 자랐단다. 자꾸 땅이 나빠졌고 심었던 좋은 씨들이 싹을 틔우지 못했어. 그를 도와주는 보조 정원사가 많이 있었는데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서 임금을 많이 받은 보조 정원사들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맡은 일을 소홀히 해서 정원이 엉망이 되도록 방치를 했어. 정원사는 무척이나 화가 났지. 하지만 정원사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어서 풍요로운 수확물을 얻으려고 수천 년을 일하고 기다렸어.”
“정원사는 틀림없이 엄청나게 늙었겠네요.”
마치 한마디라도 놓치면 큰일 날듯 이모부 바에르 교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데미가 끼어들었다.
“쉬, 데미, 동화잖아.”
데이지가 속삭였다.
“아니야, 풍차 같은데.”
데미가 반박했다.
“풍차가 뭐야?”
호기심이 가득 담긴 큰 목소리로 토미가 물었다.
“데미, 알면 토미에게 말해주렴. 하지만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만 말해야 한다.”
바에르 교수가 일렀다.
“알아요, 할아버지가 얘기해 주셨단 말이에요! 우화가 풍차잖아요. 뭔가를 의미하는 이야기요. 내가 들은 <끝없는 이야기>가 풍차지요.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는 영혼을 의미하거든요. 그렇죠, 이모?”
데미는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려고 열을 냈다.
“그렇구나, 얘야. 그런데 이모부의 이야기는 풍자란다. 확실해. 그러니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듣고 배우렴.”
무슨 일이든 늘 함께하면서 어떤 소년 못지않게 그 일을 즐거워하는 조가 말을 받았다.
데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바에르 교수는 지난 5년 동안 무척이나 향상된 최고의 영어 실력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이들도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이 훌륭한 정원사는 자신의 하인 한 명에게 작은 땅을 여남은 개 주었어. 하인 보고 최선을 다하라고 이르면서 무엇을 키울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지. 이 하인은 부자도 아니었고 지혜롭지도 않았고 농사일을 잘 알지도 못했지만, 정원사를 돕고 싶었어. 정원사가 두루두루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줬거든. 하인은 그 작은 땅들을 기쁘게 받고 일을 시작했어. 땅들의 모양과 크기가 아주 가지각색이었어. 좋은 흙이 깔리기도 했고 돌무더기도 있었지. 기름진 땅에는 잡초가 금방 무성해지고 메마른 땅에는 돌들로 꽉 찰 지경이라 모든 땅을 아주 세심하게 보살펴야 했어.”
“잡초랑 돌 말고는 무엇이 자라고 있었어요?”
네트는 너무 흥미로워서 수줍음도 잊고 그들 앞에서 질문을 꺼냈다.
바에르 교수가 친절하게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꽃이 자라고 있었어. 가장 척박하게 내버려 둔 작은 화단에도 삼색제비꽃 한 줄기나 목서초 잔가지라도 피었단다. 장미도 피고 스위트피도 피고 데이지도 자랐어.”
그는 자신의 팔에 기대고 있는 꼬마 소녀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
“다른 땅에는 온갖 별난 식물들이 있었어. 조약돌과 잭의 콩나무처럼 타고 오르는 덩굴 식물도 있었어. 그러나 많은 양질의 씨들이 싹을 피우기 시작했어. 평생을 바쳐 정원에서 일했었던 현명한 노인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풍차’ 부분에서 데미는 호기심 많은 새처럼 자신의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마치 뭔가가 의심스러워 감시하는 듯 이모부 얼굴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바에르 교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어린 친구와 다른 아이들의 얼굴을 엄숙한 표정으로 휙 둘러보았다. 조는 남편이 이 작은 정원 일대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에르 교수는 그런 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지만 애처로운 표정으로 대신했다.
“내가 말한 것처럼 화단 중 몇 개는 경작하기 쉬웠어. 데이지를 돌보듯이 말이야. 다른 화단은 아주 어려웠어. 특별히 햇볕이 잘 드는 작은 화단이 있었지. 꽃들뿐만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로 가득 찼을 수도 있어. 화단을 가꾸는 데 딱히 고생할 필요가 없었단다. 남자가 씨를 뿌릴 때, 음, 이 화단에 멜론을 심는다고 해보자. 작은 화단이 멜론을 소홀히 한다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될 거야. 매번 경작에 실패했지만, 그 남자는 안타까워서 계속 시도했어. 그 화단은 한마디뿐이었지. ‘잊어버렸어요.’”
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고 토미를 쳐다보았다. 토미는 ‘멜론’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가 제일 잘 써먹는 자신의 변명이 들리자 고개를 숙였다.
“우릴 말하는 거 다 알았어요! 이모부가 그 남자고 우리가 작은 정원들이잖아요. 그렇죠, 이모부?”
손뼉을 치면서 데미가 외쳤다.
“짐작했구나. 자, 가을에 나의 화단 열둘, 아니 열세 개에서 풍성한 수확물을 거둘 수 있도록 이번 봄에 내가 너희들에게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지 한 사람씩 나에게 얘기해 보아라.”
바에르 교수는 틀린 숫자를 바꾸고 네트에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저희가 엄청나게 많이 먹고 뚱뚱해지길 바라시는 게 아니라면 저희한테 옥수수나 콩이나 완두콩 씨를 심으면 안 돼요.”
재미난 생각이 떠올랐는지 동그랗고 둔하게 생긴 얼굴이 갑작스레 밝아지면서 스터피가 말했다.
“진짜 씨를 말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잘 자라도록 하는 일을 말씀하시는 거지. 잡초는 결점이야.”
데미가 답답해했다. 데미는 이런 종류의 대화에 익숙했고 아주 좋아했기에 대게는 이런 토론에 앞장섰다.
“그래, 너희들 각자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하고 나에게 말하렴. 그러면 내가 그것이 자라도록 도와줄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토미의 멜론처럼 열매는 하나도 없이 나뭇잎만 무성할 테니까.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할 거야. 조 선생님에게 화단에 무엇을 심을지 물어봐야겠구나.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정원의 일부이니까. 우리가 주님을 힘껏 사랑한다면 우리의 선생님을 위해 풍요로운 수확물을 거둘 거야.”
바에르 교수가 말했다.
“나는 내 화단 전체를 내가 얻을 수 있는 인내라는 가장 큰 작물을 심는 데 바칠 거예요. 그게 가장 필요한 것이거든요”
조가 말했다. 그녀가 너무 진지해서 사내아이들은 자신들 차례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진심으로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 몇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들이 조의 남은 인내심을 빨리 바닥나게 하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프란츠는 인내를 원했다. 토미는 끈기, 네드는 온화에 관심이 있었다. 데이지는 근면을, 데미는 ‘할아버지만큼의 박식’을 심기로 했다. 네트는 자신을 위해 바에르 교수님이 선택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선택된 씨를 모두 심고 싶다고 주뼛거렸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같았다. 인기가 제일 좋은 씨들은 인내, 온화, 관용이었다. 어떤 소년은 일찍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그런 종류의 씨앗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지 못했다.
“나는 저녁 식사만큼 수업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가 없어.” 불쌍한 스터피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절제를 심을 거야. 밭을 갈고 물을 주겠지. 절제를 아주 잘 키워서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 누구도 과식으로 아프지 않도록 할 거야. 스터피, 네가 마음을 단련한다면 네 몸처럼 정신도 배가 고플 거야. 그럼 너는 여기 내 작은 철학자처럼 책을 사랑하게 될 테지.”
바에르 교수는 데미의 잘생긴 이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얘야, 너도 욕심이 많아. 그래서 스터피가 조그만 위에 케이크와 사탕을 채우고 싶어 하는 만큼 너도 작은 머리에 동화와 상상을 채워 넣고 싶어 하지 않니. 둘 다 해롭단다. 좀 더 나은 것을 해봤으면 좋겠다. 연산의 재미는 <아라비안나이트>의 반도 안 되지. 나도 잘 알지만, 연산도 아주 유용하고 이제 배워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부끄럽게 여기면서 후회할 거야.”
“그렇지만, <해리와 루시>하고 <프랭크>는 동화책이 아닌걸요. 정치, 경제, 사회의 지표를 다 알 수 있어요. 벽돌을 쌓거나 말굽에 편자를 박는 유용한 방법도 나와 있어요. 제가 그 책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렇지, 데이지?”
데미는 데이지가 자기편을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두 책은 그렇지. 그런데 너는 <해리와 루시>보다는 꽤 자주 <롤랜드와 메이버드>를 읽던데? 네가 <프랭크>를 <신드바드>의 반만큼 밖에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자, 내가 너희 둘과 작은 흥정을 하나 해야겠다. 스터피는 하루에 세 번만 먹고 너는 일주일에 이야기책 한 권만 읽는 거야. 그러면 내가 너희들에게 새 크리켓 경기장을 마련해 줄게. 너희들이 새 경기장에서 크리켓을 하려면 약속을 지켜야 해.”
이모부 바에르 교수가 그런 제안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놀이 시간에 스터피는 뛰어놀기 싫어했고 데미는 매번 책 읽기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크리켓을 좋아하지 않아요.”
데미가 반대했다.
“지금은 좋아하지 않을지 몰라도 경기를 한번 해보면 좋아하게 될 거야. 더군다나 너희들은 너그러워지고 싶고 아이들은 경기하고 싶어 해. 너희들이 결정한다면 친구들에게 새로운 경기장을 선사하는 거야.”
옳은 말이라 생각한 두 아이 모두 그 흥정을 받아들였고 나머지 아이들은 무척이나 만족했다.
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모두 함께 노래를 불렀다. 밴드 연주를 할 때 네트는 무척 기뻤다. 조는 피아노, 프란츠는 플루트, 바에르 교수는 비올라, 네트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아주 단출한 작은 연주회였지만, 모두 즐기는 듯 보였다. 나이 든 에이지아도 구석에 앉아 이따금 누구보다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함께 노래했다. 일요일에 이 집에서는 주인과 하인, 노인과 청년, 흑인과 백인이 노래를 서로 나누며 그들 모두의 아버지 신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노래가 끝나고 모두 바에르 교수와 악수했다. 조는 다 큰 프란츠부터 꼬마 로브까지 아이들 모두에게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일일이 입맞춤을 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잠자리로 우르르 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