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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과정과 수십 번의 수정

by 자스민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만들어낸다’라는 의미 그 이상이었다. 처음 머릿속에서 번뜩였던 아이디어는 늘 완벽해 보였다. ‘이렇게만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라는 기대와 확신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종이에 그려보고, 재료를 잡아보고, 기계에 넣어 잘라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디자인은 늘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수십 번의 다듬음을 필요로 했다.

내가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는 도면을 그리는 일조차 서툴렀다. 레이저 커팅기에 맞는 선 굵기, 재단 오차, MDF 재료의 특성을 고려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작은 상자를 만들겠다고 도면을 그려도, 실제로 조립해 보면 치수가 맞지 않아 틈이 벌어졌다. 단단히 끼워져야 하는 부분은 헐겁게 빠져버리고, 깔끔하게 마감돼야 하는 모서리는 삐뚤어져 있었다. 그때마다 다시 도면으로 돌아가 치수를 수정하고, 또다시 재단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제품은 ‘쿠폰함’이었다. 카페에서 흔히 사용하는 쿠폰을 담는 작은 상자였는데, 겉으로 보기엔 단순해 보였지만 안쪽 구조는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쿠폰이 쏠리지 않고 정돈되게 들어가야 했고, 손님이 쉽게 꺼낼 수 있으면서도 매장 인테리어와 잘 어울려야 했다. 단순한 직사각형 상자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경사도를 주어 쿠폰이 앞으로 조금 기울어지게 설계했고, 손이 닿는 부분은 곡선으로 깎아내어 부드럽게 잡히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만 10번이 넘는 수정이 이어졌다.

때로는 ‘딱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라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 본 사장님들의 피드백은 늘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쿠폰이 잘 빠져나오지 않아요.”, “생각보다 깊이가 얕네요.”, “앞쪽이 벌어지네요.” 작은 지적 하나하나가 다시 도면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때 느꼈다. 디자인은 혼자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실제로 사용하면서 완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내 눈도 점점 달라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모양을 맞추는 데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성’과 ‘디테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치수 차이가 조립의 단단함을 바꾸고, 작은 곡선 하나가 사용자 경험을 달라지게 했다. 디자인은 거창한 영감보다 수십 번의 관찰과 수정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이 반복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재료를 잘못 재단해 수십 장의 MDF를 버려야 했던 날도 있었고, 새벽까지 붙잡고 있던 도면이 결국 다음 날 다시 전부 수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실패와 반복 속에서 ‘완성’이라는 순간은 더 특별해졌다. 내가 만든 도면이 딱 맞아떨어지고, 깔끔하게 조립된 제품이 내 손에 놓였을 때, 그 뿌듯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디자인은 끝없는 수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수정의 과정이 내 브랜드를 만들어주었다. 완벽한 한 번의 성공보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가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단순히 제품 제작 기술이 아니라, 문제를 직면하고 끝까지 다듬어가는 태도였다.

이제는 새로운 제품을 구상할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몇 번을 수정하게 될까?’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그 반복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수정을 거듭할수록 제품이 더 단단해지고, 내가 한 단계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십 번의 수정 끝에 완성된 제품을 고객이 손에 쥐었을 때, 그 안에는 내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과정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 제품이 수많은 실패와 시도를 통과해 나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반복의 시간이 바로 내 브랜드의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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