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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의 숲 Oct 09. 2023

'지금 집은 너무 좁다'는 핑계

결혼을 하고 몇 년 정도 지나니 자연스럽게 양가 부모님들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렇습니다. 설날이나 명절에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바로 그 말.


"결혼은 안 하니?"와 함께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척들의 필수 질문 "그래서,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은 채로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는 부부라서, 최소한의 '여건'이 준비된 이후에 아이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보증부 월세'인 오래된 아파트의 실평수 12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집에서 둘이 아닌 셋이 북적대는 상상은 하기 싫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과 성장 환경의 탓도 분명 있었습니다. 편안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탓에, 누구나 인정할 만한 '그럴듯한' 집(환경)은 행복하게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집의 평수와 낡은 아파트인 것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회사의 지인은 아파트도 아닌 낡은 상가 주택의 원룸에서 아이를 낳았고, 지금도 서울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잘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러한 선택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예민한 사람들,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는 부류는 제 지인과 같은 행동은 '리스크'라고 판단하니까요. 저 또한 그런 부류였습니다. 아이를 가지면 재정적인 성장은 거기서 멈춰버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통계 자료들이 이를 방증해주고 있습니다. 30대 초반의 부부가 아이가 없을 때 돈을 모아두지 않으면 굴릴 목돈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이죠.


장모님이 어느 날 물었습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돈 때문에 그러냐?"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니요~ 아무리 그래도 돈 때문에 그러겠어요~"라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답변했지만 사실 조금 울컥했습니다. 돈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지요. 여유가 많다면 당장 낳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었을 테니까요.


부모님들의 재정적 지원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에 무기 없이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서바이벌 게임에서 무기는 돈을 주고 구비해야 하는데, 무기를 살 돈이 모이기까지는 잘 피해 다녀야 합니다. 저와 아내는 잘 피해 다니는 중이었고, 아직 무기를 살 재정적 여력은 부족했습니다.


30살이라는 나이에, 남자로서는 이른 결혼을 했지만, 신혼 생활이 늘 즐겁지는 않았던 이유입니다. 마음 한 구석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근심과 걱정이라는 녀석들이 숨어있었기 때문입니다.


2016년 겨울, 그렇게 저와 아내는 아이를 낳는 것을 미루고, 현재를 즐기면서, 안정적인 재정 상태 마련을 위한 삶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직장을 열심히 다니는 것 밖에는 별다른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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