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집으로 가는 비행기가 악천후로 오사카에 불시착했는데 여행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 도착하니 숙소를 겸한 종합 문화공간이었다. 아주 오래된 목조건물로 문화공간인 1층은 복층 구조이고 숙소는 모두 2층에 몰려 있었다. (일본은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가지 않을 것이다.)
1층에서 이런저런 시간들을 보내다가 술자리에서 어느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노인과 나뭇잎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꿈에서 깬 뒤 생각해 보니 나뭇잎은 우리 인간을 상징하는 은유의 표현이었다.
대략 이런 대화였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그건 나뭇잎이 아닙니다."
"모르는 소리, 나뭇잎은 매달려 있으나 떨어지나 한결같이 나뭇잎일 뿐이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이 죽어 땅에 묻힌 존재가 되어도 그는 여전히 인간입니까? 제가 보기엔 그건 그냥 흙입니다."
"그건 아래 세상에서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걸세."
"고매하신 윗세상 분 나셨네요. 아랫 세상이 똥오줌 못 가릴 때 윗세상에서 변기라도 하사하신다면 참 좋을 텐데요. 윗세상 나뭇잎을 좀 보고 싶군요."
그러자 갑자기 그 노인이 가방을 열더니 참기름 병을 꺼내 내 술잔에 가득 부어주고는 마시라 했다. 그 노인의 가방에는 아주 커다란 병으로 참기름이 3병이나 있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있던 중에 참기름이라니! 더구나 술잔에 기름이 둥둥 떠 있으니 달갑지가 않았다.
하지만 노인의 성의를 생각해서 단숨에 들이켰다.
와! 그런데 마시고 나니 그 맛은 참기름이 아니라 더 향긋하고 고소한 그 무엇이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노인이 말했다.
"윗세상 나뭇잎으로 짜낸 것이네."
향긋한 매화차, 브런치 친구들과 차를 마실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전환 키는 없을까?
이런 꿈을 꾼 오늘, 무슨 일이 생겼을까?
별 일은 없었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
요즘은 악단광칠의 노래를 즐겨 찾아 듣는다.
황해도 민요를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독특한 음악 장르를 창조한 악단이다.
악단광칠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모로 짖는 소리가 들려서 밖을 내다보았다.
모로는 우리 집 앞에 어떤 관광객이 데리고 온 강아지와 썸을 타고 있었다.
옆에는 아내와 라네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밖으로 나갔다.
그 관광객은 알고 보니 서귀포에 사는 도민이었다.
그분이 데리고 온 강아지 이름은 투이, 어느 동화책의 주인공 이름이란다.
견종은 진돗개나 제주 토종개 같은데 매우 사회성이 좋은 수컷이었다.
모로가 텃세를 부리니 투이는 얌전히 있으라고 손으로 모로의 머리를 누른다.
그러자 모로도 짖는 걸 멈추고 투이와 입을 맞추었다.
우리 인간도 이런 화해법이 있으면 좋겠다.
그 수컷의 모습은 보통 인간보다 상당히 품위가 있어 보였다.
난 투이처럼 하지 못한다. 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좀처럼 나를 찾지 못하는 편이다.
인간 세상에서 상상해보자.
누군가 나를 공격할 때 투이처럼 상대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면 어떻게 될까? 주먹이 날아오겠지?
주먹까지는 아니더라도 결과가 좋아질 리 없는 대화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손으로 지그시 누른 투이가 품위 있어 보인 이유는 뭔가?
그건 투이가 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개의 눈으로 봤을 때 개들이 감탄하는 인간의 품위는 어떤 게 있을까, 사유하며 잠에 든다.