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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예 Jun 02. 2020

이야기의 나라 멕시코

멕시코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내가 본 멕시코는 풍요로운 나라였다. 물질적인 의미의 풍요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에서 먹은 타코, 잔도 없이 병째 마신 테킬라(멕시코 친구들을 따라한 건데, 병을 내려놓기도 전에 속이 뜨거워졌다),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레게톤, 처음 본 사람도 오랜 친구처럼 반겨주는 따뜻함 등등. 내 기억 여러 장면 속 멕시코는 문화적, 정신적으로 충만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렇지만 멕시코를 ‘풍요의 나라’라고 표현하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들의 말, 이야기에 있다. 내가 만난 멕시코인들은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하다.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문득 스친 생각일 수도 있고, 최근 그에게 고민을 안겨준 그만의 화두일 수도 있다. 이야깃거리가 무엇이든 간에 멕시코인들은 그것을 명확하게, 거리낌없이 풀어놓았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말은 멕시코에 대한 수업이었다. 어느날 멕시코인 친구에게 ‘여기는 사람들이 말을 정말 재밌게 한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웃으면서 ‘우린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내가 들어본 ‘일반화’된 문장 중 가장 사랑스러운 말이었다. 


때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펼쳐지는 상대의 이야기에 오히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이야기가 끝나면 비로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멕시코인들의 이야기는 나를 다른 세상으로 잠시 데려가주는 마술이었다. 그 다른 세상은 그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그만의 ‘멕시코’였다. 그가 살아온 멕시코, 그가 말로써 재현하는 멕시코였던 것이다. 


이렇게 옮기다 보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은 그저 자기 삶의 작은 조각을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소중하게 모아 ‘내 눈에 비친 멕시코’라는 퍼즐을 맞춘 것이다. 멕시코인들은 그 퍼즐 조각을 있는 그대로 선물할 줄 아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로써 짧은 교환 학기 동안 ‘작고 소중한 나의 멕시코’가 완성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일을 좋아한다. 좋아하기도 하고,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멕시코에 가기 전에도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이야기의 나라 멕시코에서의 하루하루는 녹음기, 펜, 수첩이 없는, 정해진 일정도 없는 인터뷰의 연속이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세 조각을 기록해 본다. 






집 앞 카페 Quick coffee에서 만난 점원 (빠르게 친구가 되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대낮에도 혼자 밖에 돌아다니는게 어색했고 조금은 무서웠다. 그 와중에 나의 생명수인 커피가 너무 그리웠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 옆에 딸린 작은 카페 Quick Coffee에 들어가 떨리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갑자기 내 또래의 점원이 나에게 ‘서울에서 왔어?’하고 물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 순간 잘 숨기고 있었던 가장 큰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한국도 아니고 서울이라니. ‘어떻게 알았냐’는 나의 질문에 이 친구가 말했다. ‘멕시코인들은 마술사거든.’ 내가 그저 허허 웃으니 그가 덧붙였다. ’왠지 한국 사람 같았고, 한국에서 제일 큰 도시가 서울이니까 찍어봤어.’ 


내가 교환학생이고, 서어서문학을 전공한다고 말한 이후 카페에 갈때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중남미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최소 30분이 지나갔다. ‘문학은 건축 같은 거야. 머리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세워버리니까. 특히 멕시코랑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그래.’ 나에게 좋아하는 중남미 작가를 묻길래 가르시아 마르케스, 후안 룰포(룰포는 내가 머물렀던 할리스코 주 출신이다. 그래서 일부러 룰포를 꼽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이 친구는 룰포의 이름을 듣자 아주 반가워하더니 ‘그 사람들 소설은 마술이야. 근데 가끔은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거짓말보다 진짜 현실이 더 비현실 같을 때가 있다니까!’라고 거의 랩을 하듯 빠르게 말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당시는 스페인어로 말하는게 낯설기도 해서) ‘방금 네가 한 말 엄청 슬프다’라고 더듬더듬 답했다. 


이 친구가 알려준 멕시코는 책 속의 비현실과 책 밖의 현실 사이 경계가 흐릿한 곳, 이야기꾼들이 마술을 부리는 곳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마르케스의 소설을 읽고 마술적 리얼리즘에 빠져 지금 이 전공을 선택했다. 내 선택이 확인을 받은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내가 만난 멕시코인 친구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존재였다. 그치만 벅차오름과 동시에, ‘현실이 비현실 같을 때가 있다’는 그의 말에,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나를 세게 때렸다. 직접 보고 겪은 적도 없으면서 수많은 과제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을 언급했다니. 나는 순진했고, 그 순진함이 좀 부끄러워졌다. 




멕시코시티 시장에서 만난 가게 사장님


나는 3월 셋째 주에 멕시코시티를 여행했는데, 당시는 멕시코 언론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언급되기 시작하던 때다. 멕시코시티의 구도심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시장이 있었다. 익숙해진 과달라하라를 떠나 멕시코시티에 오자 갑자기 ‘관광객’이 된 나와 친구들은 시장의 한 가게 앞에 멈춰서서 멕시코 국기 모양의 자석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가게 사장님은 드디어 손님이 왔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바이러스때문에 외국인들이 다 떠나버렸어요.’ 


우리가 ‘걱정안되세요?’하고 묻자 사장님은 우리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20분이 넘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사는게 걱정이죠. 바이러스는 눈에 안 보이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건 다 신의 뜻인 거에요. 제 여동생이 작년에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었는데, 살고 죽고는 다 신이 정하는 거에요. 바이러스가 있든 없든, 신이 안데려가면 삶은 지속되는 거죠.’ 그리고 작은 가게를 손으로 휙 가리키며 덧붙였다. ‘여기가 내 삶이죠. 여기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Aquí está mi vida, y no pasa nada aquí)’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사장님의 말은 삶에 대한 비관도, 낙관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둘 중 어느 한 쪽이 아닌 것 뿐, 모든 문장 속에는 비관과 낙관이 묘하게 섞인 시선이 담겨 있었다. 바이러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밝음, 바이러스가 뭐든 간에 내일의 삶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이 공존했다. 여동생의 교통사고 얘기를 들으며, 어떤 현실이, 어떤 삶이 이 분을 운명론으로 이끌었을까 상상했다. 사장님이 잘 계실지 걱정된다. 가끔은 한국에서의 일상 속에 파묻혀 있다가도, 내일에 대한 그녀의 걱정이 당시보다 더 커졌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철렁하기도 한다.      




태권도장의 현지인 사범님


문화체육관광부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는데, 마지막 기사를 남겨두고 멕시코로 떠났다. 자연스럽게 마지막 기사는 멕시코에서 취재하고, 멕시코에서 작성하게 되었다. 케이팝, 한식 등 여러 주제 중 고민하다가 많은 멕시코인들이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태권도장과 연락이 닿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질문지를 작성했고, 너무 덥고 사람이 많아 답답했던 시내버스(30도에 가까운 날씨지만 버스에는 에어컨이 없다)를 타고 ‘미네르바’라는 동네로 향했다. 태권도장 역시 너무 더웠다. 사범님은 거의 녹아내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더니 ‘이정도가 덥다니!’하고 웃으며 물병을 건네고 창문을 열어주었다. 


이런 질문이 있었다. “한국은 멕시코와 매우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인데, 왜 하필 많은 멕시코인들이 한국의 무예를 배우는 걸까요?” “멕시코인들은 늘 ‘더 잘 살고싶다(salir adelante)’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이 바람은 현실이 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제대로 된 규율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열심히 일하자, 청결하게 생활하자’ 같은 기본적인 규율 말이에요. 태권도는 이러한 초석을 다지기 위한 작업이에요. 기초적인 변화를 위한 고단한 작업이죠.”


도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서너살의 멕시코 아이들이 어느덧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기본을 지키는 사람으로 성장해, 기본적인 규칙이 바로선 나라에 살기 위해 태권도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보는 나에게도 다가와 인사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 곳을 나서며, 멕시코는 지금도 좋은 곳이지만 앞으로 더 나은 곳이 되겠구나, 멕시코는 계속 나아가고 있구나 생각했다. 






나에게 멕시코는 솔직한 곳이었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전에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그 곳에선 편안하고 투명하게 다가왔다. 여길 경험하기 위해 이때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구나, 고생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 감정 중에서도 그리움을 제일 힘들어하고, 못참는다. 화도, 긴장도, 질투도 잘 조절하는데, 어떤 곳이 또는 누군가가 그립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타인을, 예전의 내 모습을 그리워한 적은 있지만 어떤 장소 자체를 떠나면서, 그리고 떠나 와서 이렇게까지 향수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듣지 못하고 떠나온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자라나는 그리움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타게 될,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 기록을 디딤돌 삼아 또 다른 멕시코인들의 이야기를 모으기 위해. 모든 것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으면,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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