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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 Jul 21. 2023

미워할 수 있는 용기

  미워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미워하면 내 안에 독소가 쌓인다는 것을 안다.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할 때 네 개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미워하는 감정에 손상되길 바라는 상대 보다 내가 더 대미지를 입는 것을 본다. 


  미운 감정들이 쌓이면 나는 병이 나곤 했다. 그래서, 서둘러 용서하고 화해를 청했다. 마음이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잘못을 한 사람은 그때서야, 내가 사과하려고 했는데, 멋쩍은 듯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엎드려 절 받는 사과 의식이 끝나고 나서야 내 몸은 회복되곤 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 정신을 기만하면서.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은 마음 때문에, 불편한 거리를 두는 관계로 그 사람을 나의 골목 끝에 어정쩡하게 세워 두면서. cpu 속도보다 빠른 무의식이 내뱉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성급히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안 좋은 감정들이 샘솟았고, 감정들은 말로 변환되어 주워 담을 수 없는 후회를 남겼다. 심한 말도 아니었는데, 나는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이라며 괴로워했다. 쿨하게 용서하거나, 아예 손절하거나, 이도 저도 못하고 이중적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이 싫었다.


  얼마 전, 나는 결코 해본 적 없는 손절을 시도했다.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내 진심은 한순간에 흙탕물을 뒹굴었다. 사람의 관계를 너무 좋게만 보아왔던 것인지, 좋은 사람만을 만나온 것인지. 후자라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전자라면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아온 것이었다. 살면서 손절을 결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관계를 끊지 않고 이어오던 미련한 나였는데, 충격적인 관계를 만나자 저절로 그 병은 고쳐진 것처럼 보였다.


  하루 전화를 받지 않았을 뿐인데, 그는 내 뒷얘기를 하고 다니기에 바빴고, 고스란히 그 얘기들은 내 귀로 들어왔다. 차단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안 되면 걱정부터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 같은데, 걱정을 내포한 교묘한 뒷말에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밉다는 감정이 이상하게 들지 않았다. 그 사람이 진심 가여웠다.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단지, 내가 연락을 받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면 격분하는 그가 안타까웠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전하고 다닌다는 그 순간마다 나는 전화를 걸어 그가 지금 무얼 놓치고 있는 것인지 일일이 설명해주고 싶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면 내가 친절히 알려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가 그렇게까지 공감 능력이 없는지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차단하기 전에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을 해주었을 거라고, 그렇게 했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텐데, 이해할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그가 가진 것을 빼앗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방향을 빨리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 사람과 함께 휩쓸려 갔으리라는 생각이 들면 지금도 아찔하다. 내가 아무리 똑바로 서 있으려고 해도 잘못된 관계는 나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달았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내가 들인 시간과 마음이 후회됐지만, 지금이라도 돌아설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고 여겼다. 사실, 나는 그로부터 돌아선 것일 뿐,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옆에 서 있는 관계들을 내가 빼앗은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스스로를 계속 괴롭혔다. 그 사람이 나로 인해 아플까 봐 걱정이 되었고, 잘못을 여전히 모르는 것이 안타까웠고, 그동안 좋았던 일들도 한꺼번에 휴지통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안 좋은 감정들이 사라졌다가 다시 밀려오기를 반복했고, 불안한 감정을 동반했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내 험담을 하고 있을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복합적인 감정들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그 속에는 미워하는 감정이 없었다. 점점 실체 없는 불안이 커지면서, 무섭다는 감정도 불러왔다. 도대체, 왜 나는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가?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감정 속에 있을 때, 나는 내가 조금씩 지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혼란 그 자체로 느껴졌다. 회오리바람처럼 뭉쳐진 먼지 한 움큼처럼. 그런 상태로 나를 지속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잊으려고 애만 쓰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렇게, 지워버리면 지워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 그 사람 이야기가 들리면 나는 아팠고 나는 다시 카오스가 되었다. 곰곰이 카오스의 정점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온 것이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의 습관 하나가 표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어쩌다 보니 나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고, 상대방이 나로 인해 기분이 안 좋은 것을 견디지 못했다. 타인을 위해 나 자신을 학대하던 습관은 기질과 환경이 만나 형성된 결과물이었는데, 그것이 습관처럼 나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적으로 아무리 그렇게 살지 말자고 결심해도 나는 그 오랜 습관을 놓지 못했다. 늘 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몰아세우기 바빴던 나는 이번에도 내가 그의 관계를 뺏은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했다.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물론, 순간순간 그런 감정이 안 들었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지만, 대부분의 감정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죄책감이었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말 내가 빼앗은 것인지. 나는 그저 내 자리를 지켰을 뿐이었고 관계가 내 옆에 남았을 뿐이었다. 빼앗은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지켜낸 것이었다. 생각이 이곳에 이르자, 나는 이제야 그를 진정으로 미워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했던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을 비난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이전에도 미워하느라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깨지는 것이 싫었고, 상대방이 나를 안 좋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미움받지 않으려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타인의 미움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워하느라, 이미 너덜너덜해진 관계도 이어 붙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한동안 유명세를 탔던 적이 있다. 그래서, 미움받을 용기는 누구나 가져야 할 지침처럼 여겨졌다. 책만 읽고 나면 미움받을 용기가 저절로 생길 것처럼 책의 마지막 장을 닫으며 각오를 다지곤 했던 지난 날들. 자기 계발서를 아무리 읽어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책을 읽은 순간부터 그렇게 살아야지 결심한 순간부터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각오만 다지면 저절로 행동이 따라온다는 듯이.


  우울도 습관이라는 말을 들었다. 과거의 상처가 우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일이 우울하게 만드는 것인데,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에 습관처럼 우울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그것을 알게 되면, 현재에만 집중하게 된다. 내가 나 스스로를 어쩌지 못한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내가 만든 틀에 갇혀 버린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나는 현재진행형인가? 미워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타인의 미움을 견딜 수 있을까? 미움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실체 없는 미움과 대면하려 했을까? 나는 당당히 미워해 보기로 했다. 그의 잘못은 내가 포용할 수 있는 한계선을 넘은 것이었다. 사과할 기회는 충분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손을 내밀어 그를 거짓으로 용서한다면, 나는 불편한 짐을 구석으로 밀어놓고 눈을 감으려 애쓰는 상황에 이를 것이 자명했다. 세상의 잣대와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한 잣대 안에서의 문제였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자책으로 괴롭히지 않고 나를 지키기로 했다.


  이제야,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의 심장은 규칙적인 소리를 찾았다. '이제야',라는 단어가 내게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미워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밀어내기만 했던 것인지. 마음껏 미워한 뒤에야 나는 그를 마음껏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냥, 사고처럼 살다 보면 그런 관계들도 찾아오는 법이다. 나는 미워할 수 있는 마음을 이제야 바라보며, 미워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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