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글에 깃든 목소리, 들리나요?”

작가의 선(線)

by 피터팬의 숲

머리가 지끈거리는 저녁마다 와인 한 잔과 함께 독서를 하면, 가끔 책의 저자가 내게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주인공 성격은 맘에 들어? 첫사랑과 비교하진 말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건 아니지?’

‘숨겨둔 복선은 찾았어? 쉽잖아. 설마 너...’

‘자 이건 말이야, 구구절절….’ 이렇게 말이다.

책 밖으로 울려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작품에 더 몰입하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작가의 선(線)을 상상한다. 다양한 이야기를 선물해 준 ‘작가의 형태’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상상하는 작가의 형태라는 것은 목소리일 수도 있고 얼굴 모양이나 옷매무새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를 쓴 작가 ‘마르크 로제’로부터는 평소 노령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걱정이 많은 남자의 향취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 내에서 동성애, 도보 여행 같은 톡톡 튀는 소재를 활용하는 걸 보면, 그가 걱정이 많지만 자유롭게 살고픈 가치관의 소유자가 아닐지 의심스럽다. 나는 실제의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고 들은 게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나는 그를 느낀다.

또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강박증이 있을 것만 같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200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을 추적해 만들었다는 그의 책 내용은 엄청나다. 그는 심지어 강의까지 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바쁜 사람이, 이토록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려면 보통 짜임새 있거나 치밀한 성격이 아니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책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온종일 누가 내 귀에 대고 따발총을 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다다다!

물론 요즘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작가의 사진은 물론이고 작가의 목소리까지도 찾기 쉬운 시대다.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로 작가의 외양과 목소리를 알게 되면 나만의 상상의 시간과 기회는 어떻게 되는가. 책과 글에서 들려오는 작가의 선(線)적 이미지는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의 권리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오디오북 서비스는 아쉬움을 남긴다. 연예인 또는 성우가 작가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담아낸 개성 있는 문체를, 책을 읽어주는 이질적 주체의 목소리와 이미지가 뒤덮어버린다. 물론, 작품의 분위기를 살린 목소리라면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진짜 작가’는 우주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상상의 자유’라는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내게 있어 상위에 자리하고 있다. 책이 내뿜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더해져 입혀진 숨소리가 작가의 숨겨진 또 다른 메시지이자 언어라는 믿음을 나는 오래도록 상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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